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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 힐 링 Jul 19. 2021

문수산 정상에 오르다

그를 기억하는 일 2




우리는 문수산 정상이 목표였다.

쉬운 산행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첫 번째로 꼽는 산이다.

해발 600미터를 1시간 반이면 족히 오른다는 문수산은 울주군 청량면 율리와 범서읍 천상리를 구분 짓는 우수한 조망권을 자랑하는 산이다. 동쪽으로는 태화강이, 서쪽으로는 영남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간월산과 신불산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체로 완만한 산이지만 계단이 많고 가파르기로 소문난 깔딱 고개는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산행 초보자는 입구에서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되돌아서야 하는 급경사다.


우리는 그곳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어머님이 준비해 주신 점심 도시락을 배낭에 챙겨 넣는다. 갈증을 식혀 줄 방울토마토와 갖가지 먹거리도 같이 챙긴다. 그리고는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사람처럼 완벽한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평지 산책이 빨라지면 산을 오르자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우리 출발지는 집에서 차로 십 분 거리에 있는 범서 천상이다. 산 아래로 빼곡히 둘러싼 아파트 단지를 따라가다 적당한 자리에 차를 세운다.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둘러메고 접이식 스틱을 펼친다. 쿡쿡 앞서가는 남편의 뒤를 따라 나도 쿡쿡 소리를 낸다.


“지팡이는 당신만 사용하지 않아”라는 말 대신.    


그렇게 시작한 산행이 백 미터를 넘기고 삼백 미터를 넘기더니 깔딱 고개 앞에서 한 계절을 훌쩍 보냈다. 오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표를 깔딱 고개 앞까지로 바꾸었다. 우리의 삶 곳곳에서 만나는 좌절과는 그 맛이 다르다. 정상을 단숨에 돌아 나오는 사람들의 발자국에서 느끼는 맛. 그 씁쓸한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이 텁텁하다.    

 





그러던 2016년 7월, 오늘같이 후덥지근한 어느 날이었다.

깔딱 고개 앞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보온병에 담긴 도라지 차를 한잔하면 오히려 열기가 한풀 꺾인다.

시원한 냉커피 대신 보온병을 준비하시던 어머님도 나만큼 애가 탔으리라.


팔베개로 누우면 이내 하늘이 눈앞에 섰다.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질 듯 넘실거리는 하늘 구름은 어디가 목적지일까. 어디서 오는지도 모를 서늘한 바람을 누워 맞으며 잠든 것처럼 쉬다 내려오곤 했다.  


돌아오려는 길목에서 남편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깔딱 고개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두려움과 맞서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한동안 목석처럼 버티고 섰더니

    

“해 눕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까?”   

 

확신 없이 내뱉는 말 뒤에 여지없이 따르는 희망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돌아올 수는 있을 거야!!”   

 


오르려는 모양이다.


해가 긴 계절이었으니 오후 8시 전에만 돌아오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풀어진 마음 끈을 동여매고 느슨해진 신발 끈도 단단히 묶었다. 유격훈련과도 같은 계단이 쉼 없이 이어졌다. 슬슬 겁이 났다. 돌아가자고 말할까... 느려지는 속도와 헉헉대는 숨소리만큼 후회가 밀려왔다. 다음으로  미루자고 말할걸... 추월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고 우리의 속도와 시간의 간격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나무기둥에 새겨진 계단 숫자도 숫제 보이지 않았다.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찰나!! 송곳날 같은 송전탑 머리가  쭈뼛하게 보였다.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단숨에 뛰어 올랐다. 정상이구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세상을 호령하려는 그 도도한 자태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기야 정상이야 정상!!!”    


나도 모르게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몸은 땀범벅이었고 달라붙은 겉옷을 연방 뜯어내며 우리는 서로를 힘껏 안았다. 저들에겐 매일의 일상이 우리에겐 수개월에 이룬 목표였다. 가변적일 수도 고정적일 수도 있지만 조건 없는 이들에게는 이미 이룬 것을 목표로 삼을 때도 있다. 우리 역시 타협이 필요한 시기였다.

문수산 정상은 그렇게 일궈낸 힘겨운 결과물이었다.




그곳에서의 기쁨과 희열과 감사는 너무도 생생하다. 그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환희에 찬 모습을 나는 두 번째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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