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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 힐 링 Aug 10. 2021

너에게 쓰는 편지

이제 아버지는 그리움이야!!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비가 왔었어. 우산이 소용없을 정도로 비가 많이 올 때, 보통은 그렇게 말하지. 하늘에 구멍이 난 것 같다고 말이야.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많이 쏟아진 건 확실한 것 같아. 왜냐면, 아버지가 탄 상여의 종이꽃이 빗물에 녹아 모서리를 타고 흐르는 걸 봤거든. 내가 비를 좋아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구나 싶네. 너는 알고 있었지? 비가 왔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어도 정승댁 개가 죽으면 문상하러 오는 사람이 있다” 는 말, 넌 들어봤니? 딱 그날의 우리 집이었어. 우리 아버지는 고향에서 변호사 같은 분이셨거든. 아마 동네 꼬마들도 다 알걸? 아무리 비가 와도 그렇지 네가 봐도 좀 너무한 것 같지 않아? 정승은 아니더라도 덕을 본 자들이 많았을텐데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들이 그렇게도 없었는지. 뭐 그도 그럴 것이 병원 생활도 좀 하셨고, 우리가 고향 문지방을 뻔질나게 드나든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주고받는 고향 인심이란게 있잖아. 본전 생각이 계속 나지 뭐야. 아버지 주검 앞에서 돌려받지 못한 인심 저축에 대해 신랄하게 토로했던 기억이 나네 ㅎㅎ^^ (이런! 제기랄... 누가 보면 자식들 맞냐고 물어볼 것 같은 그런 그림이었음). 왜 그랬을까 또 생각해보니 가끔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었더라구 글쎄.


“저축이 따로 있남. 자식 가진 부모들이 혼사 품앗이하면 그게 저축인 게지. 두고 봐 야들아.. 나 죽어 나갈 적에는 돈 세다 날 셀 껴 ㅎㅎㅎ”     


 더 웃긴 건 말이야, 엄청 기대를 했던 거지 우리가. 넌 우습지 않아? 아무리 그게 사실이래도 너무 노골적이잖아. 품앗이 손님들이 안 온다고 투덜대다니 쯧쯧쯧...


 한 달에 두어 번 부산으로 마산으로 우리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수금을 다니셨어. 뭐 수금이 다른 거겠니, 생활비 거두시는 거지. 우리가 고향을 안 갔거든. 아차! 고향을 등진 이유를 말하지 않았구나. 왜냐면, 엄마 자리를 차지한 아버지 여자가 우리 집에 들어왔었거든. 그러니 부산으로 마산으로 자식들이 있는 곳을 아버지가 오실 수밖에. 오실 때마다 하신 말씀이셨어. 어느 집에 얼마 어느 집에 얼마... 아무리 술을 드셔도 빠트리지 않고 적어놓은 것이 있노라고 자랑처럼 말씀하셨거든. 왠지 큰 부자가 된 기분이었어. 그땐 그랬어. 난 아직도 궁금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버지는 끝내 모른 채 돌아가셨을까.  


 그래서 고향은 나뿐만 아니라 오빠나 언니에게도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어. 특히 나는 고3 시절, 우리 반 친구의 엄마가 아버지 여자였으니 오죽했겠니. 지금 생각하면 사실 별것도 아냐. 너도 알다시피 그 시절엔 행세하는 남정네들에겐 흔한 일이었잖아.   


 암튼 천둥 번개까지 동반한 집중호우였어. 엄마는 사위들 보기 민망했었나 봐. 슬쩍 우리한테만 그러더군, 비가 와서 다행이라고. 핑곗거리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이야. 하객이 없어도 코로나 덕분에 덜 쪽팔리니 아들놈이 지금 장가갔으면 좋겠다는 한 친구의 말과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야.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네. 하나씩 둘씩 실오라기 풀 듯 매듭 없이 풀어지는 것들은 네게 살짝 말해 줄께. 오늘의 나를 지탱해준 것이 어제란 건 누구나 다 알잖아. 반백 년을 훌쩍 한걸음에 와서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네가 내게 말한 것 같은데 맞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맛본 거지 뭐. 그 맛이라는 게 말이야, 씁쓸하다가도 가끔은 숨겨놓은 감처럼 쫄깃한 단맛도 있더라는 거지. 입안에서 녹여 먹는 사탕 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단맛. 덜 익은 감 껍질을 벗겨 통째 말려 먹는 겨울 간식이잖니. 생각나네, 엄마랑 감을 깎다가 칼에 베인 날이었어. 오른손 엄지에 지금도 시퍼런 흔적이 있어. 난 왼손잡이였거든. 피가 콸콸 쏟아지니 당황한 엄마가 피를 멈추게 하려고 연탄재 가루를 뿌리더라고. 거짓말처럼 멈추는 거야. 참 신기했어. 그렇게 만든 감을 긴 겨울밤 야금야금 꺼내먹는 재미가 끝내주었거든. 감은 껍질이 없잖아. 그러니까 스스로 자기 생살을 보호하려고 하얀 가루를 만들어 낸다는군. 사람들은 그걸 단맛의 농축된 결정체라고 하지. 맞아. 손가락에 묻어나는 하얀 고놈을 먼저 쪽쪽 빨아먹었던 기억도 나네 ㅎㅎ. 그 하얀 가루의 단맛을 난 특히 좋아했었어.



 그렇게 엄마가 흘리고 간 꼬리말을 붙들고 함께, 때론 각각 돌려받지 못한 품앗이 얘기를 하는 사이 비가 그쳤지 뭐야. 상여꾼들의 걱정 소리가 하늘에 닿았는지 너무도 쨍한 햇빛이었어. 엄마는 그래도 아버지가 안쓰러웠는지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영접하셨다고 좋아하시더라? 그런 시간을 함께 가졌다고 말씀 하시더군. 우리야 뭐 아버지 마음을 모르니 알 수가 없지.    


 아버지를 땅에 묻고 돌아오는데... 뭐랄까... 뭐라고 해야 되나... 그때 그 감정이 뭐였는지 아직도 적당한 단어를 찾진 못했어. 하여튼 퍼붓던 폭우만큼이나 햇살이 얼마나 강했는지 하얀 상복은 다림질한 듯이 빳빳이 말라 있었고 이마에 맺혔던 짠 내 나는 땀도 빗물에 헹구어졌더군. 우리는 선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와 부산으로 돌아와 버렸지 뭐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렇게 말이야.     






이제 아버진 그리움이야! 그리움. 가슴 뭉클해지는 그리움 말이야.

더러 먹먹한 날에는 그리워할 수 있는 아버지를 떠올려 보려해. 단단했던 마음이 물에 물을 타듯 희석되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하거든. 너도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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