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에 있던 첫날 나는 한 여자를 봤다. 타멜 지구를 지나, 가든 오브 드림에 가는 길이었다. 커다란 도로가 자동차로 가득했다. 매연과 흙먼지가 거리에 횡행하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 남매로 보이는 아이 둘이 서 있었다. 그 애들은 뭔가 잃어버린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수드라 계층이라는 걸 알았다. 공식적으로 철폐되었다지만 네팔의 계급제는 아직 남아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굉장히 앳돼 보였다. 많아 봐야 스물 중반이나 되었을까. 때가 타서 본래 색보다 어두워 보이는 옷가지와 잔뜩 엉킨 머리카락 사이로도 그렇게 보였다. 아이들이 그녀와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짐작했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가든 오브 드림은 계급제의 앞자리였을 어떤 장군이 지었다고 들었다. 영국의 건축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서양식 정원이었다. 조각상과 분수, 다양한 식물이 장식되어 고풍스럽게 보였다. 특히나 고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고작 담장을 사이에 두고 다른 세상에 들어간 것 같았다. 자동차 경적과 흙먼지가 넘어올 수 없을 만큼 담장이 높았다. 그녀는 이 담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을까?
짧은 관광을 마친 다음 날 우리는 포카라를 향해 떠났다. 본격적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시작했던 날이다. 버스로 가면 5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었다. 조금 더 비용이 들었지만 하늘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공항은 마치 시골 기차역처럼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50인승 정도 되는 작은 비행기를 탔다. 아마 버스 두 대보다 조금 더 길었던 것 같다. 자리에 앉자 승무원이 솜과 사탕을 나눠주었다. 의아했지만 곧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얇은 외벽 너머로 비행기 엔진 굉음이 고스란히 넘어왔다. 높은 고도에서 귀가 먹먹해지는 증상도 더 심하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네팔은 모래로 만든 도시처럼 보였다.
한 시간 정도 비행이 끝난 후 여행사에서 계약한 가이드와 만났다. 트레킹 내내 함께하며 길을 인도해줄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오래된 SUV를 타고 등산로 입구로 출발했다. 가는 동안 네팔 시골길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늘이 너무 파랗게 빛나서 마치 바다처럼 보였다. 대충 포장된 도로와 얼기설기 지은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어딘지 정겹게 느껴졌다.
볕이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선선했다. 산행이 너무 덥지는 않을 것 같았다.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수록 점차 인가가 줄어들었다. 한국과 다르게 논밭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방치된 들판이 대부분이었다. 웃자란 들풀이 한들한들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노인은 그 길 위에서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수레 가득 사과와 바나나가 담겨 있었다. 빨갛고 윤기가 나는 과실이 탐스러워 보였다. 노인은 하얀색 터번 같은 것을 쓰고 있었는데, 볕에 그을린 피부와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내가 화가였다면 도저히 참지 못하고 화폭에 가둬놨을 것 같은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림에 재능이 있어 본 적은 없다. 대신 슬쩍 사진을 남겨두었다. 노인은 아마 관광객들이란 하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나라면 그랬을 것 같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곧 잊어버렸다.
노인에 대해 떠올린 것은 한참 트레킹 코스를 걷던 도중이었다. 초입은 한국의 등산로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무료하게 걷고 있자니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젊은 날 노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수레를 끌며 어디로 걷고 있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