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의 시작 - 지식네트워크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Self Facilitation을 구성하는 요소는 할 일 관리, 지식 관리, 결과물 만들기입니다. 이 중에서 핵심은 지식관리입니다. 할 일 관리와 결과물 만들기 과정은 의지가 없어도 시간이나 환경이 어느 정도 해결해 주기 때문이죠. 반면, 지식 관리는 별도의 장치나 작업 방식을 마련하지 않으면 소중한 통찰과 깨달음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지식을 축적하지 않으면 매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과거에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거나 더 나은 출발점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알게 된 것을 잊지 않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형태로 관리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관리는 PKM(Personal Knowledge Management), 즉 개인 지식 관리를 말합니다. 개인이 일상에서 지식을 수집, 분류, 저장, 검색, 공유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합니다.[1] 최근 PKM의 대표적인 방법론으로는 티아고 포르테의 세컨드 브레인과 숀 케아렌스가 설명하는 제텔카스텐이 있습니다.
티아고 포르테는 세컨드 브레인을 구성하는 4단계로 'CODE'라는 방법을 제안합니다.[2] 공명하는 내용을 수집(Capture)하고, 정리(Organize)한 후, 핵심을 추출(Distill)해서 작업한 결과물을 표현(Express)하는 절차입니다. 숀 케아렌스는 카드 기반의 아이디어 정리 및 연결 시스템인 제텔카스텐[3]을 글쓰기를 위한 작업 구조로 소개합니다.
대부분의 지식관리 방법론은 지식 수집부터 결과물 생성까지 전 과정을 포괄합니다. 그러나 저는 나만의 지식을 만드는 과정과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식체계를 구성하는 프로세스와 특정 목적의 글쓰기 과정은 산출물과 작동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는 지식관리와 결과물 만들기 단계를 나누었습니다.
셀프 퍼실리테이션에서 지식관리는 외부의 지식이나 자신의 생각을 기존의 지식체계에 연결하고 통합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이 단계를 PARTS로 명명했는데, 지식관리의 결과물이 재사용 가능한 부품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모양의 레고 블록을 만드는 것과 같죠.
결과물 만들기는 특정한 목표나 필요에 따라 글, 콘텐츠, 발표자료, 상품, 서비스, 프로그램 등을 제작하는 작업입니다. 이 단계의 이름은 DRAW로 정했습니다. 미리 준비해둔 부품을 활용해 빠르게 시도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식 구조는 크게 네트워크 구조 또는 계층적 구조가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자료는 우측 그림과 같이 일정한 위계를 가진 계층형 구조로 되어 있어요. 기사, 논문, 책 등은 대개 하나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논리나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이죠. 음식 레시피도 단계나 시간에 따라 선형적인 구조로 만들어져있죠. 이런 구조화된 지식은 수많은 실패와 경험, 노하우를 통해 도달한 결과입니다.
박문호 박사가 말하는 하지 말아야 할 공부법은 남이 작성한 노트를 기반으로 공부하기 입니다.[4] 그 이유는 자기주도적 학습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죠. 자기주도적 학습이란 무엇일까요? 자신의 배경지식을 토대로 나만의 해석 체계를 구축하고, 자신의 문제의식이나 관점에서 주제를 풀어내는 과정을 말해요. 즉, 저자의 맥락에서 벗어나 나의 맥락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하지만 이 재구성 과정은 단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자료가 아무리 많아도 꼼꼼히 따져보고, 비교 및 대조하며, 논리적 타당성을 면밀히 점검해야 하죠.
재구성 작업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시간은 한정되어있죠. 검토한 내용을 모두 재구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어요. 미래 필요가 생겼을 때 즉시 사용가능한 형태로 정리할지, 참고 문헌의 논리대로 요약하고 끝낼 것인지 말이에요. 저는 전자를 선택했습니다. 출발 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물론 필요에 따라 후자의 방식을 택하기도 해요.
