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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없는 카레, 정말 괜찮겠어?

고기 대신 아스파라거스

by 춤몽


아이는 개학해서 점심을 학교에서 먹고 오지만, 나는 여전히 매끼 먹고 치우고 돌아서자마자 다음 끼니를 고민해야 하는 운명이다. 남편의 재택근무 주간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유행 이후, 나는 벌써 4년째 격주로 돌밥돌밥(치우고 돌아서면 밥 준비×2) 중이다.


삼시 세끼를 제공하던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들의 재택근무로 식대가 엄청나게 절감되니까 이 제도를 고수하겠지. 이로 인해 누군가(나 같은 주부)는 삶의 질이 하락하는 것도 모르고.


아무튼 오늘도 점심을 먹고 나서 씻은 그릇이 채 마르기도 전에 저녁은 또 뭘 해 먹나를 생각한다.




베란다에서 신문지에 싸인 감자 두 알을 발견했다. 양파는 넉넉하게 있고, 냉장실에 당근도 하나 있으니 한 그릇 메뉴로 카레를 만들면 되겠다. 아, 그런데 필수 재료 중 핵심이 빠졌다. 카레용 돼지고기가 없다.

집집마다 카레 레시피가 다르겠지만 나에게 카레 필수 재료 사총사는 고기, 감자, 당근, 양파다. 이 구성에 토마토나 새송이버섯이 추가된 적은 있어도 넷 중 하나라도 빠지는 경우는 없다.

일단 감자, 당근, 양파까지 손질하고 나니까 내 몸이 고기 하나 사겠다고 나가기를 격하게 거부한다. 이번에 나가면 오늘만 벌써 네 번째 외출이다. 괜히 냉동실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시간을 끌다가 구석에서 아스파라거스 한 봉지를 발견했다. 평소에 아스파라거스를 즐겨 먹지 않아 냉동실에 박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하여 어쩌다 진행된 오늘의 취향 파괴 실험은 '(고기 없는) 카레에 아스파라거스 추가하기'.



감자와 당근, 양파가 어느 정도 익으면 푸릇함을 더해줄 아스파라거스를 마지막에 넣고 고체 카레를 잘 풀어준다. 카레가 냄비에 눌어붙지 않도록 묘약을 제조하는 마녀처럼 계속 저어준다.

뜻밖의 채식 레시피가 되었지만 있는 재료 활용하면 돈도 굳고 좋지, 뭐.


아스파라거스가 익으면서 풋내가 살짝 올라온다. 익을수록 냄새는 사그라들었는데 아스파라거스 색감이 누리끼리하게 변해갔다. 푸릇함을 더하기는커녕 누런 카레 속에서 아스파라거스는 존재감을 잃었다. (너무 푹 익혔나..)


카레 재료에 연행되어 어리둥절한 아스파라거스

남편은 주는 대로 잘 먹는 스타일이라 오늘도 군말 없이 한 그릇 싹싹 비웠다. 초3 아들은 요새 성장기인지 카레 위에 김치를 척척 얹어가며 먹더니 반 그릇 더 달라고 리필 요청까지 했다. 평소라면 세 식구가 이틀 먹을 양이었는데 오늘은 카레 한 솥이 한 끼 만에 품절되었다.


식구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나는 오늘의 카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레에 든 재료들이 죄다 물컹해 잇몸만으로도 으깨 먹을 수 있는 지경이었다.

한 숟갈 퍼 먹을 때마다 쫄깃하게 씹히던 고소한 고기 한 점이 그리운 저녁 식사였다.




* 오늘의 실험 내용

카레에 고기 대신 아스파라거스 넣기.


* 실험 결과

별 두 개.


* 교훈

카레에는 꼭 이 사이에 끼는 재료를 넣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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