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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욱 Dec 29. 2023

누구에게나 화양연화는 온다

9월 26일 화요일. 『나는 백 살에 가장 눈부시고 싶다』를 미다스북스에서 출판했다.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지 2년 만이다. 100% 만족할만한 문장은 아니자만 출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 몇 명의 지인들에게 책을 한 권씩 보냈다.      


박정희 교감 선생님이 카톡으로 문장을 보내왔다.     

멋진 나의 친구 지욱 작가님!

지금도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눈부실 그날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멋진 당신을 응원합니다.     

바로 이어 내가 보낸 책 표지를 캡처한 사진과 함께 “카톡에서 선물하기로 책을 샀어요.”라고 문자가 왔다. 덧붙여 친구에게 책을 선물한 내용을 캡처해서 보냈다. 근래 명예퇴직한 친구가 있다면서 그녀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박정희 교감 선생님은 진로 교사 1기로 같이 출발했다. 같은 교실에서 항상 내 옆에 앉아 연수받았다. 교감 승진에 필요한 많은 활동으로 작년에 발령받았다. 진로진학상담교사 1정 연수도 같이 받았다. 그 점수가 교감 승진에 필요하다며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깜짝 놀랐다. 1정 점수를 100점 받았다. 그때만 해도 나를 비롯한 많은 교사는 교과 교사에서 진로 전담 교사로 바뀐 상황이어서 느긋하게 진로 교사로서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박정희 교감은 그러지 않았다. 그 누구도 몇 년 후에 있을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던 시간에 멀리 미래를 내다보고 자신의 화양연화를 그렸다.   

  

2011년 경기도교육청에 학부모 관련 일을 하러 갔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박정희 교감을 만났다. 포근하게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나이는 같지만, 언니 같았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화를 내면 가라앉혀 주었다.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도 항상 느껴졌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여유가 있었다. 의지하고 싶을 때는 항상 옆에서 존재했다. 자신의 자존감과 여유가 있으면 상대방의 허물이나 성과를 따뜻하게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교감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명자 언니의 문자도 받았다.

 “샘~ 책 잘 받았습니다. 피, 땀, 눈물로 쓰셨을 책을 그냥 받았습니다. 한 줄 한 줄 끝까지 잘 읽는 게 그 값 하는 거겠죠?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카톡 메시지가 반겨주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나보다 두 살 많은 명자 언니는 몇 년 전 명예퇴직하고 교단을 떠났다. 지금은 세 아이의 할머니로서, 자원봉사자로서 일주일, 월 단위의 계획을 세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자신의 시간을 사랑하며 잘 지낸다. 통화를 할 때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기분이 좋다.     


 이전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행정실장님이 내가 보내준 책을 읽고 A4에 소감문을 써서 보내주었다. 몸이 불편한데 어떻게 읽었을지 안 보아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고 한다. 책 읽고 소감을 한 글자 한 글자 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며칠 전 책을 보내겠다고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바로 전화가 왔다. “어떻게 출판했어?”     

행정실장님은 삼 년 전에 시를 썼다. 인쇄소에서 조그맣게 시집을 만들어 나에게 한 권을 주었다. 장애인으로서 비애를 숨기지 않고 진솔하게 표현했다.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는데 두 번째 시집을 만든다고 80편을 이미 썼다고 한다. 출판이 아닌 인쇄소에서 시집을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왕이면 책으로 시집을 출판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알고 있는 출판사 대표를 연결해 주었다. 100편이 될 때까지 시를 계속 써서, 출판하기를 기원해 본다. 이 밤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잘 안 보이는 눈을 크게 뜨고, 잘 걷지도 못하는 몸을 이리저리 아기처럼 움직이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나희덕의 「귀뚜라미」 시가 생각난다.

(전략)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숨이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후략)


 2년 전 블로그에 이 시를 쓰면서 숨죽이고 울었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마음이 울었다. 그 귀뚜라미는 바로 나였다.

실장님은 또 다른 귀뚜라미다. 철저히 혼자 집에서 좋아하는 시를 쓰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사랑한다. 아직은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혼자 시를 쓰며 존재한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지만 최선을 다해 부르고 있다. 실장님이 시집을 출판하고 기념회에서 만날 날을 학수고대한다. 정말 힘든 일을 끝까지 잘했다고, 껴안아서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글 속에서 만난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글로 쓰면서 그들에게 줄 선물을 만드는 시간이다. 작가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 결과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어쩔 수 없으나 그 상황을 받아들여 어떻게 살아갈지는 자신의 몫이다. 상황을 직시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삶을 위하여 노력한 그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인생 최고의 화양연화를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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