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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책읽기

2장 |성장|『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안인모 저

by Someday

우리는 평생 성장(成長)하며 살다가 돌아갈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크기ㆍ무게ㆍ부피가 쑥쑥 자라 점점 커지던 시기의 겪던 성장통도 이젠 아련한 먼 지점에 딱 머물러 있다. 그때는 심한 통증이었지만, 지금은 종종 뿌듯함이 느껴지던 젊은 날의 성장통이었다.

흘러가는 시간 따라 육체적인 성장이 멈추면서 성장통도 자연스레 함께 멈췄는 줄 알았는데, 이 멈춤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노화하고 쪼그라들면서 여기저기 또 다른 통증이 늘 들고나니...

그때나 지금이나 성장(?) 통을 겪고 있다니, 피식 쓴웃음이 나온다.

육체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 영혼이며 마음의 평정이지만, 아직은 스스로 느끼며 생각하고,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으니,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늘 되뇌며 살게 된다.

한 권의 책 『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를 SNS에 기록으로 남겨두니, 항상 읽고ㆍ 보고ㆍ 들을 만한, 글ㆍ그림ㆍ음악이 다양한 조화를 이루며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펼쳐보면, 어지러운 세상사를 잠시 잊게 해 준다.



|성장|

꺾이지 않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기적 - 64쪽


앤드루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

: 화폭에 담긴 크리스티나는 화가 와이어스의 이웃이다. 그녀는 퇴행성 근육 장애로 걷지 못했지만,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고 두 팔로 기어 다녔다. 와이어스는 집을 향해 기어가는 그녀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받았던 강한 인상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크리스티나의 시점에서 거대해 보이는 언덕을 바라보게 된다.

언덕을 힘겹게 기어오르는 크리스티나를 보면서 위대한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이 떠오른다.


매일 되풀이되었을 그녀의 도전은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과 함께,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갑니다. - 70쪽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901

: 라흐마니노프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악가이다.

그의 음악은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깊은 울림을 주며, 내재된 슬픔과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공존한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로 천천히 한 음 한 음 충분히 소리를 낸다.

이 곡은 몽환적인 플루트 소리에 이어 클라리넷이 이끄는 음이, 마치 라흐마니노프의 맺지 못한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만 같다.

그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기점으로 이후 10년간 수많은 걸작을 쏟아내며 인생의 황금기를 맞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HfPE3cgYyco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낄 때 - 72쪽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약 1818

: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 우리는 한 남자가 맞닥뜨린 풍경에서 처연한 외로움이 느껴진다.

화가의 자화상으로 보이는 이 그림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당당한 뒷모습을 담은 많은 영화 포스터들은 바로 이 그림을 오마주한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다음 해에는 큰 누나가 세상을 등진다.

13살 때는 얼음 위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남동생이 호수에 빠진 자신을 구하려다 그만 익사하고 만다.

프리드리히는 죄책감에 빠져 자살 시도까지 하지만...

그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안고 평생 우울에 시달리며 고독하게 산다.


구스타프 말러 〈나는 세상에서 잊히고〉, 1902

: 아버지가 어머니를 이유 없이 때리는 가정폭력을 보며 자란 아이는 성장해서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알린다.

말러의 화가 프리드리히처럼 비슷한 성장통을 겪는다. 열네 형제 중 6명이 유아기에 죽고, 말러가 15살 때는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사망한다. 29살 때 부모님과 여동생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고, 남동생은 권총으로 자살한다.

죽음에 대한 경험은 말러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준다.

말러의 가곡 44곡 중 절반이 뤼케르트의 시를 가사로 한다.

42세 때 <<뤼케르트 가곡집>>을 작고한다. 그중 3번째 곡 <나는 세상에 잊히고>는 속세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소박한 삶을 이어가고자 한 뤼케르트의 동양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나는 세상에 잊히고

오랫동안 세상과 멀어져

이제 어는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네.

그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사실 나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제 이 세상의 동요로부터 멀어져

고요한 나라에서 평화를 누리네.

나 홀로 살리라.

나의 천국에서

나의 사랑 안에서

나의 노래 안에서 - 프리드리히 퀴케르트의 시 <나는 세상에서 잊히고>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FVkNBEDtows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 78쪽

파블로 피카소 <나, 피카소>, 1901

: 피카소는 15세에 첫 자화상을 그린 뒤, 91세까지 꾸준히 자화상을 그렸다.

그가 생을 마감하면서 그린 <죽음의 자화상>에는 두려운 표정의 병든 피카소를 만날 수 있다.

자화상은 이처럼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못하는 인간의 생체 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중, 피카소가 20살 꽃청춘일 때 그린 자화상이 <나, 피카소>이며, 이 그림에는 피카소 자신의 존재가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나는 마리아야>, 1968

: 아르헨티나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의 탱고 아리아 <나는 마리아야> 노래 속에는 마리아의 자신감이 꽉 들어차 있다.

