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기 위해 묵직한 인생의 무게를 반으로 줄인다.
『흔들릴 줄 알아야 부러지지 않는다』의 저자 김정호는 아파트 옆 작은 수풀에 사는 들고양이에게까지 다정함을 건네는 사람이다.
그가 보이는 관심은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생명체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은 모두를 향한 이야기이면서도 독자 개개인을 향한 다정함까지 담겨 있어, 고달픈 삶에 위로가 된다.
책을 덮을 즈음엔,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30여 가지의 제법 '묵직한 지혜'를 선물처럼 받게 되니, 늘 흔들리며 사는 '인생의 무게'가 어느새 스르르 반으로 줄어든 편안함을 느낀다.
넘어졌다면 툭툭 떨어내며 다시 일어나면 되고, 항상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고 스스로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이 푸르른 가을날, 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프롤로그 - 오늘의 당신은 어제보다 지혜롭다 - 6쪽
인생이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비비안 그린
나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시련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저자 김정호는 어차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바람이라면 그저 바람 따라 흔들리기를 권한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삶의 시련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읽고 실천하며 꾸준히 노력하고, 흔들리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삶이 펼쳐지길 기원한다.
억지로 밀어내면 더 강하게 밀려든다 - 17쪽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애쓰는 대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을 잘 다스려서 상황을 건너간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든 그렇지 않든 주어진 것에 대해 우리가 첫 번째로 할 일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귀중한 시간과 삶의 에너지가 저항하는 데 허비될 뿐이다.
시간은 우리의 내적 고뇌를 자비롭게 기다려 주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고통을 자신의 성장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진짜 적은 내 안에 있다 - 25쪽
마음에도 적이 산다.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하고만 살 수는 없다.
어디를 가도 싫은 사람은 있다.
스스로 물이나 공기 같은 존재가 되지 않는 한 거슬리는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과의 동침'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몸이라는 배에 다양한 '적'을 함께 태우고 동침해 오고 있는 장본인이다. 내 속에는 얼마나 많은 내가 있는가!
적이란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적이다.
그리고 우리 내면에도 '서로 다른 욕구'라는 적이 산다. 상반되는 욕구를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과의 동침'은 필연이다.
성공적으로 적과 함께 나아가려면, 서로 '틀리다'라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특성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조화의 길, 윈-윈의 길을 찾아야 한다. 적들이 공존하지 못한다면 함께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하고 만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 31쪽
누구든 긍정적 특성을 개발하여 마음을 긍정적 상태로 만들면 더 행복해지고 더 건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현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낙관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무조건 긍정적인 것만이 좋다는 긍정교(敎)의 신도가 되면, 현실감각이 사라지고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하면서 꿈속에서 사는 듯한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마음 챙김'처럼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마음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힘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나를 가장 모른다 - 38쪽
마음 챙김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몸과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 챙김은 독특한 시선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바깥을 바라보지만, 마음 챙김은 바깥을 보는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스스로 제삼자가 되어 바라본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본다. 이렇게 바라보면 자신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질 뿐만 아니라, 자연스레 생각과 행동도 달리하게 된다.
사람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 - 47쪽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 측면만 보면 자신의 본모습만이 옳다고 집착한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세상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고, 우리네 인생 역시 단순하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반목과 미움도 모두 자신이 믿는 것만이 옳다는 생각에서 온다.
각자에게 자신의 기준은 절대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각각이 다 옳을 수 있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할 때는 모두 틀릴 수 있다.
중간이 아니라 중도가 필요하다. 중도는 이것과 저것의 중간이 아니다. 양극을 갖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하나의 잣대로만 사람을 보지 않고 서로 모순적인 전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봄으로써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선과 악,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는 모순적 현실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중심을 잡아야 쓰러지지 않는다 - 54쪽
마음은 변하고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평생 같은 이름을 가지고 사회적 행위의 주체로 살다가 죽지만, 결코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한다고 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특성을 잘 나타낸다.
건강한 마음은 조화에서 온다.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 전체를 비난하기도 한다.
죄책감이 느껴지고 우울해지며 자존감이 낮아진다.
이럴 땐 자신을 싸잡아서 비난하지 말고, '나'들 간의 화해를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이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듯, 마음 사회에서도 너그럽고 친절한 '나'가 환영받는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은 마음이라는 사회의 정치를 잘하는 것이다.
