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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Aug 15. 2024

너의 시간 안에 살게 해주어 고마워.

나의 반려견 메리, 할머니의 짝꿍






나의 반려견 메리가 시간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 지난 한 주간 마음이 쉬지 못했다. 급격하게 시력이 저하된 메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만 흘렀다. 나를 자책했다. 매일 사랑을 속삭이고 눈맞춤을 하는 메리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


유튜브에서 설채현 수의사님이 펫로스 증후군 관련 상담을 받는 영상을 봤다. 직업이 수의사여도 반려견의 시간을 이길 순 없는 것. 그리고 여느 보호자와 똑같이 슬픔에 젖는다는 것. 그 영상에서  자책을 하기보다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로 끝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도 ‘아쉽다.’로 끝맺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노견과 산다는 것은 어쩌면 노인과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세심함이 필요하다. 2년 전, 할머니가 1달 반의 투병 기간을 끝으로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그 기간을 계기로 나는 더 예민한 사람, 부드럽게 말하자면 세심한 사람이 되었다. 작은 일에도 크게 생각하고 심각해지기까지 하는. 이 점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안하다. 아마도 내 마음속 깊은 한편에 할머니의 통증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후회가 가득하기 때문이겠지. 더군다나 반려견 메리는 할머니의 친구였다. 좀 더 가깝고 귀여운 표현으로는 ‘짝꿍’. 할머니의 짝꿍을 마지막 순간이 오는 그날까지 잘 보살피는 건 나의 역할, 그리고 의무가 되었다. 내가 정한 의무.


그런 나의 반려견, 우리의 반려견 메리가 세월과 함께 나란히 걷고 있다. 가는 세월이야 야속함 뿐이지만, 우연히 마주한 댓글을 읽고 고마움이 가득 채워졌다.



‘메리의 시간 안에 살고 있는 것에 고맙고 행복하다.’



정말 그렇다. 어제(8/11) 아침 눈을 떠서 메리가 내 어깨에 턱을 괴고 곤히 자는 모습을 봤다. 그 순간 말로 내뱉기 아까울 만큼 행복함을 느꼈다. 나에게 이토록 행복감을 안겨주는 사랑스러운 나의 반려견.


남은 순간, 시간, 세월 동안 온마음 다해 사랑해 줄게. 너의 세월을 나와 함께 해주어 진심으로 고마워. 그리고 갚을 수 없는 사랑을 전해주고 나눠주어 고마워. 하루에도 몇 번씩 메리의 귓가에 ”사랑해 메리야. 오늘도 무탈히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을 하게 되는 마지막 순간이 오면 담담히 받아들이기 미치도록 힘들겠지만 그래도 언니는 그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할게. 고마워 나의 반려견, 나의 소중한, 우리의 가족인 메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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