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음과 유음은 참 부드럽게 들려, 마치 나처럼.
세 번째 기록
지난 2주 간, 지친 몸과 피곤함을 딛고 걸어온 시간들 끝에 나는 시들어 갔다. 내가 가장 불건강 할 때 뚜렷하게 드러나는 증상 중 하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걷고 걷다가, 어제에 와서야 '지금 내 마음 구석이 병들어있구나.'하고 스스로 알아주었다. 지금은 힘을 내! 힘을 내! 하고 힘을 낼 타이밍이 아니라 '나는 아픈 사람이구나.'하고 알아줄 타이밍이란 것을, 알아주고 나서야 지금의 내 모습을 용납하며 느껴지는 따뜻함으로 인해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운동도, 수많은 할 일에 대한 몰입도, 식단조절도 아닌 내 지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었다. 나는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고, 마음의 쉴 곳을 찾기 위해 다시금 내가 믿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스스로 '넌 지금 아픈 거야.'하고 인정해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쓰다듬어주자 주변이 정돈되고, 운동할 힘이 생겼으며, 음식을 절제할 수 있고, 피곤하지만 일에 대한 약간의 활기를 되찾는 게 느껴졌다. 오늘이 그 회복의 첫걸음. 이렇게 글로 지금을 기록할 힘도 생겨났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겨야겠단 생각이 들자, 나는 문득 내 이름이 떠올랐고 내 이름이 좋아졌다.
'민영.'
내 이름은 'ㅁ'과 'ㄴ'의 비음과, 'ㅇ'의 유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발음할 때 굉장히 부드럽게 발음된다. 동글동글하기도, 귀엽기도, 부드럽기도 한 내 이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 불러줄 때 참 다정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민영'이라는 이름 속에는 지금껏 애정 어리게 불러준 사람들의 저마다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나는 내 이름을 곱씹을 때마다 그 모든 목소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곤 한다. 방금 내 귀로 들어온 것 같은 따끈따끈한 기억 속의 목소리들이 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빵집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민영아~'하던 오전 알바 언니의 다정한 목소리. 가끔 엄마가 나를 '민영아'하고 부를 때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걱정거리가 생겼을 때 '민영...'하고 나를 찾던 지금은 외국에 있는 친구의 목소리. '민영아'하며 나의 의사를 묻거나 '민영이는'하며 내 특성을 분석해 주는 가까운 친구들의 목소리.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책을 나눠주며 한 명씩 이름을 다 부르고 나면 마지막엔 꼭 '민영'하고 나를 가리키며 사랑스럽게 웃는 일곱살 아이들의 목소리. 이외에도 참 좋은 감정을 실어 내 이름을 불러주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지만, 유독 '민영'이란 내 이름을 참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반복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물론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목소리도, 내 이름 속에 담겨있다. 내 이름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는 스쳐가는 사람들이더라도 그들이 불러주는 내 이름이 참 부드럽게 발음된다는 것이다. 나도 내 이름만큼이나 부드러운 사람으로 기억될까? 나의 이름을 부르는 그들의 입속에 남는 잔여감은 무얼까. 이름 때문에라도, 부드러운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 이름을 따라가는 걸까? 꼭 내 성격은 비음과 유음을 섞어둔 것처럼 어디에 붙어도 잘 어우러진다. 다만, 마찰할 때가 있다. 마찰음 'ㅎ'을 아는가? 예전엔 'ㅍ'과 'ㅌ'같은 파열음으로 다소 파괴적일 만큼 공격적이었다면, 지금은 'ㅅ'과 'ㅎ'의 마찰음이 난다. 매우 열이 받으면 '쉬익 쉬익'거리고, 대부분의 마찰들은 '힝'으로 끝난다. '힝!!!!!!!!!!!!!!!'으로 끝날 때도 있다. 그 이상은 '쉬익 쉬익'이다.
나는 내 이름이 좋다. 'ㅁ', 'ㄴ', 'ㅇ'의 비음과 유음으로 이루어진 내 이름의 부드러움이 좋다. 내 이름을 부드럽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어 내 이름이 좋다. 그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내 이름이 좋다. 그들과의 시간이 담겨있는 내 이름이 좋다. 내 이름이 지칭하는 나라는 사람이 좋다. 나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주는 존재들이 있어 나 자신이 좋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어루만져주는 내가 있어 좋다.
나는 민영이가 좋다.
민영이라 불러주는 당신이 좋다.
민영이라 불리는 내가 좋다.
민영이는 소중히 여김 받는 민영이가 좋다.
내게 가장 소중한,
나는 '민영'이가 참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