당신이 선택한 오늘을 사랑하라 - 62쪽
선택에 따른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대한 나의 태도와 그에 따른 행동이 더 중요하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와 행동 역시 나의 선택이다.
이 선택은 또 다른 결과를 불러오고, 이러한 선택과 결과의 반복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
선택의 결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선택의 시작이다.
한쪽 문이 닫히면 한쪽 문이 열린다.
우리 앞에는 한 번에 하나가 아니라 여러 문이 놓여 있다.
또한 우리 인생에서 문은 한 번만 열 수 있는 게 아니라 무수히 열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아프게 한 건 항상 나였다 - 69쪽
일상을 돌아보면 1차 스트레스가 2차, 3차 스트레스로 연결되면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경우가 상당히 잦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자. 살면서 누구도 첫 번째(1차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만들어 쏘는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있다. 고통은 첫 번째 화살만으로도 충분하다.
질문만 잘해도 문제가 해결된다 - 73쪽
고통이 엄습할 때 우리는 '왜'라고 묻는다.
그런데 이 '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저항의 왜'이고 다른 하나는 '수용의 왜'이다.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누구인들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상황, 싫어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이미 주어졌다면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다.
'수용의 왜'는 주어진 고통의 상황을 일단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가능한 '왜'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욕구와 선입관을 내려놓는 것이다.
마음에도 알고리즘이 존재한다 - 81쪽
"터널은 터널일 뿐, 지하철은 지하철일 뿐." '공황장애'를 겪던 사람이 치료를 통해 공황장애를 극복하고 나서 자신의 심경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산은 산, 물은 물'을 말하는 도인 수준의 언급을 한 것이다.
공황장애 환자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터널이나 지하철을 패닉의 대상으로 본다. 심리학적으로 표현하면 이 공황장애 환자는 터널이나 지하철에 대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연합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연합이 일상생활에 불편과 고통을 가져오는 병적인 연합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건 바로 그 연합을 해체, 즉 탈 조건화하는 것이다. 더 이상 패닉의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를 괴롭혀 온 것은 터널과 지하철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불안정한 내면 상태가 터널과 지하철에 투사되어 병적인 연합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통찰한 후, 그는 비로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연합이 무수히 존재한다.
연합 때문에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듯이, 이런저런 자극에 이렇게 저렇게 반응한다.
이런 연합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질병까지는 아니지만 삶에 고통을 가져온다. 그러니 평소 사람들과 어떤 연합을 형성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나뭇가지를 치듯이 건강하지 않은 연합은 쳐내고, 기존의 건강한 연합은 더욱 강화하면서 새로운 건강한 연합을 만들어 나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좋은 연합(혹은 인연)이 되도록 마음을 한번 열어본다.
행복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 86쪽
행복은 주관적이다. '주관적 웰빙(subjective well-being)'은 말 그대로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으로 자신의 삶 전반에 대한 '인지적 평가'와 '정서적 평가'로 구성된다. 이 두 가지 평가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행복도 수치화해 볼 수 있다.
-인지적 평가의 다섯 가지 문항-
다음의 각 문항을 '1(매우 반대), 2, 3, 4(중간), 5, 6, 7(매우 찬성)의 7점 척도로 평가한다.
너무 오래 생각하지 않고 솔직하게 답하면 된다.
대체로 나의 삶이 나의 이상에 가깝다. ( )
내 삶의 여건들은 아주 좋다. ( )
나는 내 삶에 만족한다. ( )
지금까지 삶에서 내가 원하는 중요한 것들을 이루었다. ( )
다시 태어나도 내 삶을 거의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 )
위 '삶의 만족' 검사의 점수는 최하 5점부터 최고 35점까지 가능하다.
충분한 자료가 쌓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한국인의 '삶의 만족' 검사 평균값은 20~22점대에 분포한다. 이 값은 경제 규모가 비슷한 서구 나라들과 비교할 때 낮은 편이다.
'정서적 평가'는 긍정적 정서는 많이 경험하고 부정적 정서는 적게 경험할수록 주관적 웰빙이 높다고 본다.
