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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자 Mar 07. 2024

악의















                          

 부자와 가난한 자, 잘생기고 못생긴 자, 늙은이와 젊은이를 넘어 악의는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불현듯,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와서 입을 벌리고 한입에 삼켜 넣었다. 사람들은 악의에 삼켜지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악의에 삼켜질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악의는 우리 몸속에서 은밀하게 퍼지는 암과 같이 조용하게 스며들어 우리 삶 한 가운데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 피부를 찢고 드러난 진피에 꼬리를 집어넣어 알을 낳는다. 


  그런 의미에서 Q는 전형적인 악의의 먹잇감이었다.


  내가 아는 Q는 착한 사람이었다. 부지런하지는 않았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하기 위해 매번 고민했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일절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알게 되면 속상해한다는 이유로 담배조차 태운 적이 없었다. 가끔 술은 마셨지만 그 누구도 Q가 취한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그런 Q가 가끔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맑은 눈과 항상 희미한 미소를 가지고 있던 Q를 거의 모두가 좋아했다. 그러다 Q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약 4년 전의 일 때문이다.


  2년 남짓 사귄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하고 결혼을 약속했던 Q는 알기 어려운 이유로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고 긴 시간을 괴로워했다. Q는 갑작스레 닥쳐온 일에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했고, 전 여자친구에게 ‘제발 부탁이니 제대로 된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매달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성격 차이’ 뿐이었다. Q의 시선에서는 어떠한 이별의 징조도 큰 다툼도 없었기에 이별을 통보받았던 그날이 교통사고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내 차로에서 잘 주행하고 있다가 갑자기 옆 차로에서 끼어들어 들이박은 것 같다는 묘사는 그의 심정이 어땠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사고의 후유증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었다. Q는 필사적으로 괜찮은 척하려고 애썼지만 맑았던 눈은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물풍선처럼 변했고, 옅은 미소를 머금던 입은 과호흡 환자처럼 말하는 중간에도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내뱉곤 했다.

 그 숨소리에는 가슴 깊은 곳에서 시작된 축축하고 끈적한 괴로움들이 가득 묻어 끓는 가래처럼 앓는 소리가 종종 섞여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안전 이별’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무엇이 안전 이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Q의 전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다면,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Q에게는 분명 합리적인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우울해하는 Q가 혹시 위험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까 싶어, 내 집에서 며칠 재울 생각으로 데려와 Q와 함께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던 날로 기억한다. Q는 술에 취해 ‘자신은 사람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했다. ‘사람이 너무 좋아서 내 곁을 잠시나마 머문 사람이 떠나가면 참을 수 없이 괴롭다.’라고 말하는 Q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망설이다가, 사실 자기는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 꽤 오랫동안 왕따를 당했다며, 당시에는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꼭 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매일 같이 빌었다고 했다.


「지금 사람들은 너 다들 좋아하잖아.」


  내 말에 고개를 들고 스치듯 예전의 미소를 입가에 띄운 Q는 얼굴표정과는 정반대로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노력했으니까.」


  인간관계라는 것이 노력으로 따돌림을 당하다가 어지간한 사람들과 마찰없이 두루두루 사랑받는 일이 가능한 일인 것일까? 시간이 많이 지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면 그야말로 교육계에서는 혁명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흥미가 생긴 나는 Q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노력? 무슨 노력을 했는데?」


「쉬우면서도 어려워. 생존본능에 가까운 거니까.」


「생존본능? 그게 뭐야. 생존본능이야 다 있는 거지. 태어난 이상.」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생존본능이라는 것도 결국 학습의 영역이더라고. 나 어릴 때 아버지 직장 문제로 13번인가를 이사 다녔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거의 1년에 한 번 꼴로 말이야. 그러니까 사실 이게 되게 묘한 부분이거든. 뭔가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고 어려워지는 부분이 생길만하면 나는 다른 곳으로 떠났으니까. 누군가와의 갈등에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해결해본 적이 없는거야. 지금도 사실 그 방법을 잘 모르고. 그런데, 1년마다 새로운 학교, 완전히 새로운 친구들과 적응을 해야했단 말이지. 이사를 가지 않으면 학년이 올라가도 전에 같은 반이었던 애들도 있고 그래서 학기 초반에는 사실 막 다른 반 친구들하고 같이 다니기도 하고 그렇잖아. 같은 반에 친해지는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런데 나는 그런게 없었으니 뭐랄까, 매번 기반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관계성을 형성해야 했던 거야. 그리고 생각해봐. 이사라는 것이 학기 초 시작 시점에 맞춰서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미 자기들끼리 다 친해지고 난 다음에 내가 전학을 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면 이제 더 생존본능을 발휘해야 하는 거지.」


