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영도
어릴 적 살던 동네는 사 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이었다. 아주 예전에는 어촌으로 분류가 되었다고 했는데, 내 기억 안에서는 그냥 도시였다. 사실 그 이미지가 무색하게 제대로 된 카페조차 없어 친구들과는 무조건 그곳을 벗어나서 만나야만 했다.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이 섬의 이름을 생소해 했고, 사는 곳을 설명할 때면 늘 근처 번화가 이름을 대며 그곳 주위에 산다고 대답하기 일쑤였다. 젊은이들이 계속 떠나 노인 인구가 더 많은 도시, 집 앞을 나가면 바다가 있던 곳, 해수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물살이 거친 그 바다.
애정도, 애착도 없었기에 그곳을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산 지 이제 거의 6년이 다 되었는데, 그동안 그곳도 많이 바뀌었다. 지역 개발의 좋은 점은 특정 지역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의 폭을 넓힌다는 것이다. 어릴 때 창피해 동네 이름 언급도 꺼렸던 그곳은 이제 지역 청년 단체의 힘으로 타지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동네가 되었다. 더 새로운 것도 없었는데, 이제 모든 게 생경하다. '바다 뷰'를 강조하며 해안가에 자리 잡은 몇 개의 카페, 프랜차이즈, 문화 복합 공간. 개발이 전혀 되지 않아 방치 중이었던 곳곳이 가득 찼다.
집을 떠나 살면서 유독 바다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는데, 그건 결국 사실 그곳에 대한, 그리고 가족에 대한 것이었다. 나에게 바다는 가족과도 같았고, 늘 같은 기억 속에 있었다. 바다에 대한 애착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거였을까. 생동감이 넘치는 바다. 푸르른 바다 위 반짝이는 윤슬이 한껏 숨을 불어넣고, 철썩거리는 소리와 시시각각 달라지는 파도의 잔여, 빛깔. 이 모든 잔상의 정서는 사실 쓸쓸함이었다.
공간이 주는 깊은 잔상은 시각적 효과에 의해서도 지속되지만 때로는 후각이 더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바다를 닮은', '바다를 담은'과 같은 스토리가 붙은 향에 집착했다. 카펫 곳곳에 향을 입히면 자연스레 가족의 품과도 같은 그 섬의 정취가 생각난다. 섬을 끼고 있는 큰 바다, 그리고 섬 전체로 이어지는 작은 산. 파도에 발을 담그고 수파를 마음껏 느낀다. 옷이 젖는 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