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것 봐. 1200원짜리 네 개니까 4800원. 아줌마 계산이 맞지?”
학교에서 아직 곱셈을 배우지는 않아서 계산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줌마의 당당한 기세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이백 원으로는 곰돌이 젤리도 못 사고, 새콤달콤도 못 산다. 200원짜리는 츄파춥스 사탕뿐인데, 작년에 그걸 먹다가 앞니가 깨져서 일주일 동안 치과에 다녔다. 그 후로 엄마가 츄파춥스는 절대 못 먹게 하니까 이것도 못 산다.
동전 두 개를 손에 쥐고 슈퍼에서 얼른 나와 옷소매로 눈물을 찍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내 손에 들린 검은 봉투를 보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봉투를 낚아채듯 받아 들고서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 몫으로 무얼 샀고, 잔돈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묻지도 않고 말이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이제 막 12시가 지났으니까 엄마 회사도 점심시간이겠지. 할머니 방으로 가서 내 엄지발톱만 한 버튼 열두 개가 박힌 전화기 앞에 앉았다. 꼬불꼬불한 선으로 이어진 수화기를 들고 엄마 휴대폰 번호를 또박또박 눌렀다.
“어, 예솔아.”
엄마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있잖아…….”
내가 간밤에 열이 펄펄 났다고, 할아버지 탁배기 심부름만 하고 내 간식은 하나도 못 샀다고 일러바칠 참이었다.
“예솔아, 잠깐만. 엄마 지금 회의 들어가야 해. 이따가 전화해도 될까?”
분명 ‘이따가 전화해도 될까?’라고 물었으면서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엄마가 먼저 전화를 툭 끊어 버렸다.
“으앙!”
참았던 설움이 터졌다. 할아버지 들으라고 일부러 더 크게 빽빽 소리 지르며 울었다. 오 분이 지나도록 할아버지 방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게 또 서러워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 콧물을 쏟았다.
그때, 녹슨 현관문이 귀를 찢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밥때가 되어 돌아온 할머니가 현관에 고무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달려와 내 코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끈적한 콧물을 맨손으로 닦아내고 나를 품에 안았다.
“에고에고, 우리 강아지. 왜 그래? 응? 왜 우는 거야? 또 열이 나? 아이고, 울어서 또 열 오른다, 아가.”
내 이마를 짚은 할머니 손에선 검푸른 바다 냄새가 났다.
“아가, 배고프지? 어서 밥 먹자.”
할머니는 점심상을 뚝딱 차려와서는 내 밥 위에 가시 바른 갈치살을 소복이 올려 주었다.
“할아버지는요?”
“됐다. 손주가 그리 서럽게 우는데 나와서 쳐다보지도 않는 인간은 밥 먹을 자격도 없는 거라이.”
그날, 점심시간이 지나서도, 해가 지고 나서도 엄마한테선 전화 한 통 걸려 오지 않았다.
엄마는 할아버지보다 더 배신자다.
낮에 그린 엄마 그림 옆에 지그재그로 금이 간 하트를 그려 넣고 스케치북을 탁 덮었다.
(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