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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Doe Jul 06. 2022

딸기와 키위의 작은 변주, 카프리 과일잼

5월의 잼

처음에는 가급적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멀쩡한 과일을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쓸어 담는 건 마음 아프니까. 아까울뿐더러 죄책감이 든다. 잼을 위해 발휘할 실험정신에는 한계가 없지만, 통장잔고는 그렇지 않다. 보호본능이 샘솟는 이 자그마한 숫자들을 지키기 위해 영리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전문적으로 잼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 화학지식은커녕 늘 문송할 뿐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아무것도 모를 때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따라 하기다. 그저 찾기만 하면 된다. 어쩌면 검색을 위해 인터넷을 켤 필요도 없다. 마트를 헤맬 일도 아니다. 오래된 기억을 뒤적이다 보면 하나쯤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카프리의 태양! 이 단어에는 오렌지 향이 배어있는 것 같다. 나폴리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낯익다. 동일한 이름의 음료수 때문일 것이다. 카프리의 과일주스는 독특하게도 작은 은색 비닐 팩에 담겨있다. 어릴 적 마시기 아까워 한참이나 손에 쥐고 있던 기억이 난다. 미지근한 온도의 주스가 초여름 저녁 바람 같았다.


by 사진작가 김수환


비닐 팩 말고도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여러 가지 과일을 혼합한 맛. 딸기 키위주스가 그중 하나다. 처음 봤을 때는 이 조합, 과연 맞는 걸까 싶었다. 그래도 기업의 선택을 믿어보자. 두 과일이 주스가 될 수 있다면 잼도 가능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실패작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유는 없지만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는 보통 결과가 나쁘지 않다.


카프리 과일잼을 만드는 방법은 평범하다. 딸기, 키위의 비율을 맞춰 설탕 넣고 졸이는 것이 전부다. 레몬즙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키위 덕분인지 충분한 점도가 나온다. 산뜻한 향을 내고 싶다면 레몬 제스트 등을 추가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나는 보통 잼을 만들 때 과일을 1㎏ 단위로 맞춘다. 설탕은 제외한 양이다. 다른 의미는 없다. 그냥 계량하기 편해서다. 딸기 600g, 키위 400g, 설탕 300g을 사용했다. 설탕은 언제나 그렇지만 취향에 따라 가감하는 것이 좋다.


냉동 딸기 600g(칠레산), 냉동 키위 400g(국내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일 깍둑썰기다. 나는 보통 1㎝ 크기로 썰어둔다. 그러면 끓이는 과정에서 일부러 으깨지 않아도 된다. 과육이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며 적당한 식감을 유지한다. 품이 조금 더 들어가지만, 내 생각에는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키위를 썰 때는 고민이 조금 있었다. 가운데 하얀색 심 때문이다. 잘라내야 하는 걸까? 고심 끝에 그냥 잘게 썰어 넣었다. 맛에 있어 큰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끓는 과정에서 잘 녹지 않기 때문에 조금 신경 쓰인다. 믹서로 갈아도 괜찮지만, 주의해야 한다. 키위 씨가 잘게 쪼개질 수도 있다. 그러면 잼이 지저분해진다.


토마토 아닙니다. 딸기랑 키위입니다.


칼질이 끝나면 냄비에 모든 재료를 넣고 중간 불로 끓인다. 강한 불로 하면 가끔 설탕이나 과일이 타버리는 경우가 있다. 탄 부분이 잼에 들어가면 맛이 완전히 망가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러다가 수분이 생기고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내린다. 그 상태에서 졸여준다. 약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그동안 집안은 끓는 잼 냄새로 가득해진다.


카프리니까 이탈리아 국기를 만들어 본다. 반대로 놨다.


점도가 눈에 잘 보이는 편이라 타이밍을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끓는 상태의 점도와 식었을 때가 거의 비슷하므로 적당할 때 마치면 된다.


거품은 모두 걷어내 줍니다.


초점이 없는 적당 때


딸기잼은 단맛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향 역시 자기주장이 강하다. 함께 넣은 키위가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상관없다. 키위는 명품 조연이니까. 특유의 새콤함과 상큼한 향이 딸기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카프리 과일잼은 봄의 끝 여름의 초입에 어울리는 맛이다.


뚜레쥬르에서 산 롤케이크. 딸기잼은 역시 롤케이크다.


골드키위를 쓰면 조금 더 밝은 색상을 볼 수 있다.


이런데 보관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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