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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Mar 16. 2024

글에 많은 삶들이 담기기를

서툴러도 살아가고 싶습니다. 서툴러도 써나가고 싶습니다.  

 

삶이 힘든 것에 비하면 글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너무나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십 대 무렵이었을까 , 나는 그런 사실을 깨닫고 일주일쯤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란 적이 있다. 조금만 약삭빠르게 굴면 세상은 내 뜻대로 되고, 모든 가치는 전환되고, 시간은 흐름을 바꾼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함정이었음을 깨달은 건, 불행하게도 훨씬 나중의 일이다. 나는 노트 한  가운데에 줄을 하나 긋고 왼쪽에는 그동안에 얻은 것들을 , 오른쪽에는 잃은 것을 썼다. 잃은 것, 짓밟아버린 것, 벌써 오래전에 버린 것, 희생시킨 것, 배반한 것, 나는 그것들을 끝까지 다 쓸 수 없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 >


삶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문장의 이음으로만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언제였을까. 내가 책 속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내가 빈 껍데기와 같은 문장으로만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말이다. 그 순간은 그다지 유쾌한 시간이 아니었다. 내가 애써 문장으로 도망가서 쉽게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들을 직면해야만 하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나의 글에 더 많은 삶들이 담기기를. 나의 글이 내 삶보다 앞서 나가지 않기를. 내가 빈 껍데기 같은 문장들을 써 내려가지 않기를. 나의 언어로, 나의 삶을 노래하기를. 그것이 설령 남들이 바라봐 주지 않는 서툰 삶이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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