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땅에 붙박이로 고정되어 있는 식물도 모세관 작용으로 영양분과 물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이동이 멈춘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숨을 내쉬고, 죽을 때 숨을 거둔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호흡이 쉬지 않는다. 호흡이 멈추는 것은 곧 '죽음'이다.
한 생명체가 유지된다는 것은 다른 생명체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 많다.
그런 가운데 공존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내내 몸밖의 생명체가 몸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각 생명체들은 각자 살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나라는 생명체의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가 내 몸속의 일부로 전환되게 하는 것이다.
밥이 되는 쌀은 어느 해 논바닥에서
뿌리내리고 햇빛 받으며 자란 생명체이다.
오늘 아침 밥상에 오른 김치는 얼마 전까지 햇볕 받으며 밭에서 무럭무럭 크던 생명체이다.
점심에 먹던 제육볶음은 어느 시골에서 새끼에게 젖을 주던 돼지일 수 있다.
반찬으로 입속에 들어가는 생선은 어느 시기에 너른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던 물고기이다.
반면,
하나의 생명체도 건드리지 않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있다.
육식을 하지 않으려는 채식주의자를 비롯해서 심지어 사과를 먹을 때도
어느 스님은 칼을 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자이나교도들은 길가의 벌레도 죽이지 않기 위해 빗질하며 걷는 경우도 있다.
자연은 평화로운가?
따스한 햇빛을 서로 받고자 식물 간의 소리 없는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숲 속의 아름다운 꽃은 살아남은 자의 향연이다.
식물도 터 싸움이 극심하다.
소나무 아래에는 식물이 드물다.
숲 속의 아름다운 새의 노래는 나무의 벌레를 먹어야 가능하다.
아름다운 꽃나무 아래에서는 사마귀에 잡아먹히려는 메뚜기의 처절한 생존싸움이 있다.
아름다운 사슴의 뿔은 여차하면 생명의 위협에 맞선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
잡아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 모두 사활을 건 생존투쟁의 현장이다.
풀은 땅 속의 미네랄을 해체하여 세포 내에 간직한다.
사슴은 풀을 해체하여 몸을 유지하는데 요긴하게 쓴다.
사자는 사슴을 사냥하여 내일의 생존을 기약한다.
사람은 식탁 위의 음식으로 자기 몸을 유지해 간다.
결국 한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가 자기 몸속으로 들어와
필요한 형태로 해체되어 배치된다.
한 생명체의 존속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는 사라져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생명 순환의 고리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멋진 향연을 보고 있을 따름이다.
길가의 야생화는 잡초의 억센 뿌리와 잎줄기를 헤쳐야 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도 결국 무無로 돌아가버린다.
생명의 불꽃이 꺼지고 나면 생명체를 이루고 있던 모든 분자들은 흩어져서
다른 생명체의 일부로 다시 태어난다.
불교의 윤회요, 기독교의 부활이랄까.
우리 몸속의 수소는 빅뱅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원소들은 별과 초신성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생명이 다하면 훗날 다시 우주로 흩어져 다른 생명체의 일부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혹은 자연의 일부로 남아 다음 쓰임을 위해 기다리고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