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북이 Jul 28. 2024

이세탄 백화점에서 셀린느 백 사는 남편의 미션 수행기

아내가 행복하면 됐어

주짓수 체육관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생긴 땀을 샤워로 시원하게 흘려보내고, 미노와 숙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해외여행이 처음이라 구글 맵 사용이 익숙지 않았던 친구는 내가 운동하고 있었던 사이 숙소에서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에게 뭐 하고 있었냐 물어보니, 숙소에서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다 가끔 담배 피우러 밖을 나갔다고 했다.


주짓수를 하러 가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될 거라고 미리 양해를 구했었지만, 해외여행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 없던 그를 숙소에 내팽개 치고 혼자만 신나게 시간을 보내고 온 자신이 이기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마음이 영 불편했다. 필요한 것만 후다닥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친구의 목덜미를 잡아채어 신주쿠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핵심임무, 명품백 사기

신주쿠는 대형 쇼핑몰과 트렌드 한 편집숍이 몰려 있어, 뚜벅뚜벅 걸어 다니며 쇼핑을 하기 좋은 공간이다.  나와 친구는 이곳에서 완료해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미션이 있었다. 미션에 실패할 시,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가정에서 비난과 형벌에 처하게 된다. 그 미션은 바로 명품백 사기였다. 나는 아내의 ‘셀린느 트리옹프 캔버스&카프스킨’을 , 친구는 여동생의 ‘바오바오 가방’을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한국보다 값싸게 구매할 수 있다. 엔화가 원화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고, 백화점에서 외국인에게는 게스트 카드를 발급하여 추가 5프로의 할인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설득당하며, 미션을 수령받게 된 이유이다.


백화점은 한국과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셀린느 대기열에 줄을 서 있으니 앞 뒤로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매장 밖에서 약 30분 정도 기다렸나 점원이 나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시간은 오후 세시를 향하고 있어 아내가 갖고 싶은 가방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재고가 남아있다.



해당 모델은 사이즈가 두 가지가 있는데, 아내는 나에게 작은 사이즈를 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점원에게 아내가 원하는 사이즈를 정확하게 체크하고 혹시 몰라 한국에서 열일하던 아내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회사 옥상에서 영상 통화를 받은 아내의 억양이 흥분감에 사로잡혀 고조되어 있다.


혜화동의 오피스 옥상에서 아내의 원격 쇼핑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남편이라는 아바타에 접속해서 이세탄 백화점의 셀린느를 한 바퀴 구경했다. 진열되어 있는 가방을 하나씩 훑어보았고, 마음에 드는 가방이 있으면 점원의 어깨에 메어보게 하며, 본인이 가방을 어깨에 걸친 모습을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상상했다. 내 기억으론 이때 도쿄 여행 중에 아내와 가장 길게 통화를 했었다.


아내의 최종 선택은 역시 첫 번째 픽이다. 선택의 순간 늘 고민을 하다가 첫 번째로 돌아간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어 가방을 구매했다. 여성들이 왜 명품을 좋아하는지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아 매우 뿌듯하고,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백화점 오픈런을 하며, 명품 가방을 사가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래 굳이 모든 행위를 머리로 이해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애정하는 사람이 좋아하면 된 거 아닌가?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에서 나는 타인,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행복이 인생에 있어 개인의 충만한 가치가 될 수 있음을 생각했다.


비록 자신을 위한 선물을 하나도 사지 못한 것에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지만…


셀린느 트리옹프 캔버스&카프스킨 (출처: 셀린느) 


나는 이날 정가 230만 원의 ‘트리옹프 캔버스 & 카프스킨’ 가방을 190만 원에 구매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