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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렉싱턴 Mar 09. 2016

경계인의 좌절,

라종일,<장성택의 길>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조문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실질적으로 한반도의 휴전선 이북 지역에는 행정력이 닿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겐 이 사실이 너무 서글픈 일이었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통제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단체입니다. 국제사회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고, 통일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은근슬쩍 자국의 이해에 따라 남북관계를 이용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외적으로 한국의 이미지가 많아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북한이라는 곳이 함께 연상되며 토크쇼의 농담거리로 전락되기도 합니다. 저에겐 퍽 속상한 일이었습니다. 자존심 상할 뿐만 아닙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정말 슬픈 일입니다. 멀쩡한 가족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왕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 가족의 슬픔은 수십 년에 걸쳐 자식들에게까지 내려옵니다.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에서 더 이상 누구의 슬픔도, 아픔도 없이 평화적인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이 남북관계와 주변국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고 외교력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야겠지요.


2014년 초, 우리는 언론에서 북한 관련된 한 인물의 소식을 접합니다. 장성택의 처형 소식입니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북한의 통치자로 들어서면서 고모부까지 숙청했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북한 관련 뉴스는 워낙 불확실하고 추측성 보도가 많아서 그 사건에 대해 차분하게 분석해 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여동생의 남편으로 한때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인물입니다. 저자는 장성택의 생애에 대해 정리하면서 그가 활동했던 시기의 남북관계, 그리고 북한의 내부 모습과 장성택이 해온 일들을 돌아봅니다.


장성택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를 만납니다. 김경희의 열렬한 구애로 둘은 교제하게 됩니다. 쉬운 교제는 아니었습니다. 김경희의 부친 김일성의 반대, 오빠인 김정일과의 관계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둘은 모스크바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북한을 잠시 떠나 있거나, 장성택이 평양을 떠나 있게 되는 등 둘이 일정 정도 정치적 영향을 갖게 되기 전에는 견제도 많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김정일과 함께 일을 하게 되고 장성택은 김정일에게 인정받으며 더 많은 권한을 쥐게 됩니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에게 권력이 이동하면서 처참한 말로를 맞습니다.


장성택의 일대기를 보기는 했지만 사실 그가 남북관계에서 무슨 큰 일을 하려고 했는지는 사실 책을 덮고 나서도 와 닿는 바가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면모와 매력이 있고 업무능력도 출중하여 김정일의 신임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는 김경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수동적이었고, 올바로 된 가정도 건사하지 못했습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태생적으로 그의 능력보다는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점이 더 부각되었기에, 그리고 김정일은 북한의 유일한 권력자였기에 김정일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자기관리가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아 보입니다. 술을 많이 마신 날이면 북한의 실상과 좌절감을 토로하고는 했다던데, 권력자의 주변인으로서, 드물게 해외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고민과 좌절감이 많았다고 생각이 되지만 그가 북한의 지식인으로서 고민과 좌절만 했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을 때 뭔가 해보고자 했던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김경희라는 사람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일생 동안 견제받으며 살았을 텐데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고 하신다면, 동의합니다. 그는 권력자의 친인척으로서, 후계자가 등장했을 때 가혹하게 내쳐진 기구한 운명의 사람입니다. 북한이라는 특이한 체제의 희생자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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