주관적 웰빙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행복의 '내용'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외부 조건만을 바꾸려고 애쓰기보다는, 내면의 조건, 즉 '나의 욕구는 무엇인가가?', '나의 능력이나 사고방식은 어떠한가?', '나는 지금 어떤 정서를 느끼나?', '나는 습관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등을 잘 알고 다루도록 해 본다. 내면의 조건을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다 - 93쪽
간절히 원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질 확률이 증가하기는 해도 모든 꿈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 꿈이 제로섬(zero-sum 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한쪽이 손해를 보는 상태) 게임과 관련된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러하다.
그러나 모든 꿈이 제로섬게임이나 상대평가의 규칙에 좌우되는 건 아니다.
이루어야 할 목표는 있으나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는 게임도 많다.
건강한 사람의 정원이 정해져 있어서 누군가 건강해지면 나머지 사람들은 건강이 나빠져서 암에 걸리고 당뇨나 심장 질환으로 고생해야 하는 건 아니고, 누군가 마음이 평화로우면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이 고통스러워야 하는 건 아니다.
누구나 욕심을 줄이고 명상하며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행복에는 외재적 동기의 충족보다 내재적 동기의 충족이 더 중요하며, 내재적 동기의 충족은 누구나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는 꿈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어떤 동기를 추구하고 어떤 동기를 내려놓아야 할지 현명하게 판단하고 실천해야 하며, 마음을 잘 이해하고 다스려야 한다. 이럴 때 진정 행복해진다.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는 삶의 태도 - 102쪽
특정 상황에 부정적으로 조건화된 몸과 마음에는 심리 상담이나 명상도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재학습을 통해 조건화에서 벗어나야(탈 조건화) 한다. 우리 몸과 마음은 특정 상황에 자동으로 반응한다. 사실 이러한 패턴은 대개 우리의 일상을 편하게 해 준다.
다만, 문제는 몸과 마음이 부정적 패턴을 그릴 때 발생한다. 인생에서 거듭된 역전패를 당하더라도 과정 자체를 즐긴다면 부정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일이 괴롭다면 의미를 떠올려라 - 108쪽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방법은 직업 종류가 아닌 직업을 대하는 개인의 태도가 직업 만족도를 결정짓는다.
2021년 직업 선택 요인에 대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직업을 소명으로 보는 사람보다 돈을 버는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이 9배 이상 많았다. 물질적 욕구가 지나치면 오히려 행복에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일이 아니라 의미를 바꾼다.
긍정 심리학의 대가인 셀리그만은 행복의 세 가지 요소로 즐거운 삶, 몰입하는 삶, 의미 있는 삶을 들고 있다.
여기서 의미 있는 삶이란,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위한 행동을 하며 행복을 느끼는 삶을 말한다.
지금 하는 일이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편의와 행복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일과 관련된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 할 것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삶이 편해진다 - 116쪽
스트레스는 밖에서 오지 않는다.
욕구가 있기에 스스로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것 아니겠는가. 적당한 욕구는 우리를 성장시키는 건강한 추동력이 된다.
하지만 욕구가 과도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과도한 욕구를 갖게 되면 결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 결과 항상 욕구 좌절 즉 '동기 좌절'이라는 스트레스 상태에 있게 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의 기도>라는 유명한 기도문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다른 사람에게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과도한 동기를 갖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과 만나도 즐겁지 않다면 자신에게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관심을 받아야 한다'는 과도한 동기가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일이 언제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바라는 바를 추구하되 지나치지 않도록 한다. 이럴 때 자연스럽게 행복해진다.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 '별일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서 날려 보내게 될 것이다.
고통은 마주해야만 사라진다 - 127쪽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회피하는가?
고통을 직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고통스럽다고 회피하면 더 큰 고통을 받기도 한다.
높은 곳이 두려우면 높은 곳에 안 가면 되지만, 원하는 직장이 고충 건물의 높은 층에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시어머니를 만나는 것이 고통스러울 경우, 시어머니를 피하면 당장은 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중에 관계가 악화되어 돌아오는 더 큰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터널이 무서우면 지하철도 못 타고, 운전할 때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 온갖 터널을 피해 한참 돌아가야 한다.
환경만 탓하면 안 된다.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편리해진 환경에서 불편을 견디는 우리의 인내력이 과거보다 많이 약해졌다. 외부 자극을 견뎌 내는 힘의 저하가 심리적 고통에 대한 인내심도 약화시키지는 않았을까?
