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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Sep 19. 2023

상담센터에 다녀왔습니다.

내 우울과 불안에 대해 알아가는 중입니다.

병원진료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상담센터를 알아봤다. 우울감과 불안함으로 인해 분노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이 내 주된 문제인데 약이 물론 도움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쩌면 나에겐 상담치료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의사 선생님 소견이기도 했다.)


방문 전, 그리고 방문해서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내가 잘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긴장됐다. 사전상담기록지를 작성해 이메일로 전송해 놓은 터였다. 그걸 토대로 내 첫 번째 상담이 시작되었다. 




조금은 두서없이 이야기를 했다. 몇 개월 전 겪은 아이와 아이 친구엄마 관계에서 받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부터 친정엄마에 관한 이야기까지. 그리고 남편에 대한 이야기와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우려까지. 내가 생각해도 광범위했다. 


"음.. 우선순위를 두면 좋을 것 같아요."


상담사 선생님은 내게 어떤 점을 제일 먼저 개선하고 싶은지, 그것이 명료해진다면 앞으로의 상담을 진행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가장 개선하고 싶은 부분이라...


그건 바로 아이에게 화내는 나의 모습이다.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때때로 분노조절장애 환자 같다고 한다. 평소에는 다정하고 온순하다가도 어느 순간 화를 못 참고 폭발해 버리는 내 모습에 나도 진절머리가 난다. 그토록 닮기 싫었던 친정엄마의 모습을 닮아가는 내 모습이 괴물같이 느껴진다. 죽도록 싫다. 끊어내고 싶다. 정말이지 나는 친정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우울증에 끝내 잡아먹혀버린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도 매일 술병을 놓지 못했던 아빠. 적극적인 삶의 의지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아빠처럼 되고 싶지가 않다. 정말이지 나는 잘 살아내고 싶다. 




부모의 모습을 자식이 닮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나는 닮고 싶지 않았다. 닮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들을 닮아가고 있는 내 모습에 겁이 났다. 그래서 돌고 돌아 병원을 찾았고, 상담센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는 결핍이 많은 사람이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포함한 정서적 지지도, 경제적 지원도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어릴 적부터 품어온 내 꿈이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짐했다. 내 아이들은 나같이 결핍 많은 사람으로 키우지 말아야지. 나는 받지 못했지만, 받아본 적 없지만, 그래서 엄마노릇이 너무 힘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내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는 매 순간 엄마노릇에 최선을 다했다. 정말이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크면서 내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하는 나의 노력들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부딪히는 일들이 생기고 그로 인해 남편과도 자주 다투었다.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 편에 서서 나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내 자존감은 점점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생각해 보면 난 늘 불안했던 것 같다. 내가 엄마처럼, 아빠처럼 될까 봐.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 내 결핍을, 내 불행을, 내 가난을 대물림하게 될까 봐. 내 가정이 깨질까 봐. 난 항상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 불안이 화의 모습을 하고선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왔던 것 같다. 완벽한 가정을 가지고 싶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이 과했던 것이다.




"우선순위 잘 정하셨어요. 좋아질 거예요."


이제부터라도 도움을 받아 조금씩 바꿔나가보려 한다. 그 과정이 괴롭고 힘들지라도 견뎌낼 것이다. 좋아지리라, 나아지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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