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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Feb 02. 2024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이기에 귀담아듣고 싶은,

"그래 맞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사물이 계속 훼손되고 , 마음이 계속 변하고 ,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계에서 , 그렇지만 나도 열다섯 살 때에는 그런 장소가 세계의 어딘가에 꼭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 그런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를.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
<해변의 카프카 , 무라카미 하루키 >

내 첫 지브리 작품은 <원령공주>였다. <이웃집 토토로>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천공의 섬 라퓨타>까지. 어렸을 때는 그저 하야오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만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서 지브리 애니를 돌려보고 또 돌려봤다. 성인이 되고 나서 , 그의 작품을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는 언제나 삶을 향해서 비슷한 메시지를 던져왔다. 그가 만들어낸 작품들에는 언제나 미숙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불완전한 세상이 존재했고. 그럼에도 삶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긍정의 메시지가 존재했다. 하야오는 이번에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더욱 직설적으로 동일한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는 전쟁 속에서 어머니를 잃는 마히토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마히토의 아버지는 일본 전통에 따라 어머니의 동생인 나츠코와 결혼한다. 마히토는 소년의 나이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한다. 받아들일 수 없는 어머니의 죽음과 새로운 가족의 형성. 그리고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한 곳에서 시작된 적응할 수 없는 학교생활. 소년은 부조리한 세계를 마주했고, 자연스럽게 내면 속에는 삶을 향한 '악의'가 깃든다. 마히토는 악의를 참지 못하고 하굣길에 길가에 돌을 들어서 자신의 머리를 내려찍는다. 그 일을 통해서 새어머니인 나츠코를 상처 입힌다.


그러던 어느 날, 마히토의 새어머니인 나츠코가 실종된다. 그리고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신기한 왜가리가 마히토를 찾아온다. 새어머니의 실종이 왜가리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 마히토는 왜가리를 따라서 탑의 세계로 들어간다. 탑 안의 세계는 큰할아버지라는 존재에 의해서 세워졌다. 그는 악의가 깃들어 있지 않은 순수한 낙원을 꿈꾼다. 와리와리는 그러한 낙원을 대표한다. 순수하기에 세상에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는 생명체들. 이와 반대되는 생명체가 펠리컨들이다. 펠리컨은 그런 순수한 와리와리들을 먹이로 삼으며 살아간다. 그러기에 펠리컨은 이 세계에서 적대시되는 존재들이다.


 다음으로 이 탑의 세계에서 보이는 생명체는 앵무새들이다. 펠리컨의 존재가 자연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악의'를 보여준다면, 앵무새들은 불완전한 인간세계의 악의를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사회처럼 지도자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를 형성하여 자신의 탐욕을 사회적 제도를 통해서 풀어내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계를 낙원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큰할아버지와 일종의 협상을 한 듯 보인다.


"소년이여 , 우리는 이 세계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끌려왔다, 저 세계와 달리 먹을 것이 없는 이 세계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와리와리를 먹이로 삼았을 뿐이다.


하지만 죽어가는 펠리컨의 답 할 수 없는 절규에서 나타나듯  이 세계 역시 부조리하며 , 부조리하기에 악의에 물들어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세계임이 드러난다. 큰할아버지는 이러한 현실에 타협하면서도, 낙원에 대한 이상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세계가 펠리컨의 '악의'에 물들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앵무새와 협상을 통해서만 자신의 세계가 유지될 것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기다리며. 탑의 세계가 낙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을 품고 있다.  그는 마히토에게 자신의 이상을 물려 줄려 한다.


" 나를 이어서 이 세계를 아름다운 세계로 만들어가거라.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단다. "

그런 큰할아버지의 질문에 , 마히토는 자신이 '악의'를 품고 있기에 이 낙원을 꾸려나갈 수 없다고 대답한다. 큰 할아버지는 마히토가 자신의 내면 속에 품은 '악의'를 이해하고 인정하기에 자신의 세계를 이어나갈 적임자라 대답한다. 큰할아버지는 일견 마히토와 닮아 있는 존재이다. 그 역시 삶의 부조리 속에서 상처받았기에. 낙원을 꿈꾼다. 그리고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낙원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외계에서 날아온 듯 보이는 큰 운석을 통해서 발견한다. 아마 그는 마히토와 같은 소년의 나이에 이 운석을 통해서 탑에 들어왔을 것이다.  


마히토는 끝내. 그의 권유를 거절한다. 그리고 그 대답의 근거는 "(불완전한 현실이라도) 왜가리와 같은 친구(마히토를 탑에 세계로 이끌어준)를 만들어갈 거예요. 그리고 새어머니인 나츠코와 함께 살아갈 거예요."라는 대답이다. 마히토의 대답에 따라서 , 탑의 세계는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린다. 그는 탑에 갇혀 있던 새어머니인 나츠코를 구해내고, 지금까지 자신을 이끌어줬던 소녀이자. 미래에 자신의 어머니가 될 히미와 탑의 세계를 탈출하려 한다. 마히토와 히미는 소년과 소녀이지만,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기에 각자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히미의 죽음(어머니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마히토는 히미를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히미역시 마히토와 같은 대답을 한다.



(내가 설령 죽더라도) 미래에 너를 낳는 일은 굉장히 멋진 일이야.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서, 삶을 향한 긍정의 태도를 여실 없이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그는 겸허히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큰할아버지가 낙원을 꿈꾸며 만들어낸 세계가 결국 무의미한 허상으로 귀결되듯. 자신이 만들어왔던 작품들의 세계 역시 결국은 언제든 무의미해질 수 있는 것들이라고. 삶은 무의미하고 부조리하다고.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마히토히미의 선택처럼 (불완전하고 무의미한) 현실 속이라도 서로의 존재를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는 일이 유일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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