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북이 Aug 21. 2024

06. 우리 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면 한다

교육관에 대한 질문 답하기

아내가 임신을 하고 새롭게 나를 찾아온 고민이 있다.  교육관에 대한 것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 요즘 들어 꾀나 심각하게 답변을 찾아가고 있는 질문이다.


과거를 톺아보며, 나의 결핍과 마주하기

나는 바닷 냄새나는 부산 영도의 한 가정에서 외동으로 자랐다. 자라면서 부모님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항상 교육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중고등학생 때 개인 과외와 학원 등을 한해도 빠짐없이 다니게 해 주셨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4년 등록금 그리고 미국으로의 교환학생을 다녀오게 해 주셨다. 이런 극진한 부모님의 지원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어졌다. 나와 아내가 서울에서 주거할 집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 자영업으로 악착같이 모으신 본인들의 재산의 대부분을 사용하셨다.


계속되는 부모님의 지원, 남들은 배부르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이것이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의 둥지를 벗어난 지 10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그들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난 느낌은 받지 못해서다. 부모님의 지원 아래에 있는 나는 언제나 그들의 그늘에 위치해 있다. 부모님은 나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도와주고 있다는 명분이 있어서인지, 지속적으로 나에게 가르침을 주려 하신다.


가르침의 유형은 이러하다.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어 저축을 해야 한다”, “회사에 오랫동안 헌신하라 “, “아이의 이름은 철학관에서 지어야 한다”.. 그들이 왜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항상 가슴은 이를 잔소리로 들으며 부모님과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의 인생을 조종하려는 부모님에게 반항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당신들이 살라는 대로 살아야 하는가?’


생각해 보면, 나는 뭐든 해주기를 원하는 부모님 밑에서 굉장히 수동적으로 자랐던 것 같다. 그래서 할 줄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부모님께 많이 의존적이었기 때문이다. 물은 위험하다는 말에 수영을 배우려 하지 않았고, 페달을 밟아 속도를 즐기는 자전거 또한 같은 이유로 능숙하게 타지 못했다.


또한, 가정 내에서 가구를 조립한다거나 물건을 고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결혼을 후에는 전기드릴 사용법을 몰라 헤맸고, 이를 배우기 기피했다. 아내가 설치해 달라는 조립형 가구는 또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사실 관심을 가지고, 실천만 하면 잘하게 될 수 있는 것을 누군가가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루게 된 것이다.


지금 와서 어려운 것을 기피하려 했던 과거는 나에게 아쉬움과 결핍으로 남아있다. 자양분이 될 수 있었던 많은 경험을 내가 놓친 것은 아닌가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과거의 나는 실패를 두려워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기피하고 수동적이었다. 현재의 시선에서 그것이 참 못마땅해 보이고, 과거의 자신이 애초로워 보이는 지점이다.


나의 교육관의 핵심 키워드는 ‘너가 해봐’

이런 나의 과거를 톺아보며, 나는 우리 딸 리가 삶에 있어 능동적인 자세를 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교육관의 핵심 키워드는 아마도 ‘너가 해봐’가 될 것 같다. 홀리가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때, 짜증과 답답함 감정을 제어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익힐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어디선가 자녀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나는 홀리가 인생이라는 광활한 실패의 파도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작은 성공을 축적하며 자신감을 갖고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홀리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실패 앞에 주눅 들거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홀리가 부모의 그늘이 아닌 주체적인 그늘막을 만들어 그 아래에서 쉬어가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