「그렇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머릿속에서 웹 드라마를 보듯, Q의 상황이 묘하게 재생되었다. 분명 친구의 불우한 어린 시절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이쯤 되니 공감보다는 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가 훨씬 중요했다. 어느새 잔뜩 상기되어있는 내 얼굴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더 분명하게 미소 짓던 Q는 다시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갈등이 안 생기게 했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집단마다 각각 고유한 색이 있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우려나. 학교 다닐 때 각 반마다 고유한 분위기가 있듯이 말이야. 그런 분위기를 빨리 읽는 거지. 뭐, 때로는 비겁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난 그게 적응이라고 생각했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그래 그게 정확한 표현인거야. 나는 항상 전학생이었고, 굴러들어온 돌이었으니까. 굴러들어온 주제에 모나있으면 아무래도 정을 맞는 것에서 끝나지 않겠지. 그러니까 거기서 특수한 포지션을 잡는 거야. 특별히 깝치지도, 위협이 되지도 않지만 뭔가 재밌고, 뭔가 흥미있어 보이게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거지. 어려우면 세일즈 비슷하다고 생각해봐. 면접도 비슷한거고. 결국 나를 파는 거니까.」


「뭔가 되게 어렵네.」


「쉽진 않지.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다 다르고, 나는 그걸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해서 행동으로 옮겨야 하니까. 이제 그게 실패했을 때는 왕따를 당하는 거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Q가 나를 대할 때도 마음과 감정을 나눴다기보다 필요에 의한 관계로 생각했을까? 


「그냥 뭐랄까 타인에게만 맞춰서 살다 보면 자기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되거나 그러지 않나? 좀 너 자신을 찾아봐. 너무 타인 위주로 맞추면서 살지 말고.」


  나의 말에 Q가 이번에는 전과 다른 비릿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너는 너 스스로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해? 나는 스스로 이런 사람이라고 한 문장이나 한 단어로 정의해볼 수 있어?」


「아니, 뭐... 그거야 그렇게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으니까.」


「그러면, 너가 5살 때랑, 10살, 15살, 20살, 그리고 지금의 네가 하나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변하지 않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건...야, 사람이 어릴 때랑 지금이랑 같냐.」


「그래, 내 말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야. 그때 그때 적응하면서 사는 거지.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본질에 조금 더 충실했을 뿐인 거고.」


「찐따새끼. 그래서, 나한테도 적응했냐?」


  살짝 격양된 내 말투에 Q는 미간을 치켜세우며 자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 그 이상 다른 의미는 없다는 듯 내 말에 대답했다.


「그렇지 뭐, 야, 그래도 재밌었잖아. 예전에 피씨방에서 밤새 게임도 하고, 술 먹고 벤치에서 자다가 해 뜨고 나서야 찜질방 가고, 그때 여름이었나.」


  감정이라는 것은 예고를 하고 찾아올 만큼 예의가 바른편이 아니어서 감정이 내게 다가왔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쯤이면, 상황은 느닷없이 찾아온 버릇없는 손님에 의해 엉망진창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Q는 감정이 찾아오는 시점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렸다. 마치 미리 방문하리라는 것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Q는 지금도, 곧 예고 없는 손님이 곧 찾아오리라는 것을 느낀 듯했다. 옛날이야기로 화재를 전환했지만, 나와 Q 사이에는 물을 잔뜩 머금은 명주실이 팽팽하게 당겨진 듯한 긴장감이 침묵 속에 담겨 있었다.


  흰 거품을 잔뜩 품은 감정의 해류가 나와 Q의 발목을 간질이고, 이윽고 종아리와 허벅지를 적시더니 가슴께를 넘는 너울에 누군가가 휩쓸려 넘어지면서 의식의 끈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Q에게 말했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나는 널 진짜 잘 모르겠더라.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네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어.」


  생각해보면 Q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Q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은 없었다. 그저 성격이 쾌활했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농구를 하거나 패거리들과 쏘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가진 재주를 잘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낸다는 것이 내가 아는 Q의 전부였다.


  학창 시절, Q와 꽤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나도 정작 Q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여자가 이상형인지, 예전에 혹시 좋아하는 여자가 있기는 했는지, 있다면 그게 누구였는지, 나중에 무엇을 하고싶은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슬픈 일은 없었는지, 또 기쁜 일은 없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먼저 Q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으레 친구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알 수 있었던 그런 정보들이 Q에게는 없었다.     

