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탠드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이 한없이 작음을 새삼 느낀다. 나는 이 조그만 공간에 틀어박혀서 뭘 하고 있지? 작은 네모상자 안에 몇 시간째 은둔하고 있는지 나를 돌아보게 된다. 창문은 언제 마지막으로 열었더라? 겨울엔 특히나 방에서 하늘을 보기 힘들다. 굳게 닫힌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면서 방안에 고여있던 미지근한 온기를 헤집는다. 그리고 파란 하늘이 보인다. 창문을 조금 열었을 뿐인데 나의 공간은 저 하늘까지 우주까지 확장된다. 그래서 나는 약간 긴장했다.
낮이고 밤이고 내 방은 불이 꺼져있다. 책상 위의 스탠드만 항상 켜둔다. 노란빛이 나는데 하얀 조명을 가리고 있는 반투명 판이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탓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들어 10년 된 스탠드를 바꾸지 않는다. 흰색 빛과 노란색 빛을 섞어 만들어 낸 따뜻한 색의 빛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드다. 내 스탠드의 빛은 많은 빛깔을 가지고 있다. 가끔 보면 종이에 초록색이 보여 차갑기도 하다. 지금 이 말을 씀과 동시에 내 스탠드가 청록색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것도 원래는 하늘색이었는데 누레져서 청록색이 된.
이 사물은 나의 비밀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은밀한 일기장이 항상 이 녀석에게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의 거의 데스노트였던 일기와 중학생 때 사랑과 주접으로 가득했던 일기. 그리고 한동한 잠잠했던 고등학생 때의 일기. 근래의 일기는.. 난해하다. 일기장이 바뀌어도 스탠드는 바뀌지 않았다. 혼자 있어도 꽁꽁 싸매며 썼던 일기를 태연히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 갑자기 배신감 든다.
스탠드 아래에서 그린 그림도 수두룩 하다. 일기장만큼이나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낙서들도 다 이 녀석의 불빛을 한 번씩 받아봤을 것이다. 요즘도 내가 그리는 그림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전에는 망설이지 않고 그린 낙서들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이젠 망설이든 망설이지 않든(이 두 사이의 차이도 크지 않다.) 비슷한 톤을 유지한다. 그림이 약간 튜닝이 되었다. 자주 그려서 그런 듯하다.
그림의 경우 이 스탠드가 더 열일한다. 그림 그릴 때 없어선 안 되는 게 무드와 음악이다. (폼 잡는 게 아니라, 음.. 사실 맞다.) 노트북으로 음악을 틀고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두어야 비로소 연필과 종이가 움직인다. 그리고 스탠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도움을 준다. 다 그린 그림은 이 녀석 아래에서 찍어야 따뜻함이 담긴다. 물론 성에 차지 않아 보정 기능으로 따뜻함을 높일 때가 있는 건 비밀이다.
작은 방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