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잼 있는 삶

딸기와 키위의 작은 변주, 카프리 과일잼

5월의 잼

by Jane Doe

처음에는 가급적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멀쩡한 과일을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쓸어 담는 건 마음 아프니까. 아까울뿐더러 죄책감이 든다. 잼을 위해 발휘할 실험정신에는 한계가 없지만, 통장잔고는 그렇지 않다. 보호본능이 샘솟는 이 자그마한 숫자들을 지키기 위해 영리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전문적으로 잼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 화학지식은커녕 늘 문송할 뿐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아무것도 모를 때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따라 하기다. 그저 찾기만 하면 된다. 어쩌면 검색을 위해 인터넷을 켤 필요도 없다. 마트를 헤맬 일도 아니다. 오래된 기억을 뒤적이다 보면 하나쯤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카프리의 태양! 이 단어에는 오렌지 향이 배어있는 것 같다. 나폴리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낯익다. 동일한 이름의 음료수 때문일 것이다. 카프리의 과일주스는 독특하게도 작은 은색 비닐 팩에 담겨있다. 어릴 적 마시기 아까워 한참이나 손에 쥐고 있던 기억이 난다. 미지근한 온도의 주스가 초여름 저녁 바람 같았다.


월드컵공원017.jpg by 사진작가 김수환


비닐 팩 말고도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여러 가지 과일을 혼합한 맛. 딸기 키위주스가 그중 하나다. 처음 봤을 때는 이 조합, 과연 맞는 걸까 싶었다. 그래도 기업의 선택을 믿어보자. 두 과일이 주스가 될 수 있다면 잼도 가능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실패작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유는 없지만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는 보통 결과가 나쁘지 않다.


카프리 과일잼을 만드는 방법은 평범하다. 딸기, 키위의 비율을 맞춰 설탕 넣고 졸이는 것이 전부다. 레몬즙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키위 덕분인지 충분한 점도가 나온다. 산뜻한 향을 내고 싶다면 레몬 제스트 등을 추가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나는 보통 잼을 만들 때 과일을 1㎏ 단위로 맞춘다. 설탕은 제외한 양이다. 다른 의미는 없다. 그냥 계량하기 편해서다. 딸기 600g, 키위 400g, 설탕 300g을 사용했다. 설탕은 언제나 그렇지만 취향에 따라 가감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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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딸기 600g(칠레산), 냉동 키위 400g(국내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일 깍둑썰기다. 나는 보통 1㎝ 크기로 썰어둔다. 그러면 끓이는 과정에서 일부러 으깨지 않아도 된다. 과육이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며 적당한 식감을 유지한다. 품이 조금 더 들어가지만, 내 생각에는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키위를 썰 때는 고민이 조금 있었다. 가운데 하얀색 심 때문이다. 잘라내야 하는 걸까? 고심 끝에 그냥 잘게 썰어 넣었다. 맛에 있어 큰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끓는 과정에서 잘 녹지 않기 때문에 조금 신경 쓰인다. 믹서로 갈아도 괜찮지만, 주의해야 한다. 키위 씨가 잘게 쪼개질 수도 있다. 그러면 잼이 지저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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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아닙니다. 딸기랑 키위입니다.


칼질이 끝나면 냄비에 모든 재료를 넣고 중간 불로 끓인다. 강한 불로 하면 가끔 설탕이나 과일이 타버리는 경우가 있다. 탄 부분이 잼에 들어가면 맛이 완전히 망가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러다가 수분이 생기고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내린다. 그 상태에서 졸여준다. 약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그동안 집안은 끓는 잼 냄새로 가득해진다.


KakaoTalk_20220706_165844803_15.jpg 카프리니까 이탈리아 국기를 만들어 본다. 반대로 놨다.


점도가 눈에 잘 보이는 편이라 타이밍을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끓는 상태의 점도와 식었을 때가 거의 비슷하므로 적당할 때 마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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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은 모두 걷어내 줍니다.


KakaoTalk_20220706_165844803_07.jpg 초점이 없는 적당 때


딸기잼은 단맛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향 역시 자기주장이 강하다. 함께 넣은 키위가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상관없다. 키위는 명품 조연이니까. 특유의 새콤함과 상큼한 향이 딸기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카프리 과일잼은 봄의 끝 여름의 초입에 어울리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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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레쥬르에서 산 롤케이크. 딸기잼은 역시 롤케이크다.


KakaoTalk_20220706_185019662_04.jpg 골드키위를 쓰면 조금 더 밝은 색상을 볼 수 있다.


KakaoTalk_20220706_185019662_02.jpg 이런데 보관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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