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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Oct 17. 2023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매주 목요일마다 상담센터에 간다. 지난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 일이 있었고 그래서 내 마음은 어땠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지난 4회기 상담을 하면서 참 많이 힘들었다. 힘들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내 속 깊숙이 박혀 있던 이야기를 세상밖으로 꺼내놓는 일 자체만으로도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다. 내 삶 자체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꽁꽁 묶고는 놔주질 않았다. 주변 일상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흘러가는데,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만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나 혼자만 힘들어 죽을 것 같은 날들이 계속 됐다.




큰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나와 부딪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하기만 하면 무조건 인상부터 쓰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수많은 육아서를 보고 좋다는 영상은 다 찾아보았지만 현실에서 만난 사춘기 육아는 내게 또 다른 시련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이의 말과 행동, 태도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화가 났다. 자연스럽게 나는 목소리가 커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이는 내게 더 반항스럽게 대들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질수록 나는 친정엄마처럼 화를 내고 말을 험하게 하기 시작했다. 내 표정은 점점 굳어갔고 힘든 줄 몰랐던 엄마역할이 버거워졌다. 이게 맞는 건지, 뭘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숨이 늘었고 어느 날은 다  놓아버리고도 싶었다. 


화를 내는 내 모습에서 친정엄마의 모습이 느껴지면서부터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나는 엄마처럼 되기 싫었는데, 엄마 같은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엔 엄마처럼 되고 마는 건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부모님은 날마다 싸우셨다. 아빠는 매일 술을 드셨고 엄마는 눈물 흘리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 엄마가 나와 동생을 버리고 도망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남들보다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고, 한 번도 삐뚤어진 적 없는 모범생으로 자랐다. 그것만이 당시 힘들어 보이는 엄마를 위한 길이라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무능력한 아빠가 싫었던 만큼 당시엔 엄마와 가까웠고 엄마를 많이 사랑했었다.


공부는 무슨 공부냐며 공장에나 취직하라던 아빠와 어느 날부턴가 다른 아저씨를 만나고 다니는 엄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와의 관계도 멀어졌다. 엄마의 외도와 아빠의 알코올중독과 우울증, 쓰러져가는 가정형편에 내 10대는 늘 회색빛이었다. 그저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한 번도 화목했던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아빠에 대한 욕을 내게 서슴없이 했었다.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한 후회를 내게 털어놓곤 했다. 마치 그 원인이 나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나는 혼전임신으로 생긴 아이였고, 외갓집에서는 아빠와의 결혼을 반대했으며 엄마는 무작정 집을 나와 아빠와 살았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백번쯤 들으며 자란 것 같다. 나만 아니었다면 엄마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마는 다른 아저씨를 만나면서도 늘 당당했다. 만나지 않으면 안 되냐고 처음으로 대들었던 날 엄마는 내 머리에 물통을 던졌다. 그리고 그 아저씨를 만나러 나갔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난 엄마에게 마음을 닫았다.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게 내 오랜 소망이었다. 다정하고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나 결혼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때로는 친구같이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공부와 진로, 취업, 결혼 같은 큰 문제 앞에선 아이와 함께 고민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늘 밝게 웃고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된 이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깨어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가 엄마에게, 아빠에게 받지 못했던 것들(따듯한 시선과 말 한마디 같은 정서적 지지부터 경제적 지원까지)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결핍이 많은 사람이지만 내가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살았다. 두 아이를 지난 10년 동안 그 누구의 도움 한번 없이, 혼자 모든 걸 다 케어하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바쁜 남편이 육아에 도움을 주지 못해도, 내 몸이 아파 부서질 것 같아도 괜찮았다.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친정이 내겐 없어도 견딜 수 있었다. 아이들 웃음소리에 힘이 났고 내가 아이들을 잘 키워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행복했다. 정말이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났다. 잘 자라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신만의 색을 내면서부터였나 보다. 큰아이와 부딪히기 시작하면서 늘 불안했던 것 같다. 끝내는 엄마와 내 관계처럼 아이와도 그렇게 될까 봐 말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그 좋은 엄마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저 두렵고 복잡했다. 아이에게서 내가 싫어하는 남편의 모습이 보일 때도 그 모습을 참기 힘들었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던 남편의 눈빛과 태도, 말투가 생각나서 괴로웠다. 그만큼 내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이대로는 정말이지 죽을 것 같아서 병원을 찾았고, 상담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 4회기 상담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내가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좋은 엄마에 대한 강박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원인이 분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이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엄마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내가 이해된다고 하셨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게 이렇게나 감사한 일이구나. 끝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내며 감사함을 느꼈다. 



상담사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에서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남겨본다. 친정 엄마와의 관계와 아이와 나의 관계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그렇기에 그 과정도 결과도 다를 것이다. 따라서 아이와 나의 관계가 친정 엄마와의 관계처럼 될까 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원인을 분명히 알았으니 이제 개선할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면 된다. 지금까지 난 엄마로서 충분히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 앞으로 아이에게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그건 나 때문이 아니니 자책할 필요가 없다. 혹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난 또다시 최선을 다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버리자. 마음을 편하게 갖도록 노력하자. 


아이를 나와 다른 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연습을 하자. 남편을 닮았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렇게 말하지도 말자. 남편의 말에 휩쓸리지도 말자. 아이는 그냥 아이 자신일 뿐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듯 아이 역시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을 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엄마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내가 했던 엄마의 역할이 아이에게도 필요한 엄마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이고 좋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보람도 느끼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만 이제부터 아이에게 필요한 엄마의 역할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이에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마의 역할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라 여전히 막히고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4회기 상담을 통해서 조금은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기쁘다. 앞으로도 무거운 고민들을 계속하고 정리하며 기록하고.. 그렇게 나는 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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