이 곡은 탱고를 오페라와 접목한 작품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 뒷골목 사창가를 떠도는 하층민의 삶과 죽음 등을 다룬 이야기다.

2막 구성의 작은 오페라로 총 17곡이 들어있다.

그중 마리아가 부르는 <나는 마리아야>의 가사에는 그녀의 당당함, 센 언니의 걸 크러시가 묻어난다.


나는 마리아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마리아.

내가 누군지 안 보여?

탱고의 마리아, 뒷골목의 마리아.

치명적인 매력의 마리아.

사랑의 마리아! 바로 나야!

난 항상 내게 말해. "가자, 마리아!"

난 아직 아무도 부르지 못한 탱고를 부르고

아직 아무도 꾸지 못한 꿈을 꿔.

왜냐면 내일은 어제 다음의 오늘이거든. - 82쪽


https://www.youtube.com/watch?v=nrifmrtyN8A



내게 어울리는 색이 가장 좋은 색이에요 - 84쪽


마리 로랑생 〈샤넬 초상화〉, 1923

: 로랑생은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필생의 사랑을 한 뒤 헤어지고, 독일 남작과 결혼하지만 신혼여행 중에 터진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파리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스페인에 머무른다.

국가에 재산까지 몰수당한 로랑생은 이혼하고 파리로 돌아와, 어느 남작부인 초상화를 그려준 계기로 파리 미술계에 화려하게 복귀한다.

〈샤넬 초상화〉 속 샤넬의 꿈꾸는 듯한 까만 눈동자, 아름다운 자태가 눈에 확 들어온다. 100년 전에 그려진 인물의 옷과 머리 모양이 상당히 세련되어 시대적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로랑생이 그린 인물들은 대부분 비슷한 얼굴에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끌로드 드뷔시 〈꿈〉, 1890

: 서른 살을 앞둔 청년 드뷔시는 이제 막 결혼한 가난한 음악가이다.

가장이 된 그는 돈이 절실했으므로, 살롱에서 인기를 끌기 위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에 맞춰서 피아노 연주곡 <꿈>을 작곡한다.

곡 전반에 깔린 왼손의 8분 음표는 그냥 흐르지 않고, 2박자마다 잠깐씩 멈추며 흘러간다.

중독성 있는 왼손의 텍스처는 마치 '공기 반 소리 반'으로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단순한 선율이지만 점차 색다른 E장조의 노래를 들려준다.

우리의 꿈도 <꿈>처럼 다양하고 풍성하게 흐른다.

선율 선과 화성, 조성마저 안개처럼 모호하게 만든 드뷔시는 평론가들의 혹평을 감내하면서도,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데 집중한다. 결국 그의 음악은 1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들어도 여전히 아름답다.


https://www.youtube.com/watch?v=5SHMPq3Mjzs



최선을 다하는 인생의 의미 - 92쪽


구스타프 클림트 〈피아노를 치는 슈베르트〉, 1898

: 슈베르트의 친근한 옆얼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수줍음이 많았던 슈베르트가 여성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은 다소 낯설다.

그는 첫사랑에게 차이고, 이십 대에 짝사랑한 백작의 딸 카롤리네에게는 아예 고백도 하지 못한 채 주변만 맴돌다 말았다.

31년의 짧은 생을 살면서 그야말로 모태 솔로였던 그다.


프란츠 슈베르트 〈세레나데〉, 1828

: 슈베르트의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일컫는 <<백조의 노래>>는 그의 불운한 삶과 어우러져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곡이다.

특히 4번째 곡인 <세레나데>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명곡이기도 하다.


밤을 가르 질러 날아가는 나의 노래여

나직하게 간청해요.

조용한 수풀 아래로, 귀여운 그대여, 내게로 와요.


저 새들은 가슴속 갈망을 알고 있죠.

사랑의 괴로움도 알죠,


그리움에 사무쳐 그대를 기다려요.

어서 와, 날 기쁘게 해 주세요! - 루드비히 렐슈타프의 시 <세레나데> 중에서 - 96쪽


기타 스트로크를 연상하는 "람 밤밤 밤밤~'과 함께 그리움이 밀려온다.

밤꾀꼬리 같은 선율이 울리고 피아노는 그 선율을 받아 메아리처럼 되뇐다.

단조의 선율은 장조로 이동해 행복했던 순간을 들려주기도 하지만, 잠시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슬픈 단조로 흐른다.