한 논설위원은 "퇴영적인 아프다 타령으론 안 된다. 특히 기성세대까지 아프다고 징징대는 풍경은 더욱 꼴 보기 싫다"라며 '아픔, 치유, 위로 증후군'을 일갈했다. 사람들의 내면이 강인해지고 인격이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에 내면의 힘을 키우려는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
일상의 작은 불편부터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면해 보면 어떨까.
잠시 스마트폰을 끄고 마음을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머물게 하며 또렷이 깨어 있으면 어떨까.
즉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호흡은 어떠한지, 몸의 각 부위는 어떤 상태이고,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를, 있는 그대로 가만히 느끼는 마음 챙김을 해 보는 것이다.
딱 한 사람에게만 이기면 된다 - 137쪽
'동기 상태 이론'에 따르면, 동기가 없으면 스트레스도 없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원하지 않으면 동기를 없애면 된다.
그런데 동기가 없으면 웰빙도 없으므로 동기를 무작정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어떤 동기를 지니고 추구할 것이며, 어떤 동기를 버릴지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가급적' 외재적 동기'보다는 '내재적 동기'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행위 그 자체가 좋아서 하는 것이 내재적 동기에 따른 행동이라면, 행위 자체보다는 그에 따른 결과를 위해 하는 것은 외재적 동기에 따른 행동이다.
행복을 위해 추구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동기는 바로 '성장 동기'다
성장 동기는 인격 완성을 향한 동기이다.
긍정 심리학을 연구하는 피터슨과 셀리그만은 인간의 긍정적 특성을 24가지의 인격 강점(character strengths)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다음의 6가지 덕(virtues)으로 분류했다.
스트레스 상황이 동기 충족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물론 스트레스 상황은 너그러움의 동기를 충족시킬 '필요조건'일뿐이다.
'충분조건'은 실제로 너그러움을 실천했을 때 주어진다.
실천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작은 성공을 쌓아 나가는 것이다.
소소한 너그러움의 실천에 몇 번 성공하고 나면, 앞으로 맞이하게 될 스트레스 상황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는 기분 좋은 기대감이 생긴다.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다 - 145쪽
흑백논리는 중간은 없고, 답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판단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흑백논리는 종종 완벽주의와 결합하여 극심한 스트레스를 만들어 낸다.
흑백논리에 완벽주의가 붙으면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 상태를 '백白'이라고 할 때 하나라도 잘못된 것이 있거나. 실수가 단 한 번이라도 있으면 곧바로 '흑黑'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렇게 사고하는 사람들은 일을 추진하다가 한 번이라도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곧바로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금방 포기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자포자기 상태가 되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다. 자신은 뭘 해도 안 된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걱정을 없애려면 생각을 멈춰야 한다 - 149쪽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건강을 해치며, 급기야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머릿속 되새김질은 스트레스를 다룰 때 부적절하며,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오는 우리의 반응은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의도적 혹은 의식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으로 되새김질하면서 우울해하거나 화내는 행동은 본인이 선택한 것이다.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은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고 습관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부적절한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우선 그 스트레스와 관련된 생각을 멈추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해서 해야 한다.
마음을 스트레스 정서와 반대되는 평화, 행복, 사랑, 감사, 성취감, 기쁨, 재미, 도전, 희망 등의 긍정적인 상태로 바꿔 주어야 한다.
스트레스는 고통스럽지만 우리에게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알려 주는 기능을 한다.
몸의 고통과 마찬가지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성장과 환경 개선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스트레스는 잘 관리하면 오히려 약이 된다.
사실 스트레스가 없다면 성장도 없다.
더 가질수록 오히려 불행해지는 이유 - 156쪽
우리의 욕구는 몸에서 확장되어 사용하는 물건이나 사는 집까지 뻗쳐있다.
현대 자본주의 속에 사는 우리는 매일 새로운 욕구의 목록을 마음에 주입하고 있다. 새로 들어온 욕구는 기존의 충족된 욕구를 밀어내고 새롭게 충족해야 할 욕구로 자리를 잡는다. 욕구는 점점 몸집을 불린다.
