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온다는 것.
밀려든다.
맑고 싱싱한 물빛에 당장이라도 내 발 담그고 싶어 발 밑 모래 부스러뜨리며 걸어갔다.
발바닥 아래로 찰랑거리는 부드러운 물의 결에 앞으로, 더 앞으로 젖은 모래 묻히며 걸어갔다.
발목, 종아리, 허리.
더 들어가면 감당이 될까
겁이 난 나는 한 걸음 더 떼지도, 뒷걸음질 치지도 못한 채 갈등하다 뒤를 돌았다.
파랑이 밀려든다.
뒤돌아 서있는 나의 뒤편으로 계속해서 밀려드는 것에 앞으로 걷는 내 발걸음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발짓으로 전락한다.
일순간 내 온몸을 휩쓸어 가는 것에 애써 숨을 쉬려 머리를 물밖으로 들어 올려대던 나는 겨우 생명을 부지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수영을 해본 적 없음이 힘겹다. 스스로를 원망하려다 이만큼 커다랗고 거센 파도라면 익숙한 수영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겠단 사실에 만다.
머리를 들어 올리다 보면 파도가 잠잠해지겠지 머리로 생각하는 나의 눈으로, 코로, 귀로 불쑥 파고드는 물살들을 뱉어내고 뱉어낸다. 심장까지는 잠기지 않도록. 잠기더라도 끝까지 넘쳐 뇌수까지 타고 올라가지 않도록.
내 섬 안에 갇힌 나에게 튜브를 던져줄 사람은 없다.
너는 온전한 나의 몫이었다.
-밀물
불가항력적으로 밀려드는 것이 있다. 아마도 사랑일 터였다. 사랑하는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취미가 될 수도, 사물이 될 수도, 진로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밀려들어오는 수많은 것들과 사랑에 빠지곤 한다.
'밀물'이라는 이 시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개개인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내가 무언가와 사랑에 빠졌든, 내 삶에서 밀려온 것들에 빠져든다는 것은 모든 형태가 닮아있으니 말이다. 갑작스럽게 삶으로 찾아오는 만남이 있다. 나는 그 대상이 '당장이라도 발을 담그고 싶은 맑고 싱싱한 물빛'처럼 느껴져 내 단단하던 마음을 부스러뜨리며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예상대로 맑고 싱싱하고, 이제는 '부드럽기'까지 한 만남의 순간에 더 앞으로 걸어가며 바닷물에 스며드는 모래알처럼 내 마음이 대상에게 젖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가다 보니, 어느덧 허리까지 찬 시간들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여기서 더 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이 빠져들 것만 같아서, 그땐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 그러나 너무 좋아 앞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실패하거나 실망하게 되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렇게 더 깊이 나아가지도, 뒷걸음질 치지도 못한 상태로 한참을 갈등했다.
그렇게 겨우 더 힘들어지기 전에 '그만두자'는 마음으로 뒤를 돌았으나, 사랑이란 게 내 마음대로 한순간 멈출 수 있는 것이었던가?
커다란 해일 같은 마음이 나를 휩쓸었다.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나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이성을 부여잡아 보지만, 버겁다. 컨트롤하고 싶어서 수영을 시도해 보지만 그마저도 허우적거리는 발짓으로 전락할 뿐, 사랑 앞에서는 모든 게 다 속수무책이다.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마음을 열고 사랑해보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몇 번을 거듭했다면 이번에 만난 파도 위에서 수영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럼에도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특히나 이번의 커다란 파도엔 매번 익숙지 않은 일이겠단 생각을 했다.
버거워서 머리를 들어 올리고, 또 들어 올린다. 정신을 차리자고 해보지만, 눈으로 귀로 코로 들어오는 물에 나는 숨이 가쁘다. 불쑥불쑥 들어와 숨 가쁘게 만드는 물살들이 내 심장은 꽉 채우지만 않도록, 내 온몸이 사랑에 잠기더라도 마지막 최후의 손톱만한 이성의 끈까지는 타고 올라가지 않도록 머리를 쳐들고 쳐들었다.
그렇게 사랑을 감당해야 하는 건,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나의 몫이었다.
주변의 그 누구도, 나를 그 감정에서 건져내 줄 수 없음을.
사랑이란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임을.
무언가 밀려온다는 건 좋은 일일까?
흠뻑 빠져도 숨을 쉴 수 있는 사랑이 밀려든다면.
저기엔 속수무책으로 온몸이 다 빠져들어도 포근하고 따뜻하겠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렇지 않더라도,
무엇인가 밀려든다는 건 떨릴 만큼 설레고 떨릴 만큼 두려운 일임을.
지금은 비어버린 당신의 마음을,
한 때는 밀물처럼 한가득 채웠던 사랑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