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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유 Apr 28. 2023

어딘가에서 멋지게 살고 있을 내 애인(愛人)에게. 1

1986 연희.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기억의 주인공들참으로 곱고 애틋해서,  안에 있는 여러 개의 방에 담아두고 언젠가 한 번 만나고 싶다.





연희.

여중 1학년. 우리 반 반장.

커트 머리에 마른 체형. 귀티 나는 하얀 얼굴.

FM 모범생. 말이 없음. 반장 일을 묵묵히 잘 해냄.  카리스마 있음. 그런 연희를 아이들도 선생님 좋아함. 하지만 내 눈에는 많이 외로워 보였음.

참! 연희학교 근처,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신축 대단지 아파트에 살며, 조금은 범접할 수 없고, 나와 여러 가지로 거리가  아이였다.


나, 이자유

오락부장 게임 끝. ㅎㅎ

둥근 단발에 둥근 몸매. 서민적인 누런 얼굴.

놀기 좋아함. 장난 잘 침. 말 많음. 잘 웃음. 카리스마 1도 없음. 다행히 친구들은 많음. 선생님들께 많은 웃음을 드리고 혼도 많이 났음.

참! 나는 매일 500번 만원 버스에 낑겨,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학교와 시장통 근처 2층짜리 빌라 사이 오고 가는 아이였다.


당연히 시작은 나였을 거다.

연희 성격에 먼저 다가오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세상에 사는 연희에게 언젠가부터 관심이 갔다. 힘들어 보일 때나 외로워 보일 때면 툭툭 말을 붙이고 친한 친구들에게 했던 것처럼 재밌는 말로 웃음을 줬다. 연희가 웃었다. 나처럼 깔깔 소리 내 웃지는 않았지만 환한 반달 눈웃음이 참 싱그러운 아이였다.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서로의 마음도  몰랐던 날, 음악 시간, 음악실에서였다.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노래 부르고 있었나. 낙서하고 있었나. '똑똑' 어느 방향에서 온 지 모를 한 통의 편지를 건네받았다. 

흰 연습장을 딱지 모양으로 접어 내게 전해진 편지는 '절대 비밀로 하시오'라고 쓰여 있는 문구 때문에 읽기도 전에 심장이 쿵쾅댔다.

누구지? 무슨 일이지? 몸을 최대한 숙이고 아무도 못 보게 읽어 내려갔다.


연희였다. 진심이 담겨 있는 용기 있는 고백. 

'널 좋아해.'


연희의 바람처럼 나는 비밀로 했고 교실에서도 절대 티 내지 않았다. 가끔 기다렸다가 우연히 하교하는 친구처럼 연희네 아파트까지 함께 걸어갔다. 연희는 놀 시간도 없이 집에 들어가 바로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십 분만 틈이 생겨도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연희는 부모님이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 집에 전화했다. 수화기가 뜨거워질 때까지 많은 얘기를 나눴고 연희는 힘들고 벅찬 속마음을 조금씩 꺼내 놓았다.


편지와 전화로 연희의 힘든 부분을 위로했지만 반장일, 학교일, 학원과 공부로 너무 지쳐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학교에서 말도 못 하고 지내는 시간이, 점점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됐다. 왜 그래야 하지? 나랑 친한 게 창피한가? 그런 마음이 들 때면 화가 났다.

보란 듯이 일부러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며 즐겁게 떠들었다. 그런 날이 반복됐고 연희는 말이 없어졌다.

학년이 끝날 무렵, 연희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동안 서운했던 이야기를 했다. 비밀로 했던 이유는 그래서 친한 티를 내지 못하던 이유는. 연희 옆 동에 사는 우리 반 부반장 엄마랑 연희 엄마가 아주 친한데 말이 없는 연희를 대신해 부반장에게 학교생활 사소한 것까지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그런 엄마가 너무 싫은데 나와 친한 걸 알면 공부 방해된다고 분명 만나지 말라고 들들 볶고 감시할 게 뻔해서 그랬다고 했다. 고작 열네 살 연희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알 것 같아 마음아팠다. 

2학년에 가서도 자주 편지하고 연락하자고 했지만 또 반장이 된 연희는 더 바빠진 것 같았고 새로운 반에 적응하느라 나도 지키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 배정을 받았다. 당시는 거주지 뺑뺑이었는데 80 프로는 중학교 근처 여고로, 19 프로는 조금 떨어진 서너 군데 고등학교로 나눠서 배정됐다. 그리고 1프로, 졸업생 7명만이 그해 처음으로 학군도 다른, 강 건너 학교로 배정됐다. 거기엔 나도 포함됐다.

그리고 특이 케이스, 희는 유일하게 가장 먼, 버스 타고 나보다 두 배는 더 가야 하는 명문고로 배정됐다. 나중에 소문으로 들었지 거주이전으로 학군 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각각 다른 학교 고등학생이 되었다.




복도 없지. 사람이 제일 많기로 지독한 그 악명 높은 500번 버스를  타고 중학교 반대 방향으로 달려야 고등학교가 나왔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학교가 끝나고 같은 방향 친한 친구 두 명과 500번 버스에 올라탔다. 회수권을 들어 가는데 뒷 문 언저리에 서서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낯익은 아이, 연희였다.

"어머, 연희야!"

", 자유구나."

"잘 지냈어? 학교 갔다 오는 야?"

"맞다. 여기가 너희 학교지."

" 응, 너도 이 버스 타는구나."

쉴 새 없이 타는 사람들에 떠밀려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버스 뒤쪽에서 일부러 연희도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재미난 얘기를 해주며 깔깔깔 웃었다. '나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 너도 잘 지내 연희야.'라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서도 연희 생각이 났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가서라도 연희와 있어줄걸.

학교 생활은 어떠냐고. 멀리 다니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볼걸.  아쉬운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연희 집으로 전화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고 연희에게도 끝내 연락 오지 않았다.

문득 또 마주칠까 싶어 항상 버스 안을 두리번거렸지만 그런 운은 다시 오지 않았다.




연희야. 어떻게 지내니?

만일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보고 싶다 연희야.


*우연히라도 이 글을 보게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인공 연희는 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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