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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환 Jun 12. 2022

'나' 찾아 다시 오른 무대…안 불러 주면 혼자라도

경남배우열전 (7) 김해 극단 이루마 김수희 배우

피아니스트·발레리나·유치원 교사·성우·배우…. 학창시절 김수희(61) 배우가 지망했던 직업들이다. 꿈 많던 학생이었던 그는 TV를 동경할 땐 쉬는 시간마다 같은 반 친구와 노래 부르며 끼를 발산했고, TV에 나오는 사람이 꼭 돼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그가 선택한 직업은 유치원 교사였다. 고향 진주에서 유치원에 취직했다. 오전 7시 30분에 업무가 시작되는 직장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원생들을 데리러 다니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다음에는 오후 6시까지 줄곧 유치원에서 일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휩쓸고 지나간 1982년 어느 가을 오후, 그날도 비슷한 하루를 보내던 그에게 느닷없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수희야, 너 연극하고 싶다고 했지?" 고교시절 틈만 나면 같이 노래 부르고 놀던 친구였다. 진주 극단 현장에서 정기공연 작품에 출연해달라는 얘기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뜻밖이었지만, 그는 별다른 고민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그의 나이 22살 때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진주에서 연극 공연을 하는데 무대에 설 배우가 모자란다며 같이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하겠다고 얘기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극단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됐죠. 극단 현장이었어요. 가자마자 거의 한 달도 안 됐던 것 같은데 그해 10월 무대에 올랐어요. 단역이었고 짧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얼마나 어렵던지…. (웃음) 저는 이후에도 계속 극단에 남았지만, 저를 현장과 이어준 친구는 한 작품만 같이 하고 그만뒀어요."


김수희 배우 공연 모습.


친구 권유로 진주서 연극 시작
출산 경력단절 딛고 다시 무대
연기상 수상·연기 교육 활동도



김 배우는 현장을 떠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갔다. 그 기간 <상방> <산국> <농토> 등 작품으로 경남연극제에 섰다. 연극판에 발을 내디딘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였지만, 1987년 4월 제5회 경남연극제에서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계속될 것 같던 배우 생활은 그가 상을 받은 이후 중단됐다. 남편(서용수 거창연극고등학교 교장)을 만나 결혼한 뒤 출산과 자녀 양육 문제를 이유로 무대에 서는 걸 포기했다. 주부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낮에는 교사, 밤에는 배우로 활동하던 남편이 창원 극단 마산에서 꾸준하게 활동하며 작품을 하는 까닭에 연극 무대를 아예 떠나있진 않았다. 남편이 무대에 오르면 자녀들과 함께 연극을 보러 갔고, 관련 행사가 있을 때도 함께했다.

김 배우는 1987년부터 16년간 무대에 서지 않고 옆에서 지켜만 보던 생활을 이어가다 2003년 창원 극단 고도에서 <오귀의 전설>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내가 없어진다고나 할까? 남편은 계속해서 활동하니까 질투도 나고 그랬어요. 나는 왜 다른 사람의 거름 역할밖에 할 수 없을까, 나도 내 삶을 살고 싶다는 이런 욕구가 생겼죠. 그게 계기가 돼서 다시 무대에 서게 된 거였어요. 연극을 아예 떠나버렸으면 연극을 잊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계속 작품을 보러 다니니까 나도 하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때 진해에 살고 있었는데 고민 끝에 고도에서 연극을 다시 하게 됐죠."

김해 극단 이루마 김수희 배우.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고 그는 회상한다. 하지만, 꿈 같던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된 뒤에는 스스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42살에 다시 시작한 일이라 극단 단원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뒤늦게 다시 배우로 살아가는 김 배우를 좋게 평가해주고 응원해주는 후배가 있어 자신감을 가지고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한다. 매년 1편씩은 꼭 무대에 섰다는 그는 그렇게 10여 년 활동한 끝에 2016년 제34회 경남연극제에서 우수연기상을 받았다.


배우의 길을 다시 걸으면서도 특정 배역을 맡아 무대에 서는 일만 고집해온 건 아니었다. 연극 강사와 연출가로도 활동했다. 진해여성의전화와 인연을 맺어 그곳에서 만든 극단 물꼬에서 연출을, 공립대안학교 태봉고에서 연극동아리 수업을 맡았다. 연극인생학교 숲이라는 이름의 단체에서는 청년들과 학부모 등과 함께하며 연극인의 삶을 이어갔다.


"항상 배우이고 싶었는데 강사 역할을 맡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건 배우가 아니라 교육자인가라는 생각도 했죠. 사실 가장 안 하고 싶은 활동이었는데요. 지금 뒤돌아보니 저에게는 강사 활동으로 말미암아 남은 것이 많은 것 같아요.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고 느껴요."


그는 극단 현장과 고도를 거쳐 현재 김해 극단 이루마 소속이다. 2019년 김해로 이사하면서 이루마에 입단했다. 배우로서 무대에 오르는 건 물론 협력 연출도 맡아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후배들이 불러줄 때까지 계속 연극인의 삶을 이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자신을 가꿔나가면서 무대에 계속 오르는 게 목표라는 말도 덧붙인다. "TV가 많이 없던 시절이라 배우를 꿈꾼 적은 있었어도 연극배우를 생각해본 적 없었거든요. 가족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해주고 응원도 많이 해주고 있어요. 당장은 경남연극제(오는 16일부터 약 2주간 함안에서 개최) 공연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계속 무대에 서고 싶은데 누가 불러주지 않으면 1인극을 만들어서 혼자라도 무대에 서보려고요. (웃음)"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지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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