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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Doe Jul 13. 2022

꼭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은 연두부 소이밀크잼

11월의 잼

누군가 나에게 뮤즈가 되어줄 때가 있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 혹은 동물, 식물이나 사물. 그들이 가진 이름에서조차 반짝임을 느끼곤 한다. 그건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이야기한 ‘표지’일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매료되어 낯선 곳을 헤매는 건 기꺼운 일이다.


by 사진작가 김수환


콩도 잼이 된다는 건 이색적이다. 그렇지만 두유잼이 완전히 새로운 존재는 아니다. 예전부터 있었다. 그저 잘 몰라서 비건 밀크잼 정도로 여겼다. 그러다 최근에 두유잼에 두부를 섞으면 어떨까? 스쳐 가는 생각이 유리구슬에 비친 햇빛처럼 보였다.


두부를 섞는다면 모두부보다 연두부가 나을 것 같았다. 부드러운 식감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잼은 결국 수분을 상대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순두부도 제외했다. 연두부라는 이름이 예뻐 순전히 감으로 선택했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by 사진작가 김수환


문제는 외려 두유 고르는 일이었다.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 마트에 갔을 때 아주 혼란스러웠다. 두유가 우유 옆에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생크림과 아몬드 브리즈, 요구르트 사이로 아무리 살펴도 우유뿐이었다. 황망하여 한참이나 진열대 앞을 서성였다. 굉장히 수상해 보였겠지. 두유는 멸균가공 제품이라 그런지 상온에 진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두유는 종류가 많다! 삼육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베지밀은 향이 강한 편이라 잼으로 만들면 누룽지 사탕 맛이 난다. 개인적으로 매일 두유가 괜찮은 것 같다. 약간의 고소함 외에 다른 향이 없어 좋다. 딱 내가 찾던 맛이었다.


매일두유와 풀무원 국산콩 연두부


연두부 소이밀크잼을 만드는 방법은 조금 손이 간다. 기본적으로 두유 역시 우유처럼 순식간에 끓어 넘치는 탓이다. 꺼질 듯 약한 불로 작업해도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급적 옆에서 지키며 계속 저어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두유 570g(190㎖ 3팩), 연두부 500g(250g 2팩), 설탕 180g을 사용했다. 이때 연두부 함량이 높을수록 식감이 가벼워진다. 따라서 더 무겁게 만들고 싶다면 함량을 줄여야 할 것이다. 설탕 역시 단맛을 고려해 가감하면 된다.


두유 570g(190㎖ 3팩), 연두부 500g(250g 2팩), 설탕 180g


두유와 연두부는 믹서에 갈아서 사용했다. 연두부를 채에 으깨보기도 했지만, 입자가 곱지 않다. 믹서를 사용하면 재료가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크림처럼 부드러워진다.


끓는점까지는 강한 불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끓기 시작하면 반드시 불을 낮춰야 한다. 나는 이 타이밍을 자주 놓친다. 그래서 가스레인지에 늘 광이 난다.


재미있지만 효율적이지는 않다.


계속 졸이다 보면 밀크잼과 비슷하게 점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선택의 기로다. 너무 일찍 내리면 점도가 낮아 연유처럼 된다. 반대로 내리는 타이밍이 늦으면 뜻밖에 두유 푸딩을 만들게 될 수도 있다. 덩어리가 된 잼도 맛은 있지만, 슬프다.


밀크잼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


완성된 연두부 소이밀크잼은 은은한 단맛에 고소한 향이 난다. 따듯할 때는 마치 콩으로 만든 타락죽 같다. 입 안을 부드럽게 장악하다가 사르르 사라져버린다. 그대로 사용해도 좋지만, 새콤한 잼이나 소스에 곁들여도 잘 어울릴 듯하다.


피스타치오 껍데기는 먹으면 안 됩니다.


레시피를 작성했지만, 성공이라 부르기는 애매하다. 사실 두유만 사용해 만든 잼이 나을지도 모른다. 두유잼은 더 찐득하고 고소한 향이 강하다. 만약 깊은 풍미를 상상했다면 연두부 소이밀크잼에 아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만, 실패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멋진 결과물이 나온다면 물론 기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걸작도 그것을 만드는 과정보다 즐거울 수 없다. 취미란 그런 재미로 하는 거니까.


11월 즈음이면 슬슬 지난 계절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때 연두부 소이밀크잼을 꺼내면 좋을 것 같다. 한 입 떠먹으며 추억에 잠기는 순간은 부드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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