 나는 Q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나도 Q를 그냥 그런 사람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야, 아닐 거야. 말해주지 않은 Q가 이상한 거지. 그게 아니면 다른 친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겠어. 사람에게 적응한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건가? 애초에 Q는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던 거야. 나만 친구라고 생각했던 거라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그리고 나는 네가 바라보는 모습 그대로의 사람이야. 어릴 때와 비교했을 때, 그냥 가지를 조금 치고 키가 더 자라났을 뿐이야.」


「야, 너 아까는 정체성이 어쩌고 하면서 사람은 계속 변하고 적응한다며. 왜 말이 자꾸 바뀌냐?」


「사람은 변하지 당연히. 우리 외할머니가 사람은 12번도 더 변한댔어. 그렇지만 널 대하는 나는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야.」


「무슨 말이야 그게. 아니, 네가 날 어떻게 대했는데?」


  Q의 귓불과 목이 붉게 물들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려던 Q의 이성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동공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눈을 크게 뜬 Q가 다그치듯 내게 말했다. 


「네가 지금 그런 걸 물어본다는 것이 조금 그렇긴 하다. 우리 친구 아니었어?」


「친구 맞지. 아니, 맞다고 생각했지. 너한테 친구라는 의미가 뭔데? 너도 내가 친구기는 한 거야?」


  말을 하면서도 묘하게 왼쪽 눈가가 떨려왔다. 필사적으로 감정이 밀어닥치는 것을 막아내려고 애쓰다 보면 간혹 일어나는 신체적 반응이었다. 이것은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모습은 어른스럽지 못한 것이라는 교육의 결과물이었으며, 동시에 교육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미숙한 어른의 나머지 수업과 같은 것이었다. 불행히도, 밀어닥치는 감정을 완전히 숨기지 못했고, Q는 상대방의 감정변화를 읽어내는데 재능이 있었다. 


「그런 걸 물어보는 순간, 사실 친구가 아닌 건 아닐까 싶네. 어쩌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렇게 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만 나는 집에 가는 것이 좋겠다.」


  Q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과 짐을 챙겨 현관으로 몸을 돌렸다. 이겼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Q 또한 마음이 상한 것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다. 텅 비어버린 머리와는 별개로 가슴 속에선 불쾌한 액체가 거품을 내며 끓어올라 식도까지 차오르는 듯했다. ‘그러니 파혼을 했지.’라는 말이 거품을 타고 입안까지 차올랐지만 해도 될 말과 해선 안 될 말을 구분할 수 있는 이성은 남아있었기에, 역류성 식도염 환자같이 넘어오는 시큼한 위산을 꾸역꾸역 삼켜내듯 말을 집어삼켰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의미 없이 턱과 볼, 목덜미를 문지르다가 몇 분간의 침묵 끝에 짧은 한마디로 우리의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래, 들어가라.」


  그렇게 Q는 집으로 돌아갔고, Q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느릿한 동작으로 신발 뒷 축을 구겨신고 현관문을 밀고 나가 말없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Q의 뒷모습이 오랫동안 선명하게 남았다. 그 친구와의 관계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어느 순간에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시점에서 맞이하는 인간관계는 학창 시절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 Q를 그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심적으로 괴로워했던 Q의 상황을 고려하고 조금 더 마음을 넓게 쓰는 것이 더 적절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오랜 친구와의 관계의 근간을 흔들만한 Q의 관계 적응론을 이해하기에는 분명 참을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무언가 후회를 남기는 일이 발생 하면 과거를 여러 번 되돌려 재생해보곤 한다. Q를 보내고 이러면 어땠을까 저러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꽤 오랫동안 Q와의 대화를 복기해보았는데,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지점은 Q는 마땅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범위의 말을 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Q가 힘든 상황에 있지 않았더라면, Q는 내게 그런 자기 생각을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평소처럼 게임 이야기나 하며 어디 같이 놀러갈 곳은 없을지 찾아보다가, 배달 음식을 시켜서 술과 함께 먹고 마신 끝에 얼큰하게 취해 따뜻한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잠을 잤을 것이다. 다음 날 늦은 아침께 일어나 ‘아, 해장이나 하자’라는 말과 함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 다 씻지도 않은 몰골로 동네 국밥집에 들어가서 7천 원짜리 순대국밥을 하나씩 시켜 먹고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말과 함께 헤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어느 날인가 이런저런 생각 끝에, Q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내가 미안했다. 너 힘든 거 위로해주려고 그랬던 건데, 본의 아니게 내가 조금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서 상처를 준 것 같네.」


메시지 앞에 1이 사라졌는지 수시로 확인하다가, 수 시간 뒤 마침내 숫자가 사라지고 Q에게 답장이 왔다.     

