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영화 속에 녹아있는 친환경적인 삶이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한다.
개요 드라마 일본 111분 2015. 02 개봉
감독 모리 준이치
출연 하시모토 아이(이치코), 마츠오카 마유(키코), 미우라 타카히로(유우타), 키리시마 카렌(후쿠코)
개요 드라마 일본 121분 2015. 05 개봉
감독 모리 준이치
출연 하시모토 아이(이치코), 마츠오카 마유(키코), 미우라 타카히로(유우타)
[리틀 포레스트]는 스스로 뿌리고 일궈내고, 수확한 농작물로 직접 만들어 먹는 일상이 그려진 친환경 만화책이다. 미세먼지, GMO 농작물, 인스턴트식품이 넘쳐나는 현실의 삶이 고달플 때, 아들 책장에서 발견한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 1, 2권에 관심이 갔다.
원작과 영화가 그 흐름이 다르지 않다. 주인공 이치코는 계절 따라 농작물을 키우고, 직접 만들어 먹으며 살아간다. 대도시에서 삶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의 자급자족하는 삶이 낯설지 만도 않다.
어린 시절 쑥이랑 냉이를 캐던 아련한 봄 들판. 황금빛 논을 헤집고 다니며 메뚜기를 잡아, 친구들과 볶아 먹던 기억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시냇물에서 손빨래하던 엄마를 따라가 멱을 감기도 했다. 별안간 소나기라도 내리면, 아이들은 더 좋아했지만, 수풀 위 한편서 빨래를 펼쳐 말리고 있던 어른들은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셨다. 시냇가에 커다란 드럼통 솥을 걸어두고 종일 장작불을 지펴가며 누런 광목천(이불속)을 하얗게 삶아주던 노부부 모습은 현실인지, 상상인지조차 구별할 수없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50여 년 전엔 그런 일을 하는 직업도 있었다.
[리틀 포레스트]는 만화책인 데다, 그 속에 녹아있는 친환경적인 삶이 독자를 편하게 한다. 그러나 젊은 날, 나는 일본 영화, 책, 음악조차 의식적으로 멀리하곤 했다. 일본이란 나라가 무의식 속에서 항상 불편했다. 아들이 한국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로 입학하면서 적어도 만화, 영화와 음악에 한해서는 관대해졌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음악을 들어보면, 우리 감성과도 크게 다르지 않고, 반전과 환경을 중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먹는 것이야말로 인생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대도시 삶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이치코의 자급자족하는 삶이 수채화처럼 그려진다. 이치코는 스스로 씨를 뿌리고 키워서 수확한 농작물로 직접 만들어 먹는 일상을 담담하게 살아간다.
토호쿠 산간 지방 작은 마을 코모리로 돌아온 이치코는 매일 정성이 가득 담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식사를 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말대로 '먹는 것이야말로 인생이다!' 이치코의 흙냄새 물씬 풍기는 자급자족 생활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리틀 포레스트의 여름 음식이 펼쳐진다. 첫 번째 여름 요리는 스토브에 빵 굽기, 두 번째는 이스트를 넣어 만든 식혜, 수유 열매 잼, 우스터소스, 명울 풀 요리, 곤들 매기 구이, 된장국, 토마토 병조림 등이다. 이치코는 요리를 하면서 엄마 모습을 종종 떠올린다.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 집중해!’라던 엄마 목소리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치코 2년 후배인 유우타 말도 의미심장하다.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내 몸이 느끼는 건 믿는다.’ - 유우타의 이 말을 음미하며, 혼잣말로 되뇌어 보기도 한다. 이치코는 생각한다. ‘유우다는 자기 인생과 마주하려고 돌아온 것 같다. 나는 도망쳐왔는데.’라고.
이치코의 가을 음식들이다. 으름으로 만든 인도 풍 요리, 호두 밥, 곤들 매기 튀김, 밤 조림, 고구마와 토란 이용 요리, 집 청둥오리 요리, 표고버섯과 당근 등을 활용한 음식을 만든다. 어릴 때 체험은 중요하다. 이치코는 엄마의 정성이 담겼던 음식 체험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엄마가 훌쩍 고향 집을 떠난 지도 5년째다. 영화 1부 마지막 장면, 우편배달부는 편지 한 통을 전해준다. 그리운 엄마로부터 온 편지가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가을도 저물어 간다.
영화 2부 시작은 가을이 끝나갈 무렵, 엄마의 편지를 받았던 이치코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치코가 고등학생이던 어느 가을날, 갑자기 집을 떠난 엄마가 보낸 편지다.
낯익은 엄마의 필체지만, 이치코는 몇 번을 읽어봐도 엄마가 왜 떠났는지 그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이후, 이치코는 한동안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온 것인지도 모른 척하며 살아간다.
이치코는 코모리 생활을 통해, 엄마가 왜 떠났는지 그리고 자신은 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벼는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자라고, 코모리를 떠나고자 했던 이치코는 어느새 코모리 생활 속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이치코는 엄마와 함께 했던 시절, 소중한 레시피를 떠올리면서 혼자 그 해 겨울을 보낸다.
겨울 레시피로 만든 요리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낫토 떡, 얼린 무 조림, 밀기울 요리, 염장 고사리, 염장 채소 활용 등이다. 모든 레시피는 영화보다 만화책 속에서 더 자세하게 소개된다.
후배인 유우타는 '혼자 열심히 살아가는 거 대단하지만, 제일 중요한 뭔가를 회피하고 그 사실을 스스로 외면하며 그냥 ‘열심히’ 살고 있다고 넘기는 건 아닌가? 그냥 도망치는 거 아냐?'라고 묻는다. 이치코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침묵한 채 깊은 생각에 잠긴다. 긴 겨울도 서서히 끝나간다.
코모리에도 봄볕이 깃든다. 엄마를 떠오르게 하는 봄 레시피로 모둠 봄나물 튀김, 쇠뜨기 조림, 산달래 요리, 양배추 튀김, 염장 고사리, 감자 빵, 양파요리 등이 소개된다.
이치코는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한다.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면서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옆으로도 커져 내가 그리는 원도 점차 크게 부풀어 나선도 조금씩은 커지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힘이 나더구나.'
이치코도 이젠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맞은편에서 보면 늘 같은 곳을 도는 듯 보이겠지만 조금씩 올라가거나 내려가면서 조금씩 나아진다. 인간은 '나선' 그 자체 인지도 모른다.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때론 좌절하지만,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이치코는 드디어 깨닫는다. 실패든 성공이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니었다는 걸.
5년 후, 코모리에서는 '작은 숲 속의 커다란 수확제'가 열린다. 이치코는 수확제 공연에도 직접 참여한다. 그녀는 코모리 생활에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이치코 단짝 친구인 키코는 결혼을 했고, 벌써 엄마가 되었다.
코모리의 사계가 수채화처럼 곱다. 특별한 사건 사고 없는 일상이 잔잔하게 펼쳐지지만 딱히 지루하진 않다. 이치코가 직접 농사짓고 손수 수확한 재료들로 정성 들여 만들어 먹는 집 밥 묘미가 더해 지기 때문일 것이다. 계절식품을 활용하고, 염장으로 식품을 저장하는 식생활 지혜는 우리네 어머니들 모습도 함께 떠오르게 한다.
젊은 이치코가 코모리에서 그리는 나선도 조금씩 더 커질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경험은 나선처럼 돌면서도 소중하게 쌓여간다. 우리는 매번 다른 장소 여느 시간을 항상 품에 안고, 하루가 가고 새날이 다시 오듯 함께 돌며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