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광민 Aug 20. 2021

인권변호사의 개인회생 이야기 7.

3년 미만의 변제기간도 가능해졌다.

윤미씨는 중학교 때까지 수영선수로 활동했었다. 기록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대회에 나가서는 입상에 실패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록은 커트라인 턱밑에서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운동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수영을 포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여느 학생들과 같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졸업할 때 학점도 나쁘지 않았고 영어성적도 준수했다. 하지만 취업에서는 번번이 실패를 겪어야 했다. 수영할 때 그러했듯 취업에서도 매번 합격자 수준 턱밑에서 맴돌았다.     


2년 간 소위 취준생으로 살아간 윤미씨에게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취업준비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었다. 한 걸음만 나아가면 합격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학원도 다녔다. 아르바이트하며 취업준비를 했지만, 매번 생활비가 월급을 넘어섰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늘리면 취업준비를 못 할 것 같았다. 모자라는 돈은 조금씩 대출을 받아가면 살았다.     


대출금과 이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을 때 원하는 곳의 취업을 포기했다. 적성을 살려 체육센터 수영강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대출 이자를 갚고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더 버티다 결국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학자금 대출과 2년에 걸쳐 조금씩 늘어난 대출금 그리고 수영강사로서의 정기적인 수입. 개인회생이 안 될 이유가 없었다. 당연히 인가결정을 받았다. 이제 3년 동안 매월 70만 원 정도의 돈을 갚아나가면 빚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개인회생 개시 결정을 받으면 앞으로 빚을 갚아나갈 가상계좌가 발급된다. 가상계좌번호를 알려주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윤미씨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청년 윤미씨는 그간 사회 초년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게의 빚을 짊어지고 살아왔다. 그 짐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개인회생 폐지 결정     


그런데 2년이 조금 넘은 어느 시점 법원에서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서울회생법원 20**개회174354. 변제 지체액이 3개월분 이상에 달하여 폐지될 수 있음”     


곧장 윤미씨에게 전화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2년 전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윤미씨 개인회생 변제 밀렸어요?”

“네... 변호사님.”

“연체되면 개인회생 폐지 될 수도 있어요.”

“...”

“얼마나 어렵게 얻은 기회인데... 놓치시면 안 되잖아요.”
 “저도 알아아요. 얼마나 어렵게 얻은 기회인지...”     


수포로 돌아간 개인회생     


그렇게 윤미씨는 어렵게 얻은 개인회생의 기회를 1년만 더 노력하면 되는 시점에서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제 서른인 윤미씨에게 매월 1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3년 동안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설계한 변제계획을 성실히 이행하지 못한 것은 윤미씨의 잘못이다. 하지만 2년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감당하기 어려운 빚의 무게에 어깨가 짓눌릴 청년 윤미씨에게 개인회생 폐지는 너무나도 가혹한 결과였다.     


간혹 법원이 법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법은 분명히 이렇게 규정하고 있는데 법원은 저렇게 판결한다. 심지어 이러한 판결이 관습으로 굳어져 일종의 법과 같이 작용하기도 한다. 법원의 관습법이 성문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특히 개인회생재판에서 자주 보인다. ‘변제기간’의 결정이 대표적이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611조 제5항 변제계획에서 정하는 변제기간은 변제개시일부터 3년을 초과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제614조제1항제4호의 요건(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을 충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변제개시일부터 5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변제기간을 정할 수 있다.          



‘채무자 회생법’은 변제기간을 3년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재산이 많아서 3년 동안 갚아나가도 변제총액이 현재 재산보다 적을 때에는 5년까지 변제기간을 늘릴 수 있다. 여하튼 일반적이라면 최장 변제기간은 3년이다. 하지만 실무에서 최장 3년은 최소 3년으로 적용된다. 때문에 개인회생 신청자들은 일률적으로 3년 동안 빚을 갚아나가야 하고, 재산이 많은 경우 그 기간은 5년까지 늘어난다.     


법을 무시하고 스스로 법을 만드는 법원     



「개인회생사건 처리지침」 제8조 제2항 제2호. 채무자가 3년 이내의 변제기간 동안 원금과 이자9)를 전부 변제할 수 있는 때에는 그 때까지를 변제기간으로 한다.     

제3호. 채무자가 3년 이내의 변제기간 동안 원금의 전부를 변제할 수 있으나 이자의 전부를 변제할 수 없는 때에는 변제기간을 3으로 한다.          



관련해서 대법원은 ‘기인회생사건 처리지침’을 두어 변제기간을 3년 미만으로 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3년 이내에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을 수 있는 경우”다. 예를 들어 2년만 갚아도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을 수 있다면 변제기간을 2년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이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이들은 대부분 월 40~80만 원가량씩 빚을 갚아나간다. 3년이면 1,440만 원에서 2,880만 원 정도다. 그런데 2~3천만 원 수준의 빚으로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법원도 이정도 빚이면 그냥 갚으라고 하지 개인회생 결정을 하지 않고는 한다. 결국 대법원의 지침에 따라 3년 이내에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을 수 있어 변제기간을 단축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다.     


법률이 변제기간을 3년 이하로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음에도 대법원이 규칙으로 그 가능성을 막아버린 것이다. 대법원의 처리지침은 어디까지 법률을 집행하는데 보조적 역할에 그쳐야 한다. 그럼에도 이처럼 법원이 지침을 만들어 법을 무력화 시키는, 실질적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회생 재판을 함에 있어서 이처럼 법원이 법을 무시하고 실질적으로 법을 만드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7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를 확대·개편해 서울회생법원을 개원하면서부터 이러한 관행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법의 목적에 충실한 실무준칙 제정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7월 실무준칙을 제정하여 65세 이상 노인 등 변제기간을 3년 미만으로 정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했다.          



변제기간을 3년 미만으로 정할 수 있는 경우     

1. 65세 이상의 노인

2.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른 장애인 중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3. 30세 미만인 청년

4. 3명 이상의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자

5.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한부모가족의 부 또는 모          



채무자 회생법이 변제기간을 최장 3년이라고 규정한 것은 채무자의 개별적 상황에 따라 3년의 변제기간이 지나치게 과도할 경우 총 변제액이 줄어들더라도 기간을 단축해 채무자의 부담을 경감시키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동안 대법원은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을 수 있는 경우”라는 상반되는 지침을 만들어 법률의 목적을 훼손해 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서울회생법원의 실무준칙은 법률의 목적에 충실했다고 할 것이다. 고령의 노인이나 장애인 다자녀 또는 한부모 가정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3년의 변제기간은 매우 가혹할 수 있다. 개인회생에서 변제는 단순한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 아닌, 겨우 먹고살 정도인 최저생계비만 남겨 놓고 나머지 모든 수입으로 빚을 갚아나가야 하는 변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30세 미만 청년에게 3년 동안의 변제기간은 그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 살아가는 준비를 하는데 매우 큰 장애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울회생법원의 실무준칙 제정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서울회생법원의 실무준칙은 서울회생법원 내에서만 효력을 가진다. 전국의 다른 법원이 이에 따를 의무는 없다. 그래도 윤미씨와 같은 청년들의 어려움을 공감한다면 다른 법원의 판사들도 서울회생법원 실무준칙을 눈여겨보길 기대해 본다. 법원이 법의 목적을 헤아려 판단을 해왔다면 윤미씨와 같은 청년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의 빚을 다시 짊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권변호사의 개인회생 이야기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