"뜨거운 여름날,

슈베르트가 노래한 <세레나데>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십니다." - 99쪽


https://www.youtube.com/watch?v=LFHHc2Wlpug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며 내 삶이 바뀌길 바라나요? - 100쪽


프리다 칼로 〈짧은 머리의 자화상〉, 1940

: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는 소아마비와 대형 교통사고, 33차례 수술과 3번의 유산,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외도와 이혼, 다리 절단 그리고 자살을 의심케 하는 죽음 등 한 인간이 겪은 불행과 고통으로는 너무 가혹했다.

그녀는 머리를 짧게 자른 자신을 그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긴 머리카락, 짧은 머리의 그녀는 헐렁한 잿빛 슈트를 입고 의기양양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손에 쥔 가위는 다시는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는 확고한 자세로 느껴진다. 허공에는 멕시코 민요의 악보와 가사가 행사장의 플래카드처럼 걸려있다. 이 노래 가사는 칼로 스스로 머리를 자르며 거울 속의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


'내가 널 사랑한 건 네 머리카락 때문이었더.

이제 넌 머리카락이 없으니, 난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 102쪽


쇼팽의 〈연습 곡 12번〉 ‘혁명’

: 저자는 삶의 혁명을 일으킨 칼로에게 쇼팽의 <연습 곡 12번>을 선물한다.

쇼팽은 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남달랐다.

그는 평생 폴란드의 춤곡인 폴로네즈와 마주르카를 만들어냈다.

'혁명'이라는 제목은 쇼팽이 직접 붙인 건 아니지만, 그가 *'11월 혁명'으로부터 받은 영감과 정서를 그대로 담았기에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11월 혁명: 1830년 러시아 제국의 압제에 대항하여 폴란드인들이 일으킨 봉기


https://www.youtube.com/watch?v=qhYn9sirsJs



까만 밤, 다친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 106쪽


페테르 일스테드 〈촛불에 책 읽는 여인〉, 약 1908

: 덴마크 화가 일스테드의 〈촛불에 책 읽는 여인〉은 독특하게 앉아있다. 벽에 붙은 테이블과 마주 앉은 것도 아니고, 벽에 기댄 의자와도 어긋난 방향이다. 책을 읽기 위해 초에서 나오는 불빛을 좀 더 잘 받기 위해서였는지...

그림에서 느껴지는 고요는 적막이 아니라 평온이다.

혼자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자유롭고 편안한 시간이 느껴진다. 이런 밤엔 쇼팽의 <녹턴>을 들고 싶어지지 않을까?


프레데리크 쇼팽 〈녹턴 2번〉, 1831

: 어둠과 고요 속에서 밤의 소리, <녹턴>은 밤의 감성을 담은 음악이다.

<녹턴>은 마치 일기를 써 내려간 듯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혼잣말로 되뇌던 쇼팽과 만나게 되는 곡이다.

이 곡은 마치 3박자의 왈츠처럼 들리지만 12/8박자이다. 왼손이 람밤밤의 3개 음표를 한 마디에 4번씩 연주한다.

여러 번 반복되는 왼손을 기다리다 보면,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안단테로 느려진다.

조심스레 말문을 열 듯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하다.


"까만 밤,

다친 마음을 보듬는 이 시간이

우리에겐 꼭 필요합니다." - 111쪽


https://www.youtube.com/watch?v=L3jXOtwWQvQ



진짜 나를 찾는 나는 진짜일까? - 112쪽


제임스 엔소르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 1899

: 웃고 울고, 무표정하거나 우울하거나 일그러진 가면들, 그 사이로 홀로 맨 얼굴을 드러낸 남자가 있다.

그는 가면에 집착한 벨기에 화가 엔소르이다.

엔소르는 어머니가 기념품 파는 가게의 다락방에서 종이 그림을 그렸다.

가게에서 팔던 각양각색의 가면을 보며, 그는 가면의 역할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가면만 쓰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의 본성과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하는 가면의 역할에 주목한 것이다.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에서 엔소르는 옆으로 선채 정면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은 당당하고 의연해 보이지만, 군중에 둘러싸인 외로움도 느껴진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솔직하지 못하다.

가면을 건네면 진실을 말할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 - 115쪽


로베르트 슈만 〈꾸밈없이 진심으로〉, 1849

: 슈만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 유전적으로 우울 성향이 있었던 그는 오이제비우스(Eusebius 명상적, 이성적 자아)와 플로레스탄(Florestan 열정적, 본능적 자아)이 서로 부딪치고 대립한다.

독일 소설가 장 파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 두 캐릭터는 슈만의 내면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슈만은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슈만은 피아노 작품을 자신의 두 자아인 E와 F로 구분해서 악보에 명시하기도 했다.

피아노 곡인 <카니발>에도 이 두 가지의 자아 성향이 등장하고, 다양한 캐릭터들의 성격과 성향을 풍자하고 유희로 표현했다.


"가면을 쓴 내 모습까지도

사랑하고 응원해 줘요.

