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바다의 여전사

by 춤몽


거실에 삐뚤게 매달린 달력에 엑스 표시가 열다섯 개로 느는 동안 할머니를 따라 바다에 나가는 횟수도 많아졌다. 탈의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할머니는 뱃살이 세 겹이나 접힌 까만 고무옷 위로 납 벨트를 능숙하게 찼다. 머리에 얹은 커다란 은테 물안경이 태양을 반사해 반짝 빛났다. 한 손에 호미랑 빗창을, 다른 손에 오리발을 들고 바위 위에 올라선 할머니는 여전사 같았고, 바다에 둥실둥실 떠 있는 할머니는 매끈한 범고래 같았다.


할머니가 잠수하면 나도 같이 호흡을 멈추고 속으로 숫자를 센다. 나는 항상 30을 못 넘기고 학학 숨을 몰아쉬는데 할머니는 여전히 물속에 있다. 빨간색 천을 덧댄 할머니의 테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숫자를 세다가 50을 넘어가면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익숙한 얼굴이 수면 위로 불쑥 솟는다. 할머니는 테왁을 끌어안고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빗창을 흔든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신호처럼 60초에 한 번씩 할머니의 숨비소리가 들려온다. 반나절이면 할머니의 망사리에는 전복, 보라성게, 대왕문어 같은 해산물이 가득 찬다.



나는 물질을 끝낸 할머니가 어서 물 밖으로 나와 물안경을 벗기만을 기다린다. 할머니 이마에서 시작해 눈 옆, 광대뼈, 코 밑을 빙 둘러 동그랗게 찍힌 물안경 자국을 볼 때마다 ‘미니언즈’ 캐릭터가 떠올라 킥킥 웃는다. 할머니 미니언즈가 망사리에서 가시 돋은 성게를 꺼내 겁주는 시늉을 해서 나는 비명을 지르며 꽁지가 빠지게 달아난다. 쭈그려 앉아 성게를 손질하던 해녀 할머니들이 멀어지는 나를 보며 왁자하게 웃는다.


“어룬 노리갠 아이가 질인다!”



한번은 배낭을 짊어지고 바닷가 근처를 걷던 관광객 여럿이 뭍에서 쉬는 해녀 할머니들을 커다란 카메라로 찰칵찰칵 찍었다. 할머니들이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 말로 막 소리를 질렀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셔터를 누르자 우리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그 사람들 코앞까지 다가가서 짧게 뭐라고 한마디 했다. 그들은 할머니에게 고개를 두세 번 숙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아,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우리 할머니한테 대장, 대장 했나 보다.


(5화에서 계속)




* 어룬 노리갠 아이가 질인다

어른의 노리갯감은 아이가 제일이다


* 대장 해녀

대장 해녀는 해녀 공동체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해녀다. 경험과 리더십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보통 상군 해녀 중 한 명이 대장 해녀로 뽑힌다.(해녀는 경력과 숙련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계급이 나뉜다. 상군 해녀는 경력이 30~40년 이상 된 배테랑 해녀다. 상군은 뛰어난 잠수 실력으로 중군, 하군보다 수심이 깊은 곳에서 물질하여 심해에서 나는 해산물을 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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