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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Nov 18. 2023

결못남 일기(05) - 동메달

브론즈-솔로-인생



# “결못남”이라는 단어를 그만 써야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했던 일본의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 때문에, 나는 “결못남”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자기 성찰을 위한 자조적인 표현이자, 동시에 풍자적인 의도였달까? 그러나 결못남, 결못남, 이 표현을 입에 달고 살았더니, 진짜로 결혼 못 하는 주박에 걸린 것을 깨달았다. 의도가 어떻든 스스로를 한계 짓는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


  뉴스를 보니 “골든 솔로”라는 표현을 쓰더라. 그러나 나의 삶은 찬란한 황금빛은 아니기에, 억지 긍정과 과대 포장의 표현은 하고 싶지 않다. 실버 솔로는 늙은 느낌이니 패스하고, 구릿빛-동메달-솔로면 그렇게 슬프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표기가 아닐까 싶다.


  모종의 계기로 만들었던 ‘결못남녀 단톡방’을 15일 만에 해산했다. 만난 적 없는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크기와 종류에 관계없이, 이별이란 것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체험이다.




면접관 역할을 했다. 

  나는 아직 면접관을 할 관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어쩐 일인지 면접 심사를 제법 보게 되었다. 나에게도 평가권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실질적 의사결정권자는 옆에 앉아있던 사장님들이었다. 


  맡은 역할을 (누가 가르쳐준 적 없지만) 나는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모든 지원자가 공평했다고 느끼도록 질문과 긍정감을 배분하는 것. 또는 기분 나쁘지 않도록 돌려 말하고 칭찬하는 것. 대화가 끊겨 어색하지 않도록 순발력을 발휘하는 것. 그러니까 이 숨 막히는 공기 안에서 완충재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것.


  왜냐? 나는 소개팅과 선개팅을 너무나 많이 해봤기 때문에, 상대의 컴플레인 없는 대화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그러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면접관의 자세라든지 주의 사항 따위를 가르쳐줄 필요가 없는 거다. 인생 경험을 통해 이미 충분히 배웠기 때문이다.


  사장이 말했다.

  “이런 (뛰어난) 애들이 여기 왜 지원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네가 여기 왜 다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어.”


  당신 때문에 다닌다는 립서비스 차원의 말을 건네려고 했으나(어느 정도 사실이다), 요즘 나에게 못되게 구는 사장이 미워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별말 없이 웃었다.




다녔던 N번째 회사에서의 부끄러운 기억이다.

  돈을 내고 결혼정보업체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법 이름 있던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사장이 정신을 갑자기 회까닥 했는지, 회사 이름을 바꿔버렸다. 커플매니저는 회사의 바뀐 이름과 예전 이름을 구분치 못 하고, 같은 회사 동료인 여자의 프로필을 나에게 보내왔다.


  내 마음에 드는 여성분이었다. 2천여 명 중에 이런 분이 계시는 줄은 전혀 몰랐다. 사내 커플로서의 미래를 순식간에 그려보았다. 돌이켜 보면 커플매니저에게는 그냥 거절하고, 회사 메신저에서 그녀에게 직접 말을 거는 것이 이용비를 아끼는 실용적인 선택이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정식 돌파’(?)한다는 어떤 신념이 있었던 거다. 혼활을 달리는 남자로서의 투지가 있었던 거다. 만남 주선 자판기와 같은 기괴한 생태계에서, 나는 바보 같은 순진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용기 내어 커플매니저에게 정식 진행을 요청했고,

  회사 여자에게 당연히 (커플매니저를 통해) 거절당했고,

  나는 한동안 회사 메신저에 로그인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둘 이유가 추가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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