욕구는 진화의 산물이다. 문제는 남들과 비교하는 항목이 근래에 들어 기하급수로 증가했고, 증가 추세가 멈출 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노력해서 돈을 벌면 얼굴과 몸을 고칠 수 있고 물건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고 더 좋은 서비스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그 결과, 돈 버는 데 더 집착하게 되고, 이를 위해 한국 같은 사회에서는 학력을 높이는 데 더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욕구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우리 마음을 구성하는 욕구들의 조화, 지구 생태계와의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자본주의 특성상, 물질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게 한다. 우리 마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욕구도 들여다봐야 한다.
단순히 과시하고 부러움을 받는 관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도 있다.
자신의 마음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 어떤 욕구가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지 정신 차려 살피지 않으면 외부 환경의 영향에 취약해진다.
일단 생겨난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쉽게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If you win the rat race, you are still a rat." - 경주에서 일등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쥐일 뿐이다.
여기서 '쥐 경주 rat race'란 극심한 생존경쟁 속에서 사는 삶을 비유하여 표현한 말이다.
당신은 어떤 경주에서 일등을 하고 싶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다 - 165쪽
부족감은 분노로 나타난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는 것도 알고 보면 사랑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사랑이나 존중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결국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사랑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먼저 내 마음을 채워야 한다.
나의 내면이 사랑과 존중으로 채워져 있을 때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든든함과 자신감이 차오른다.
인간관계에서도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고 여유와 너그러움을 지닐 수 있다.
이렇게 사랑과 존중을 내 속에 채우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자비 수행'이다.
자비 수행이란 나 자신부터 시작해서 가까운 사람에 이어 먼 사람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확장해 소망과 축원을 보내는 수행이다.
( )가 건강하기를.
( )가 평화롭기를.
( )가 행복하기를
( )가 성장하기를.
괄호 안에 먼저 나를 넣고, 다음에는 가까운 사람을 넣고, 가급적 생생한 심상을 그리며 자비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낸다. 매일 꾸준히 하다 보면 사랑과 존중이 마음속에 점차 튼튼하게 뿌리내릴 것이다.
약도 과하면 독이 된다 - 173쪽
심리학에는 적응에 관한 이론들이 있다.
감각과 관련해서는 '감각적응 이론'이라 하여, 같은 감각이 계속 주어지면 그 감각에 적응되어 느낌이 둔화된다고 본다.
행복에는 적응 현상이 있다. 새로운 음식을 먹거나, 자동차를 사거나, 집을 장만하거나, 월급이 올라가면 우리는 행복해진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이다. 올라간 행복 수준은 곧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우리 모두 늘 경험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행복에 적응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쾌락 적응' 혹은 '쾌락의 쳇바퀴 hedonic treadmill' 현상이라고 부른다.
쾌락 적응이 일어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쾌락을 느끼는 데 필요한 자극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전에는 별문제 없었거나 쾌락을 줬던 자극이 더 이상 쾌락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쾌를 주기도 한다. 한때 멋져 보이던 과거의 휴대전화 기종이 한물간 촌스러운 물건이 되고 마는 것처럼.
몸에 의도적으로 결핍을 주면 쾌락 적응의 부작용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핍을 준다는 것은 일정 기간 자극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새로운 자극 없이 이미 주어진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
행복은 결핍에서 온다.
모든 사람이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의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간에 유행했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 익숙해지면 그 소중함과 진가를 몰라보게 된다는 뜻이다.
양손 가득 쥐려고만 했던 것들을 가끔은 미련 없이 놓아 보자. 비운 자리에 행복이 차오를 것이다.
머리의 온도가 곧 마음의 온도다 - 182쪽
마음 상태에 따라 머리와 손의 온도가 함께 변한다. 명상을 하거나 유쾌하게 웃으면 머리가 차가워지는 동시에 손은 따뜻해진다.
반대로 기분 나쁜 일로 화가 나면 머리가 뜨거워진다. 화가 나는 것을 흔히 '열받는다'라고 하지 않는가.
온도는 상대적이어서 같은 온도의 물건이라고 해도 내 손이 차가우면 뜨겁게 느껴지고, 내 손이 뜨거우면 차갑게 느껴진다.
동양에서는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고 해서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고 했다.
서양에서 개발된 이완 법의 하나인 슐츠의 자율훈련법에서는 일종의 암시를 통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몸을 부위별로 나누어 팔, 다리, 배의 순서로 한 부위씩 따뜻하다는 암시를 주고, 마지막에는 이마가 시원하다는 암시를 준다.
