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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g May 06. 2021

베를린 클럽 탐방기 -1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유럽의 부활절 휴가는 가히 골든위크라 칭할 만큼 긴 연휴이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나에게는 부활절이 갖는 의미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약 일주일 정도 대다수의 가게들이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진짜로 쉬겠냐 생각하며 부활절 연휴에 대한 준비를 하나도 해놓지 않은 것이다. 알고 보니 다들 부활절을 맞이하여 일주일치 식량을 미리 구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휴 플랜까지 짜두었고 초짜 베를리너인 나는 뒤늦게 부활절 연휴 버티기 준비에 돌입한다.



 바로 베를린 클럽 탐방기.

연휴 때 나와 내 친구들은 독일에 만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여행을 준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클럽을 가기로 했다. 그 당시 우리는 베를린에 있는 모든 클럽을 매주 깨는 (?) 우리만의 퀘스트가 있었는데 주로 그날 갈 클럽을 정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 기준은 바로 클럽의 이름.

베를린은 모두가 알다시피 클럽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베억하인부터 시작하여 킷캣까지 다양한 테마의 클럽들이 있다.


 그날 내가 고른 클럽은 바로 Suicide Circus.

와 이름부터 벌써 흥미로웠다. 어떻게 클럽 이름이 Suicide Circus 일 수 있지?

어마 무시하게 당돌한 이름에 구미가 당겼고 나와 친구들은 클럽으로 향했다. 클럽의 도시답게 부활절 연휴였지만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부활절 연휴를 맞이하여 베를린으로 휴가를 온 외국인들도 많아서 연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수어사이드 서커스는 베억하인이나 다른 패티쉬 클럽처럼 드레스코드나 가드가 엄격한 편은 아니었다. 대충 베를린의 기본값 드레스코드인 블랙 정도. 물론 블랙 계열이 아니어도 들어가기 어렵거나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또한 베를린 클럽들은 입장 시에 핸드폰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여주는데 안에서 기상천외한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퍼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A whole new world...


 나와 내 친구들은 자칭 그린벨트 모임이라 부르는데 이는 아무도 우리에게 곁을 주지 않아서 너무나 청정지역이며 안전하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날도 역시 우리끼리 노는 것에 너무 심취하여 빠져 있었다. 우리에게 클럽은 이성을 만나러 가기보단 우리끼리 노는 것에 의의가 매우 컸기 때문에 오히려 그린벨트인 것이 너무나 편했다. 물론 틈도 없는 우리의 곁을 억지로 쑤시고 들어오는 불순분자들이 있다는 것은 한국과 크게 다르진 않다.


 그린벨트 모임은 절대 만취상태에서 노는 모임이 아니라 다들 제정신으로 들어가서 정신을 놓고 노는 편이다. 이 모임에는 각자 맡은 역할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데 간략적으로 소개하자면 친구 L은 주로 멋지고 쿨한 사람들을 찾아서 구경하는 수색대, 친구 K는 친구 L의 정보를 바탕으로 타깃에 접근하는 근거리 공격수, 그리고 나는 그린벨트에 접근하는 불순분자를 경계하고 처리하는 파수꾼의 역할이다. 또한 나머지 멤버들은 상시로 그 역할이 바뀌는 임시직을 맡고 있다.


 그날도 역시 친구 L은 입장과 동시에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로 조금 높은 단상에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거나 클럽 내부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는 편인데 그런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린 한 혼성 그룹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린벨트 멤버들 전부 그 그룹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가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라는 것일까...

그린벨트는 참지 않는다. 운명이란 것이 이렇게 얄궂게도 그 그룹 친구들 모두 아까부터 우리를 계속 쳐다보면서 뭐라고 말을 하는 게 이것은 필히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만났다는 신호인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계속 비슷한 위치에서 마주치며 옆자리에서 각자의 친구들과 노는 것이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비밀언어 한국어로 대화를 했다.


 "야 쟤네 인원 왜 이렇게 많아? 우리도 거의 9명인데 쟤네도 그 정도 되는 것 같아."


“춤배틀 신청할까?”


 "저 금발에 파란 눈 뭔데? 잘생겼는데? 여기서 제일 잘생긴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쟤가 여기서 제일 잘생긴 듯."


 혈기왕성한 20대는 그럴 수 있으니까..


 우리가  친구들과 이성적으로  하고 싶다는 이 아니라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우리들은 그린벨트 안에 있다면 언제든 새로운 사람들과 즐겁게 노는 것을 반기는 편이었다. 그린벨트 멤버들은 워낙 재밌게 노는 편이었고, 상대편 그룹의 친구들은 살짝 어리숙하지만 풋풋한 매력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친구 K 근거리 공격수답게 그들과의 간격을 점점 좁혀갔고 그렇게 우리  그룹은 계속 같은 자리에서 서로를 의식하며 각자 놀고 있었는데 흥이 오른 우리들은 한국어로 방언 터지듯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야 가까이 보니까 더 잘생긴 것 같아!!!!"


 그리고 그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친구에게 말했다.


 "너 진짜 잘생겼어! 여기서 네가 제일 잘생긴 거 너도 알지?"


 라고.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우리의 발언이 그렇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줄은...


 그렇게 신나게 놀던 우리는 잠시 쉬려고 바로 향했다.  

(베를린은 대체로 클럽들이 구조가 비슷한데, 여러 개의 방이 있고, 그 중간에 바와 모닥불이나 의자가 있는 작은 공터가 있다.)


 바로 가는 입구를 지나가려는데 우리 옆에서 놀던 그 무리 중에 우리가 제일 의식했던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그 친구가 입구에 손을 얹어 우리를 살짝 막고 있었다.


 순간 그린벨트 멤버들은 희비가 교차했다.

드디어 그린벨트를 해제할 용사가 나타난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명의 불순분자인 것인가?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는 와중에 그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친구가 우리에게 말했다.


 "어 혹시 한국사람이에요?"


 뭐야.


 너 뭐하는 사람이야. 왜 이렇게 한국말을 잘하지? 외국인 억양이 하나도 없잖아... 진짜 뭐야?


 우리는 일동 경악했다.


 "와 뭐예요? 왜 한국말을 이렇게 잘해요? 뭐야????"


 그러자 그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친구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저 엄마가 한국사람. 아 근데 옆에서 봤는데 진짜 잘 놀아요! 역시 한국인! 대박! 대박!"


 그는 엄지를 올리며 우리에게 '대박'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역시 한국인들은 잘 논다고 칭찬했다.

알고 보니 엄마가 한국사람이고 본인은 스위스 혼혈이라 스위스에 사는데 부활절 연휴를 맞아 친구들과 베를린에 놀러 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밝은 곳에서 보니 그는 금발의 갈색 눈을 가진 소년이었다.

 

 그렇게 제일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걸 (?) 몸소 깨달은 우리는 앞으로 어딜 가나 말조심을 하며 다시는 한국말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않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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