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양주 댁이다.
첫째가 6살, 둘째가 3살이 되었을 때 이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살고 있던 곳은 친정 집과 10분 거리, 나고 자라 온 동네라 익숙하고 편했지만 애들 공부시키기에는 조금 열악한 환경이었다. 같은 구에 위치하면서 깔끔한 아파트 촌에다 보내고 싶은 초 중 고가 밀집되어 있는 아파트로 결정했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남동생 네가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학교에 다니며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됐다.
이사 직 후부터 층간 소음 민원에 시달렸다. 예전 아파트에선 아래층 아주머니를 뵐 때마다 아이들이 뛰어서 죄송하다 인사드리면 애들이 그 정도도 안 하냐고 혼내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 게 너무 감사해서 더 주의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 아파트 엄마는 아이가 중3이라 공부해야 한다고 의자만 끌어도 숟가락만 떨어뜨려도 인터폰을 했다. 층간 매트를 깔았음에도 퇴근하고 아이들과 집에 들어가면 현관에서 거실로 쪼르륵 걸어가는 발소리에도 인터폰을 했고 욕실에서 내는 웃음소리, 목욕하면서 장난치는 아이들 물장구 소리가 거슬린다고 인터폰을 해댔다.
나는 소음 강박, 인터폰 노이로제 걸려 한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고 애꿎은 애들만 잡게 됐다. 학군은 고사하고 동네 자체에 정이 떨어졌다. 큰 애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다시 이사하기로 했다. 좋은 환경을 위해 이사했던 우리는 아이가 초등 입학을 앞둔 7살 여름, 급하게 서울 집을 세주고 남양주 1층 아파트로 이사 왔다.
서울을 한 번도 떠나 본 적 없던 내가 아무 연고지도,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불안했다. 그런데 처음 와 본 이 도시의 이끌림이 너무 좋아 결정하고 말았다.
실개천이 흐르고 산이 보인다. 집 앞을 나서는 순간 곳곳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간식을 들고 대충 아무 곳에나 돗자리를 펴면 소풍이 된다. 들판에 핀 봄꽃의 이름을 찾아보고 여름 물놀이터는 마실이 되고 밤과 도토리를 줍는 가을과 얼음 썰매를 탈 수 있는 겨울이 있는 곳. 왕숙천과 국립 수목원을 산책길로 걸을 수 있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사시사철 질리지 않는 자연을 보고 만지고 밟으며 뛰어논다. 자연을 누리는 삶의 여유와 행복을 서울을 떠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곳에 온 지 5년이 되었다. 이제는 친정집에 가거나 서울에 일이 있어 나갈 생각만 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사람과 건물들이 가득 찬 서울에서 어떻게 견뎠나 신기하다. 서울 일을 마치고 서둘러 집에 오면 “여기가 최고다. 우리 집이 젤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들이 뛸 나이가 지나도 엄마 아빠가 푹 빠져 이 동네를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예 눌러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