이러한 암시는 마음이 편안할 때 몸은 이완되어 있고, 몸이 이완 상태에 있을 때 팔, 다리, 배는 따뜻하고 머리는 시원하다는 관찰에서 나온 것이다.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관찰 결과를 역으로 적용해 팔, 다리, 배는 따뜻하게 하고 이마는 차게 하여 몸을 이완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에도 비타민이 필요하다 - 189쪽
머리에서 떠오르는 대로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들'의 목록(웰빙 목록)을 써 내려간다. 쓰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이런 웰빙 목록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들 가운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행동들의 목록이다.
마음에도 다양한 영양소가 필요하다. 마음에 필요한 영양소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긍정적 정서'다.
긍정의 정서는 외부에서 주어지기도 한다.
칭찬을 듣거나, 오랜 장마 끝에 밝은 햇살을 만나거나, 멀리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올 때 우리는 행복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긍정적 정서는 스스로의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웰빙 목록을 작성하고 자주 돌아보며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긍정적 정서를 자가 공급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기분은 구르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부정적 정서 상태에서는 될 수 있는 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더욱이 중요한 판단이나 결정이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긍정적 정서 중심으로 스스로 써 내려간 웰빙 목록은 평소에 식사하고 비타민을 복용하듯이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실천하는 좋은 항목들로 되어있다. 평소에도 활용하면 행복이 증진되고 스트레스 발생도 방지할 수 있다.
나를 위해 타인에게 친절하라 - 197쪽
한마디 말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말뿐만 아니라 작은 행동에서도 우리는 감동을 받고 행복을 느낀다.
말이 관계를 만들고, 관계가 우리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때로 관계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관계 속에서 가장 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관계 속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 바로 '친절'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반복적이고 매너리즘적인 친절 행동은 행복에 별로 기여하는 것 같지 않다.
친절 행동이 행동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베푸는 사람이 행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습관적으로 실천해서도 안 되고, 행동도 신선해야 한다.
실제로 만성 질환이나 장애를 앓는 사람을 종일 돌보는 일은 종종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작지만 신선한 친절을 만들고 실천하면, 재미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이타심은 이기심에서 시작된다 - 204쪽
베푼 바 없이 베풀라. 보시 중에서도 최고의 보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었다는 생각을 품지 않고 하는 보시를 일컫는다. 심지어 무주상보시가 아닌 보시는 공덕이 없다고도 한다.
이치에 맞는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이지만 실천에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과응보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가 선을 베풀기 위해 노력하듯, *공과격(功過格) 역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공덕을 쌓는 이타적 행위를 하도록 이끈다. * 功過格이란 자신이 행한 선업과 악업을 수치화하여 기록해나가, 선업 점수를 쌓음으로써 신선이 되는 방법론이다.
우리는 욕망이 충족될 때 기쁘고, 욕망이 좌절될 때 괴롭다.
결국 타인을 향한 배려가 우리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켜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기쁨을 느끼게 하다.
이타적 행동을 통해 이기적 욕망이 충족된 셈이다.
처음에는 이기심에서 선행을 하고 고통을 감내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작은 나'에 대한 집착은 줄어들고, '나'의 크기가 점차 커진다.
처음에는 소아적 이기심으로 출발해도 나중에는 그 자체가 좋아서 실천하게 된다.
자, 이제 딱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미움의 악순환을 끊는 법 - 214쪽
나를 사랑해야 한다.(자기 자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으로 감싸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기 전에 먼저 자신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야단치고 비난하는 것보다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부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는 더 확실한 방법이다.
사랑은 전염된다(타인 자비)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따뜻하고 평화로워지면, 이제는 주변 사람에게도 사랑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을 가까운 사람에게는 바란다.
자식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고, 남편이 돈도 잘 벌고 가정적이기를 바란다. 남편은 아내가 이해심 많고 자신을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고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르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욕구가 좌절되는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사랑은 사랑을 가져오지만 미움은 미움을, 원망은 원망을 가져온다.
용서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미울 때, 그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 잘못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운함과 미움은 사실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었던 나의 속상함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일 때가 많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사랑과 존중은 서운해하거나 미워한다고 해서 얻을 수 없고, 강제로는 더더욱 얻을 수 없다.
