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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ul 14. 2024

기제사


오늘 부모님 기제사를 모셨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일이 며칠 상간이어서 기제사 날을 오늘로 정했었다.


나는 평소에 제사에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부모님을 추모하는 정성과 마음이니, 굳이 외적인 형식에 치우칠 필요 있겠나 여겼던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형제들이 모여 우애를 다진다는 의미가 없지 않겠지만, 그러기에는 여러 가지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우애는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다질 수 있다. 아직 형제들 하고 상의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내 의사를 표시해 의견을 모아볼 작정이다.


여러 가지 대안이 있다. 시간이 나는 자손들은 그날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인사를 올려도 좋고, 부모님을 절에 모셨으니 기제사 날 절에 가서 예를 표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교회에 다니는 형제는 절 대신 교회에 가서 부모님을 추모하면서 기도를 드려도 좋겠다. 그게 훨씬 더 자연스럽다. 부모님도 싫어하시지 않을 것이다.


만일 제사를 파하는 것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불효 아닌가 하는 일종의 죄책감이 든다면, 아들 딸, 장남 장녀 구분 없이 자손들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17세기 이전까지는 그렇게 했으니,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경우에도 물론 간략하게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시간이나 여유가 되는 형제들만 참석하는 것으로 한다.


형제들 사이에 반대가 있겠지만, 지금부터 기제사를 없애는 일을 좀 과감하게 추진해 보고 싶다. 우리 후손들의 처지나 입장을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혹시 이게 잘 되면, 명절 차례도 각자 자기의 집에서 간단한 추모식 같은 것으로 대체하면 좋겠다.


혹자 중에는 전통문화를 공부했다는 자가 뿌리의식도 없이 경박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느냐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통은 고지식한 답습보다는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로 대응하려고 한다. 이건 내 평소의 지론이다.


덧. 작금의 혼인과 관련한 형식은 거의 대개 허례허식에 가까우니, 내가 먼저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늘 다짐하고 있다. 늦게 본 딸이 둘인데 하나는 비혼주의자이고, 하나는 아직 결혼을 생각지 않고 있다는데, 혹 결혼을 하더라도 부조를 받지 않고 작은 식당에서 가족과 친구끼리 식사하고 덕담을 나누는 방식을 강하게 권유해 볼 생각이다. 여의치 않으면, 나는 내 주위에 알리지 않는 것으로 대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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