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강아지, 잘 잤는가? 어디 보자. 아직 미열이 있네.”
나갈 채비를 하던 할머니가 비릿한 냄새가 밴 손으로 내 이마를 더듬었다. 소반 위에는 전복죽 두 그릇이 놓여 있었다. 고소한 참기름 향이 진동하는 소반 앞에서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요거 한술 뜨면 고까짓 열, 싹 달아날 거다. 할망 물질하고 올 테니 후후 불어 남기지 말고 한 그릇 다 먹으라겐. 하르방 깰 때까지 지드리지 말앙 모냔 먹으라이. 알았지?”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숟가락을 들어 전복죽 윗부분부터 살살 떴다. 엄마가 죽이나 수프를 먹을 땐 숟가락을 쑥 집어넣지 말고 윗면부터 긁듯이 떠먹어야 안 뜨겁다고 했다.
할머니 전복죽은 푸르스름했다. 엄마가 마트에서 사 온 전복죽은 분명 하얬는데. 고소하고 간간한 할머니의 푸른 죽이 천 배, 만 배는 더 맛있었다. 숟가락이 그릇 바닥에 닿자, 나는 곁눈질로 할아버지 몫의 남은 죽 한 그릇을 흘끔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죽에서 폴폴 피어오르던 김이 진작에 사라졌는데 할아버지는 언제 일어나시려는 걸까.
나는 대자리 위에 엎드려 스케치북을 펼쳤다. 백지 제일 위에 ‘우리 가족’이라고 쓰고 왼편엔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고 있는 엄마를, 오른편엔 살며시 미소 짓는 아빠를 그렸다. 엄마 입술을 빨강으로 채우고 아빠 턱에 까끌까끌하게 돋은 수염을 예닐곱 개 찍었다. 나는 어디에 그려 넣어야 하지? 엄마 옆에? 아빠 옆에? 엄마와 아빠 사이에? 나의 위치를 고민하며 애꿎은 대자리에 손톱자국만 내고 있는데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칼보다 턱수염이 더 길게 자란 할아버지가 방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와 화장실로 들어가 ‘크아악, 퉤!’하고 요란하게 가래를 뱉었다. 끊어질 듯하다가 이어지길 반복하는 오줌 소리를 들으며 소반 앞에 얌전히 앉아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2화에서 계속)
*지드리지 말앙 모냥 먹으라이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