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모르는 평화유지군 ③
파상풍과 간염 등 각종 예방주사를 맞고, 평화유지군을 상징하는 하늘색 베레모를 지급받으니 동티모르에 간다는 실감이 났다. 유엔 휘장이 달린 하늘색 베레모는 예뻤다. 유엔 베레모를 받던 날, 병사들은 베레모 각을 잡아 머리에 써보고 거울에 비춰 보느라 모두 신이 났었다.
흔히 전투 현장에서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어두운 색의 헬맷이나 모자를 착용한다. 하지만 유엔 평화유지군은 자신이 교전국 병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눈에 잘 띄는 하늘색 모자를 사용했다. 검은색 베레모를 쓴 특전사 부대원들로 가득한 특수전교육단에서 하늘색 베레모를 쓴 우리는 단연 돋보였다.
특수전교육단에서의 한 달은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기에 작은 이야기 하나, 지급받는 물품 하나하나가 모두 공부거리였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파병 장병들을 위한 위문공연과 환송행사가 마무리되면서 드디어 동티모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2001년 10월 18일 새벽, 낯선 땅 동티모르에 도착했다. 처음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온몸을 감싸던 그 끈적끈적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동티모르는 적도 근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티모르 섬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어 고온다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었다. 계절은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데 우리가 생활했던 10월부터 4월까지는 우기여서 매일 밤 눅눅한 모포에 싸여 지내야만 했다.
동티모르 바우카우(Baucau)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다시 이동했다. 한국 평화유지군의 주둔지는 동티모르의 동쪽 끝 해발 500m의 고원지대에 있는 로스팔로스(Lospalos) 시에 있었다. 헬기를 내려서는 2.5톤 육공 트럭으로 갈아타고 또다시 한참을 이동했다.
길가에는 내전의 흔적 탓인지 폐허가 되었거나 형태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건물들이 드문드문 서있었고, 나무 그늘 아래 좁은 길목에는 힘없이 드러누워 있는 어른들과 낯선 한국군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문서 속에 정리된 동티모르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서 마주한 동티모르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스무 살 평생을 살며 단 한 번도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없었다.
난생처음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하필이면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티모르라는 낯선 땅에 와서 보게 된 모습들은 쉽게 실감이 나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파병지에서의 첫 한 달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긴장감은 얼마지나지 않아 금새 무뎌져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습기로 눅눅해진 전투복을 아무렇지 않게 챙겨 입었고,, 뜨거운 열기로 숨막히는 24인용 군용천막 안에서 울려퍼지는 캐럴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조금씩 동티모르 생활에 익숙해질 때 즈음, 한국군 식사 시간이 끝날 때면 부대 담장 너머로 외발 리어카를 끌고 오는 동네 아저씨와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한국군이 먹다 남긴 잔반이라도 받아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대 규정 상 정해진 구호품 외에는 어떤 물품이나 음식도 외부로 유출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부대 안의 음식이 현지인들에게 전달되어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부대가 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매번 별 소득 없이 돌아가는 아저씨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걸까?
전쟁이 끝나면 분명 누군가는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다시 누군가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겨누려고 할 텐데...
과연 의미 있는 전쟁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끝이 있는 전쟁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이곳 사람들은 언제쯤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동티모르에서의 하루하루는 내가 원튼, 원하지 않든 전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