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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민 Jul 06. 2021

인권변호사의 개인회생 이야기 5.

비트코인 투자 실패가 남긴 7천만 원의 빚

나의 전 재산보다 많은 빚은 갚을 수 없다. 열심히 일해서 조금씩 갚아 나가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빚이라는 것에는 이자가 있다. 하루하루 또박또박 붙어나가는 이자는 빚을 갚기에도 벅찬 채무자를 더욱 옥죈다. 땀 흘려 일해봤자 버는 돈보다 이자가 많다면 그것은 분명히 갚을 수 없는 빚이다. 갚을 수 없는 빚은 오히려 노동의 의지를 말살시킨다. 노동은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함이다. 일해봤자 삶의 영위는커녕 빚조차도 못 갚는 상황에서 노동은 스스로의 가치를 가질 수 없다. 그렇기에 채권자에게 있어서도 지나치게 많은 채무는 오히려 받아낼 수 없는 악성 채무다.     


어느 곳이든 노동력은 그 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가치다. 노동력을 상실한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갚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빚, 사회의 쇠퇴를 불러오는 과도한 빚은 탕감되어야 한다. 하지만 빚을 탕감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채권자들의 희생에 의지하는 것이다. 채무자의 빚은 채권자의 채권이고 채권은 채권자의 재산이다. 빚을 탕감한다는 것은 채권자의 재산을 소각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빚의 탕감은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더하여 충분한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빚을 탕감받기 위한 정당성은 ‘채무자의 희생’이다. “당장 일부의 빚을 탕감받지만, 일정 기간 최대한 열심히 일해 먹고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최저생계비)만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수입은 빚을 갚는 데 사용하겠다”는 것이 채무자가 빚을 탕감받기 위한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정당성이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1(목적이 법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에 대하여 채권자ㆍ주주ㆍ지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하여 채무자 또는 그 사업의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거나, 회생이 어려운 채무자의 재산을 공정하게 환가·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간혹 ‘채무자의 희생’ 외 또 다른 정당성이 요구되고는 한다. ‘채무자회생법’은 회생의 대상을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라고만 규정한다. 어쩌다가 빚을 졌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이를 매우 중요하게 판단한다. “빚을 어떻게 졌냐”는 것은 사실상 개인회생 신청에 대한 제2의 정당성으로 작용한다.     


2019년 코로나 팬더믹이 시작된 이후 잠시 주춤하던 자산시장은 오히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호황을 누렸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은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코인시장의 엄청난 폭등은 가진 돈이 많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단번에 삶을 바꿀 수 있는 최고의 기회로 여겨졌다.     


하지만 유동성 파티가 끝나가자 가장 급격히 올랐던 코인시장부터 가장 크게 출렁였다. 코인시장의 상승세를 보고 뒤늦게 뛰어들었던 젊은이들은 아직 수익도 변변치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레버리지에 제한이 없던 코인시장에서는 가격이 조금만 내려가도 전 재산을 청산 당하는 레버리지 투자가 속출했다. 많은 젊은이가 청산을 피하고자 더 많은 자금을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저축은행, 캐피탈, 카드대출 등이 이용되고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변동 폭의 하락장은 자본도 경험도 부족한 젊은이들이 살아남기에 너무나도 가혹한 전쟁터였다.     


주변에선 너도나도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저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주변은 점점 부자가 되고 나만 점점 가난해지는 것 같았다. 승현씨는 아직 돈을 번지 1년 차도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었다. “이런 게 벼락거진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돈을 탈탈 모으니 1,000만 원이었다. 이 돈을 가지고 비트코인 시장에 뛰어들었다. 레버리지 투자를 했다. 평가이익이 오르는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청산 당하고 말았다. 전 재산이지만 빚은 없으니 다 잃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잠시였지만 눈앞에서 돈이 벌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전 재산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도 겪었다.     


다시 돈을 끌어모았다. 빚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코인투자는 결국 7천만 원의 빚만 남겼다. 더는 빌릴 곳도 없었고 빚 독촉을 견디기도 힘들었다. 담보도 신용도도 없는 승현씨가 돈을 빌린 곳은 소액신용대출이 편리한 저축은행, 캐피탈, 카드대출 그리고 대부업체였다. 이들의 빚 독촉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미 코인 자산은 모조리 청산 당한 상태였다. 회사에까지 연락이 왔고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마저 압류당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결국, 개인회생을 알아보기로 했다.     


승현씨는 법원이 가장 싫어하는 사례다. 법원은 승현씨와 같이 빚을 내서 투자하는 소위 ‘빚투’를 도박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여기고는 한다. 그리고 승현씨에게는 치명적인 요건이 하나 더 있었다. 대부분이 최근 1년 내 발생한 대출이라는 것이다. 법원은 최근 대출이 많으면 계획회생이 아닌지 의심한다. 계획적으로 빚을 내고는 회생을 신청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 등 코인투자로 빚을 진 이들은 대부분 최근 1년 이내에 모든 상황이 발생하고는 한다. 대부분 채무가 최근 대출인 것이다.     


법원이 부정적인 시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개인회생은 험난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보정명령이 나왔다. 대출금의 사용내역을 모두 소명하라는 것이다. 은행 거래내역과 코인투자 내역을 모두 발급받고 이들의 자금흐름을 모두 분석하여 소명했다. 그러자 다시 추가 보정명령이 나왔다. 이번에는 변제율을 높이라고 했다. 법원이 요구한 변제율은 70%였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595(개인회생절차개시신청의 기각사유법원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개인회생절차개시의 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     

7. 그 밖에 신청이 성실하지 아니하거나 상당한 이유 없이 절차를 지연시키는 때          



‘채무자회생법’은 신청이 성실하지 않으면 개인회생 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성실하지 않다는 것은 전형적인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전체 채무 중 개인회생을 통해 갚는 돈의 비율을 뜻하는 변제율은 개인회생 신청을 인용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개인회생 기간 동안 성실히 갚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얼마를 갚느냐는 판단의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제율을 높이라는 법원의 요구에 불응한다면 “신청이 성실하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다. 기각이다.     


다행히 승현씨 회사는 상여금 비율이 높았다. 아직 회사에 다닌 지 1년도 되지 않아 상여금을 받지 않았지만 향후 받을 상여금을 수입에 포함시켰다. 수입이 높아지니 가용소득, 즉 매달 갚을 수 있는 돈도 올라갔다. 여기에 개인회생을 통해 돈을 갚아 나가는 변제 기간도 기본 3년에서 최장 5년으로 연장했다. 이렇게 하니 간신히 변제율 70%를 맞출 수 있었다.     


주변이 다들 비트코인으로 부자가 된다고 하니 “나만 가난해질 수 없어”라는 마음에 섣불리 뛰어든 코인투자로 승현씨는 앞으로 5년 동안 극한의 궁핍한 생활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만 한다면 그의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빚을 갚을 수 있다. 5년 후면 승현씨는 30대 초반이다. 인생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몇 달간 코인투자의 대가치고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채권자가 승현씨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신들의 채권을 희생해 만들어준 기회다. 부디 승현씨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이제 정말로 성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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