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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youxarthur Aug 18. 2021

구깃구깃: 제로에 수렴하기 위해

일 년도 더 전 뉴질랜드에 잠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곳은 신이 정말 사랑해서 빚은 것마냥 입이 떡 벌어지는 자연 그 자체였다. 광활한 대지, 별이 와르르 내 품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 밤하늘, 마치 '그랑 블루'를 연상케 하는 푸르른 호수, 저 멀리 보이는 눈이 가득 덮인 산. 돌 틈 사이로 풀이 자라난 길을 따라 그토록 고대하던 빙하 앞에 다다랐을 때는 다소 실망하기도 했다. 분명 만년설이라고 했는데, 만년설은 녹지 않아야 하는데, 겨울바람의 품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빙하는 곳곳으로 흩어져 조각들만 물 위를 유영하고 있었다.


그게 우리 지구가 변하고 있음을 느낀 첫 경험이었다.



 

물 위를 떠다니던 빙하


만년설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중인 산



두 번째 주제로 '제로 웨이스트'를 선정하고 나서 소싱을 위해 관련한 자료를 많이 찾아보았다. 사실 이 무렵은 고금숙 작가님의 <우리는 일회용이 아니니까>라는 책을 읽고, 한창 관련하여 생각을 많이 하던 때였다. 집 근처에 알맹 상점이라는 제로 웨이스트 샵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망원 시장이 그런 활동을 활발히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종종 들렀던 곳이었는데, 그냥 지나쳤던 걸까.


북극곰이 터전을 잃는 등 환경에 관한 이야기는 익히 봐서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피부로 닿지가 않아 체감을 못 하고 있었다. 매년 고통스러운 여름이 오고, 필리핀에서나 경험했던 스콜성 기후가 닥치는 것에도 단지 날씨가 왜 이러나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저 오늘에 치여 다가올 미래를 예감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다 보니 놓치는 것이 많았다. 점차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실천해야 우리 지구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 이전에는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달 음식을 시킬 때 예전에는 무조건 일회용 수저를 받았는데, 이제는 설거지가 좀 귀찮아도 가지고 있는 식기류를 사용한다. 그러던 중 요기요에서 테라 사이클과 함께 진행하는 플라스틱 수거 캠페인에 참여했었는데, 처음에 그 수거함이 왔을 때는 귀찮은 일을 또 저질렀구나 싶어 하지 말까도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 배달 음식을 잘 안 시켜 먹어서 플라스틱이 안 나오기도 했었고. 그러다가 하나씩 일회용 컵이라든지 플라스틱 용기를 씻고 모아서 무사히 수거까지 완료했는데,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몇 주 뒤 테라 사이클에서 감사의 선물을 보냈을 때는 그 기쁨이 배가 되었다. 뭐라도 하나 해낸 것 같고, 되게 자랑스러웠다. 이런 기분으로 다들 생활 속에서 실천을 하는 것이겠지.


테라 사이클에서 온 카카오톡 메시지


콘텐츠를 시작할 때에도 너무 무거운 주제가 되지 않게 체험기 위주로 기획을 했는데, '용기 내 캠페인'을 직접 경험해 보니 생각보다 귀찮은 일은 아니었다. 용기를 씻는 것, 가지고 다니는 것이 조금 번거로울 뿐이지, 생각보다 많은 가게에서 거부 의사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용기에 음식을 받아 올 수 있었다. 사실 거절당하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사회가 점점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실천하고 나서 준 사람들 덕분이겠지.


이번에는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아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드는 캠페인도 기획해서 진행할 예정이라 더 뜻깊다. 업체와 직접 소통하고, 같이 MD를 정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기부한 병뚜껑이 어떻게, 어떤 색감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지 기대가 되었다. 그냥 버려지는 것들을 모아 이렇게 멋진 제품으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더욱 더 이런 제품들에 관심을 가져서 널리 알리고 싶었다.


첫 번째 주제와는 다르게 보다 폭넓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있는 주제를 선정한 만큼 그 속에서 배운 것도 많고 깨닫게 된 것도 많았다.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교훈이 아주 크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보다 선한 영향력을 콘텐츠를 통해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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