그도 '나'랍니다." - 119쪽


https://www.youtube.com/watch?v=ENp3-sH8f8w



모든 고통엔 이겨낼 힘이 숨어있어요 - 120쪽


리오낼로 발레스트리에리 〈화가와 피아니스트〉, 1810

: 발레스트리에리의 〈화가와 피아니스트〉 그림을 감상하면, 소리 내는 작업을 하는 음악가와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화가의 모습이 생생하게 대비된다. 공존이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그림은 화가 자신의 경험을 캔버스에 옮긴 작품이다.

발레스트리에리는 집세를 아끼기 위해 바이올리니스트 바니 콜라의 룸메이트가 된다. 화가와 음악가의 동거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화가는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베토벤 소나타를 들으며 그 느낌을 캔버스에 옮기는 등 영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부족하고 모자란 환경에서 예술가는 오히려 특별한 영감을 떠올리기도 한다.

결핍은 창작의 큰 원동력이 될 수도 있으나, 화가는 창작의 고통과 공존의 고통의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다.


루트비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1798

: 청력을 상실한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이 있다.

그는 작곡가로서의 인생 대부분에서 소리를 듣지 못했다.

청력을 잃고도 악성(음악의 성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과정에는 무수한 시도와 굴복하지 않는 그만의 정신력과 의지가 있었다.

베토벤은 평생 동안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

20대부터 세상을 떠나기 5년 전까지 약 30년에 걸쳐 <피아노 소나타>를 떠나지 않았다.

전에 없던 '형식적 새로움'을 계속 만들기 위한,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이 대단했을 것이다.

베토벤의 도전과 혁신, 그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피아노의 신약성서'로 불린다.


"나의 상실과 결핍은

결실을 맺기 위해 필요한

필수품이에요." - 127쪽


https://www.youtube.com/watch?v=fK77H5bziFo



가슴 뛰는 일이라면 놓치지 말아요 - 128쪽


장오귀스탱 프랑클랭 〈답장〉, 19세기 초반

: 그녀가 들고 있는 편지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분의 편지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편지 봉투의 상태를 보아, 그녀는 하녀의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듯 받아 봉투를 뜯자마자 책상에 걸터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쓰기 시작한 답장에는 숨 가쁜 속내를 숨긴 채, 의연한 아가씨 말투로 써 내려가고 있다.

사랑이라는 설레는 감정을 일상생활의 한 장면으로 표현한 프랑스 화가 프랑클랭은 아가씨와 하녀 두 여성의 표정과 동작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안토닌 드보르자크 〈낭만적 소품 1번〉, 1887

: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곡명에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그는 체코의 민족주의를 전하는 음아뿐 아니라, 아름답고 서정적인 음악을 작곡했다.

인종주의와 우생학이 심했던 당시, 드보르자크는 드물게 깨어있던 교양인이었다.

그는 유색인종의 문화적 잠재력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하고, 흑인 영가나 아메리카 원주민 민요야말로 진정한 미국의 음악이라 극찬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N67TQjcKeI



기록은 기억을 지배해요 - 134쪽


디에고 벨라스케스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 1654

: 그림 속 귀여운 아이는 3살이 된 스페인 왕녀(공주)이다. 아이는 커서 신성로마제국의 황후가 된다.

혼인이 성사되기 전까지 시댁이 될 오스트리아 왕궁에 보내기 위해, 왕녀의 초상화가 여러 점 그려진다.

왕녀의 초상화는 황후가 될 약혼녀의 성장 과정을 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리포트이자 기록이었다. 그러니 건강하고 총명한 모습으로 그려내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17세기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 벨라스케스는 당시 궁정화가로서 왕실 가족을 독점적으로 화폭에 담고 있었다.

24살에 스페인 국왕 펠리페 45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궁정화가가 되어, 죽을 때까지 국왕의 유일한 전속 화가로 일하며 총애를 받았다.


모리스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1899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유명한 작곡가의 반열에 오른 라벨은 10년 후에 이곡을 포레의 <파반느>가 그랬던 것처럼 관현악 곡으로 편곡한다. 라벨은 학창 시절부터 낙제와 퇴학, 수상 실패, 병약한 신체와 자동차 사고 등으로 안타깝고 비참한 생을 살았다.

이 곡은 라벨 자신을 위한 기록이 되어, 라벨을 떠올리게 하고 추억하게 한다.

그림과 음악으로 예술은 기억되고 기록된다.

우리는 라벨의 선율에서 마르가리타 왕녀의 기품을 느낄 수 있다.


"불멸이 되는 예술과 그 영감의 사이에는

기억이 있고,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기록되었을 때

사적인 기억을 넘어선 작품이 될 수 있어요." - 141쪽


https://www.youtube.com/watch?v=Td6HiI5wL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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