미운 마음을 내려놓고 가만히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보낸다.
억지로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가만히 그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 나와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떠올린다.
차차 그 사람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이 솟아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상을 점점 넓히다 보면 인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을 대상으로 사랑과 자비를 보내는 데 이르게 될 것이다.
다정함이 우리를. 구원한다 - 221쪽
혼자 음식을 먹는 뒷모습은 성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슬픈 느낌을 준다.
먹지 못하면 괴롭고 결국 죽는 것은 엄연한 실존적 현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야 하고, 싫은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병에 걸려 고통받고, 늙어서 아름다움과 기운도 읽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이 세상도 언젠가는 떠나야 하지 않는가.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날 정도로 연일 흉포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모두가 힘이 드는 세상이다.
근본 원인은 갈수록 극으로 치닫는 현대 사회의 경쟁구도가 아닐까.
지나친 경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적의를 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며 채찍질로 다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평화와 행복을 경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마음이 점점 피폐해져 간다.
사회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해야겠지만, 치열한 경쟁 구조가 일순간에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구조가 변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사정이 매우 절박하다.
그래서 먼저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 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실존적 고통을 피할 수 없어서 슬프다.
슬프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모두 슬프다. 그래서 사랑한다.
나나 나 아닌 존재 모두 실존적으로 불가피한 고통을 애써 피하며 평화와 행복을 바라고 있음을 깊이 헤아릴 때, 마음속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게 연민과 사랑이 함께 녹아 있는 자비가 피어난다.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한 얼굴, 말, 행동을 보이게 되면 우리 사회도 그만큼 따뜻하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항복이 행복이다 - 229쪽
수행은 매일매일이 구체적인 삶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명상 수행 중에서는 행위 명상이 추천할 만하다.
행위 명상은 일상의 반복적인 행위, 즉 요리하기, 먹기, 설거지하기, 이 닦기, 청소하기, 걷기, 화장하기, 샤워하기 등을 행하며 욕구와 생각을 내려놓은 명상이다.
호흡 명상처럼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일상생활 중에 평화와 접속하며 욕구와 생각을 쉬게 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다만, 욕구를 느끼거나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중에는 명상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한편 마음 챙김 수행은 혼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마음 챙김은 제삼자의 눈으로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구, 생각, 감정, 감각, 행동 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평상시에도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해 깊이 통찰할 수 있고, 그 결과 행복도 증진된다.
물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짜증, 화, 불안, 우울 등 부정적인 정서가 강하게 올라올 때는 조건화된 반등들이 연쇄적으로 나타나서 마음 챙김을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
이럴 때는 '항복'과 함께 마음 챙김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항복한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저항하지 않고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항복할 때만큼은 모든 일이 나의 욕구대로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주어진 상황에 내가 항복하는 것이 곧 에고를 항복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항복에는 수행의 동기가 충족되는 은근한 즐거움이 있고, 이것이 수행을 지속시키는 힘이 되어 준다.
항복과 함께 마음 챙김 하는 수행은 일상생활에서 작은 일들에서부터 조금씩 꾸준히 에고의 항복을 실천하는 수행이다.
열 개의 회초리를 한 번에 꺾을 수는 없지만 하나씩 꺾으면 모두 꺾을 수 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수많은 에고가 있다.
그러나 수행의 동기를 가지고 올라오는 에고마다 하나씩 항복을 받으며 마음 챙김 하는 거기엔 수행의 즐거움이 담겨 있기도 하다.
다만 머무른 바 없이 마음을 낼 뿐이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基心)
후회 없는 마지막을 맞이하려면 - 238쪽
항간에는 '구구팔팔이삼사'라는 말이 유행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는다'라는 뜻으로 현대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소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의학 발달로 수명은 놀랄 정도로 증가했지만, 그와 함께 삶의 질도 높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생명이 연장된 시간만큼 의미 있는 삶도 연장된다면 모르지만 대개는 고통이 연장될 뿐이다.
이는 환자의 고통뿐만 아니라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가족의 고통도 함께 연장된다.
그 사이에 치료비 부담까지 겹친다면 고통은 환자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남겨진 가족이 넘겨받게 될 수도 있다.
