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할머니는 어디에 (1)

by 춤몽


아침상을 치우고 엄마와 고무 찰흙을 조물조물하며 놀았다. 나는 까만 찰흙으로 가시 돋은 성게를 만들어 할머니가 내게 그랬듯이 엄마를 겁주었다. 엄마는 배가 불룩한 복어를 만들어 복어 독이 더 무섭다면서 성게를 위협했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예솔아, 우리 마트 가자.”


“좋아, 엄마!”


정오가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정수리가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죠스바를 고르는 척하고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냉기로 열을 식히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엄마가 서 있는 정육 코너로 갔다. 엄마는 돼지고기와 양념불고기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후르츠 칵테일과 사이다를 집어 왔다.


“예솔아, 이건 왜 가져왔어?”


“할머니한테 수박화채 만들어 달라고 하려고. 할머니가 만든 화채 짱 맛있어. 할머니가 그러는데 화채 황금비율은 할머니밖에 모른대.”


“하하하. 그래? 그럼 이따가 엄마도 할머니표 화채 맛볼 수 있겠네!”


시원한 화채도 먹고 달달한 불고기도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대문까지 열 발짝도 안 남았는데, 급한 발소리가 먼저 대문 앞에 닿더니 몇 미터 앞에 있는 골목에서 검은 옷을 입은 무리가 뛰어나왔다. 해녀 할머니들이었다. 어떤 할머니는 빗창을 든 채였고, 어떤 할머니는 맨발이었다.


“예솔 엄마, 큰일 났다. 대장 할망이 바당서 안 나왓저! 대장이 닻 내리라 해서 물질 끊고 나왔는디, 뭍에 나와 보니까 대장은 안 보이구 빨간 테왁만 바당에 둥둥 떠 잇저!”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걷힌 엄마는 해녀 할머니들을 따라 바다로 달려갔다. 엄마가 대문 앞에 던져 놓고 간 봉투에서 후르츠 칵테일 통조림이 데구루루 굴러 나왔다.




일요일에 나를 서울로 데리고 간 건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 엄마는 회사에 갈 생각이 없는지 며칠이 지나도 서울에 오지 않았다.



(11화에서 계속)




* 닻 내리라

물질을 중단하자는 뜻. (작업 도중에 물때가 바뀌면 대상군 혹은 상군 해녀가 '닻을 내리라'고 소리친다. 그 말이 떨어지면 해녀들은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무조건 철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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