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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Oct 19. 2022

새 술은 새 부대에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나의 포지션은 가랑이 사이에 고깔이 끼어있는 상태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시니어 포지션을 2년이 되기 전 운 좋게 달았고,

그 이후로 여전히 시니어 레벨이지만 헝가리 영업 부서에서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됐다.

고객 관리팀에서는 나보다 경험이 더 풍부한 고연차의 선배님들이 어느 팀에 가든 항상 존재했지만

지금 우리 팀에서는 경험을 보나 나이를 보나 최전선에 내가 서있다.

한국에 있었을 때와 다르게 사실상 매니저에 준하는 시니어 역할을 수행해야 된다는 사실이 오늘 아침까지도 믿기지 않았기에 누군가가 나의 포지션에 대해 물을 때마다 한낮 과장일 뿐이라고 대답해왔다.


하지만 이제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과거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전하고 있는 불편하고 비속어로 점철된 나의 말과 행동이 새로 들어온 직원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메일들을 쏜살 같이 지나치고 나서 여유시간이라는 처마 밑에 숨은 뒤에야 깨달았다.

숨을 고르고 멈춰서 사색에 잠긴 순간,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내 두발을 꽁꽁 묶고 깊고 어두운 하수구 속으로 이미 나를 거침없이 끌어내렸음을.

시간이 없다는 것도, 다른 나라의 언어로 설명해 나가며 꾸역꾸역 그들에게 지식 한입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변한 것은 없다. 그것내가 짊어져야  시지프스의 바위니까.

그렇지만 내가 스스로 정한 계획과 시간은 충분하기에 더 이상 옛날처럼 조급해하며 바위를 밀어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묵묵히 밀어내면 목적지까지 문제 없이 도달할 것이다.


지금까지 시니어의 탈을 쓴 회사의 쳇바퀴 1이었다면,

이제는 진정한 시니어로서 그들의 빠른 지식 습득과 환경 적응을 위해서 나는 조금 더 어른스러워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의 지지와 의지를 모아 팀장이 아닌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 작은 조직의 리더가 되고 싶다.

나 또한 그들을 위해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조금 더 쉽게 그리고 재미를 잃지 않도록 전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지금도 재미있고 앞으로 더 재밌을 것이다.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나는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또다시 내가 필요한 곳을 찾아 헤엄칠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번에는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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