사회문화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나 철학이 새롭게 정립되지 않으면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스스로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때 불필요한 치료를 받지 않도록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면, 자신의 치료를 스스로 결정하여 가족이 의료 관련 결정을 내리는 부담을 줄이고 본인과 가족 모두 죽음을 조금 더 편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다. 아울러 평소에 건강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서 좋은 죽음을 맞이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 245쪽
평소에 똑같은 사물이나 사건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면 관점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특히 현대 사회처럼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공존하는 시대에는 자신의 의견을 절대화해서는 안 되고, 다원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하지만, 스스로 상식이라고 알던 것 가운데 상당 부분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자명해서 상식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상식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 유럽 언론에 실린 마호메트 풍자만화 때문에 이슬람 국가 곳곳에서 성난 시위가 일어나 유혈사태까지 간 일이 있었다.
이것은 서방세계 사람들과 이슬람 세계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이 서로 달라서 일어난 일로 보인다.
한 사람 혹은 한 집단에서는 너무 당연해서 상식처럼 생각되는 것도 다른 사람 다른 집단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 더불어 사이좋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태도다.
자신의 생각에서 한발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나만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다.
책을 마치며 - 당신의 마음이라는 세계 - 251쪽
우리에게 감각기관이 없다면 색, 소리, 냄새, 맛, 접촉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하지 않고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부 세계의 '참모습'을 말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인식과 독립적인 존재의 '참모습'은 없다.
세계의 존재와 세계에 대한 인식은 나눌 수 없다.
존재와 인식은 둘이 아니다.
이 모든 세계가 나의 뇌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무한한 우주 속 티끌보다 작은 뇌가 있고, 그 작은 뇌 안에 다시 무한한 우주가 표상된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하나의 티끌에 온 세상이 담겨 있다.
무한한 우주 속에 티끌보다 작은 지구가 있고, 그 지구 안에 비교할 수없이 더 작은 80억 명의 뇌가 있으며, 그 속에 80억 개의 무한한 우주가 표상되고 있다. 지구에 어디 인간만 있는가. 무수히 많은 생명이 있고, 그 많은 생명이 나름의 우주를 표상하고 있다.
달은 하나지만, 천 개의 강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아들딸이 하는 인터넷 게임의 세계는 우리 집 거실의 컴퓨터 모니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집에도 존재할 수 있고 지구 반대편의 어느 집에도 존재할 수 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동일한 게임 공간에 들어와서 같이 돌아다닌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매트릭스 공간에서처럼.
이 모든 세계가 나의 뇌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나의 뇌는 또 어떠한가.
나의 뇌는 어떤 실체인가.
나의 뇌 역시 나의 마음에서 뇌라는 모습으로 인식되는 세계의 일부다.
외부 세계를 포함해서 나의 뇌, 몸, 생각 등이 모두 내 마음, 내 의식이다.
애당초 뇌와 뇌 밖의 세계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가정이다.
우리가 밤에 꿈을 꿀 때 그 꿈은 통째로 하나의 꿈이다.
하나의 꿈속에 산과 강도 있도, 나와 친구도 있다. 분리할 수 없다. 그냥 하나의 꿈 세계다.
꿈은 통으로 나의 의식인데 그 속에 산과 강을 나누고 나와 친구와 적을 나누고 울고 웃는다.
꿈속에서 아무리 돌아다녀도 한 걸음도 꿈밖으로 나가지 못하듯이 나는 나의 의식세계를 나간 적이 없으며, 거리의 아스팔트 위로 내리는 저 비도 내 마음에 내리는 비다. 아니, 저 비도 내 마음이다. 결코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고 만법유식(萬法唯識)이다.
모두가 물에서 일어나는 물결이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이리고 불리고 의식의 세계일 뿐이다.
이 세계가 오직 내 마음이 만든 세계임을 알아도 일상생활에서는 이 앎을 자꾸 놓친다.
중력과도 같은 에고의 업력(業力)에 자꾸 끌려 들어간다.
일상생활에서는 가급적 마음 챙김을 놓치지 않으면서 지혜와 자비로 에고의 업식을 녹이며 행동에 어긋남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지구에 오면서 빌려온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때때로 흔들릴 것이다.
삶의 매 순간 휘청이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결국 우리를 더 성숙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흔들릴 줄 아는 사람은 결코 부러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