「아니야. 괜찮아. 나도 미안해.」


  지극히 Q 다운 답이라고 생각했다. 어지간하면 갈등을 만들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답을 말할 수 있다면 위 문장이 모범답안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나랑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Q는 잠깐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개인 거래로 질소 20L를 통으로 구하고 가스조절기, 고무호스와 비닐을 추가로 구비 해서 일명 ‘탈출 봉지(exit bag)’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했다. 구글에 ‘자살’을 검색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자살의 형태로 비활성기체를 활용한 자살법을 알려주는 사이트가 나오는데, 비활성기체로 인한 자살은 고통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죽음으로부터 밀려오는 생명체의 당연한 반응인 공황발작만 잘 이겨낸다면 손쉽게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Q 역시 사람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생존본능이 앞서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에 자기도 모르게 비닐을 찢고 곧장 119에 살려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동네 맥주 가게에서 액션영화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는 Q의 모습은 어딘가 잘못 편집된 동영상처럼 느껴졌다. 영웅담을 늘어놓듯 과장된 몸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던 Q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Q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하니까.」


  조촐한 술자리를 마치고 Q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여느 2월과 같이 마땅히 추울 만큼 추웠다. 눈은 내리지 않았고, 간간이 부는 바람은 여민 옷 사이로 파고들어 알싸하게 취해 감각이 무뎌진 뺨의 존재를 다시 상기시켰다.


  생각해보면, Q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분명 Q도 그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행동했을 것이고, 아직 젊은 만큼 미숙하고 흔들리며, 으레 자기 위치에서 저지르는 실수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Q를 비난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운이 좋아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사람을 만났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Q는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했다. 그것이 미움받거나 버림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Q는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타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결코 버려지는 일이 없기를 바랬다.     


  학창 시절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무엇을 싫어하는지 말해준 일은 없어도, 주변의 누군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그런 Q도 때로는 자신을 이해받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이쯤 생각이 닿으니 Q가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의미에서 Q는 전형적인 악의의 먹잇감이었다. 자신을 위해서 그랬거나, 혹은 온전히 이타적인 마음이거나를 떠나서 주로 자신보다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살피려고 애쓰는 Q의 모습만 바라보고 다가오는 사람들은 진짜 Q의 모습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을 게 뻔했다. 나 또한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Q의 생각이나 마음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채로 계속 살아갔을 테니 말이다. 


  여태껏, Q의 밝은 겉모습 아래 빙산의 뿌리와 같이 숨 막힐 듯 깊고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차가운 슬픔과 상처를 함께 들여다봐 줄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내면마저 사랑해줄 것을 빙자하여 차마 감당하지도 않을 감정과 관계로 Q의 이타적인 겉모습으로 자신을 채우려는 악의들이 Q의 살점을 파고들지는 않았을까. Q는 어쩌면 알면서도 시간이 흘러 패여버린 살점 위로 박혀버린 굳은살과 같은 외로움으로 인해 그들을 떨쳐내지 못했다. 기꺼이 악의에 곁을 내어주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자신의 깊고 차가운 내면을 용기 내어 드러냈을 때, Q의 빛을 양분 삼아 기생하던 악의들은 변변한 작별인사 조차 없이 Q의 곁을 떠났을 것이다.     


  Q는 그저 외롭지 않고 싶을 뿐이었다. 자신의 삶이 그러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Q는 주어진 삶의 과제에 나름의 방식대로 대면해서 해결점을 찾아 나갔다. 그것이 정말 괜찮은 일이었는지 아닌지는 더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겠지만, 악의는 예외 없이 Q에게 조용하게 스며들어 Q의 삶 한 가운데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 피부를 찢고 드러난 진피에 꼬리를 집어넣어 알을 낳았다. 


  Q는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하니까’라는 말과 함께 가라앉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혼자 있을 때, 이따위 세상은 차라리 망해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랜 친구가 그런 꼴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만 보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 또한 무엇을 어떻게 해야 Q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어느 공익 광고의 말과 같이 따뜻한 말 한마디로 Q가 조금이나마 괜찮아질 수 있다면, 나는 Q에게 무슨 말을 건네줄 수 있을까. 


아마,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나도 그래’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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