육상 선수나 격투기 선수들은 폭발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 역도의 파워클린 동작을 연습합니다. 자신의 목적에 맞게 다른 종목 훈련법을 차용하거나 변형해서 사용합니다. 역도 훈련 프로그램 전체를 요약해서 학습하진 않죠. 반면 독서나 공부는 대부분 요약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의 배경, 문제의식, 관점, 목표는 저자와 다릅니다. 다른 이의 해결책이나 과정이 나의 것이 될 순 없어요. 나에게 유용한 정보나 떠오르는 영감을 붙잡아두고 정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이나 공학 분야에는 보편적으로 합의된 체계가 존재하죠. 엄밀히 말해 이 합의된 구조가 비교적 오래 지속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역학이 진리처럼 자리잡은듯 보였으나 현대물리학이 등장했습니다. 그렇다고 고전역학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 체계를 적용할 수 있어요.
깊은 지식으로 들어갈수록 개인 수준에서 모든 것을 구조화하여 이해하기란 점점 어려워집니다.[5] 대학원생이나 연구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에요. 새로운 관심사에 입문하면 낯선 용어와 원리를 마주하게 되죠. 세상과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나의 위치와 역할도 계속해서 변하고요. 우리의 인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초보의 연속입니다. 죽음조차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니까요.
구조화되어있는 지식은 단 하나의 관점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관점 자체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죠. 또는 다른 관점으로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죠. 복잡한 구조일수록 변경하고 해체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지식관리의 결과물이 기본적으로 네트워크 형식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지식관리 1차 목표는 즉시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보존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정보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꿸 문제의식이나 관점이 필요합니다. 네트워크형 지식을 갖추면 하나의 내용을 여러가지 문제 의식으로 엮어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죠. 마치 소금처럼 말이에요. 소금은 음식에 간을 맞추는 데도 사용할 수 있고, 부패를 방지하는 데도 쓰입니다. 또한 재설 작업에도 활용되고, 등산할 때 염분 보충을 위한 비상식량으로 사용되기도 하죠. 이처럼 네트워크 지식은 마치 소금처럼 다양한 맥락에서 유연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재설, 부패 방지, 요리, 등산, 운동 등의 주제로 접근해도 관련 정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죠. 반면 구조화된 형태의 지식은 활용 목적에 따라 별도의 정리가 필요할 거예요.
(※ 물론, 필요에 따라 계층구조로 정리 할 수도 있습니다. 구조화된 지식을 만드는 작업흐름도 필요하구요. 이 내용은 다음에 따로 다루기로 하곘습니다.)
지난 글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Self Facilitation은 흥미, 생산성, 성장 동력을 넘어 생존과도 관련된다고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네트워크형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에요.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주죠. 인류 발전 과정에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등 크고 작은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한때 특별했던 이론이나 기술도 보편화되거나 유용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지나친 전문화는 종의 멸종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어떤 종이 특정한 생태계 내에서 지나치게 전문화되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즉, 전환에 대비할 수 있는 융통성과 다양성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는 지나치게 전문화되고 또 기존의 에너지 환경에 너무 익숙해져서 근본적으로 다른 에너지 환경으로 옮겨가는데 필요한 융통성을 대부분 잃었다."[6]
"아일랜드 감자 기근으로 100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아일랜드의 주 식량이 감자였어요. 감자가 단일 품종으로 전부 다 재배를 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역병 100만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다양한 목소리가 있어야만이 다른 환경이 도래했을 때 적응도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괴짜들이나 아주 특별한 소리를 하는 사람을 사회가 권장하고 허용을 해야 됩니다."[7]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에 비해 강하고 복잡한 네트워크를 지녔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닌 과학적 사실이에요.[8] 복잡한 네트워크는 다양한 연결이 가능하다는 의미죠. 무관해 보이는 것에서 공통점을, 유사해 보이는 것에서 차이점을 발견하는 능력[9]은 전혀 새로운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게 해줍니다. 빠른 변화 속에서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거예요.
알츠하이머병의 궁극적 원인은 시냅스 손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긴 교육을 받고, 풍부한 지식을 갖추며, 꾸준히 사회적 · 정신적 자극을 받는 사람들은 더 많은 신경 연결을 지닌다고 해요. 이들은 일부 시냅스가 손상되더라도 대안 경로가 충분하기에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10] 이는 복잡하고 다양한 신경 연결이 우리의 인지 기능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우리가 다양하고 복잡한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풍부한 지식 네트워크는 우리의 인지 기능을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체계적인 지식 관리를 통해 복잡하고 다양한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단순히 업무 성과를 높이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정신적 · 육체적 생존력을 높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표현하는 단어중에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는 용어가 있습니다.[11] 이는 창조 행위를 통해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통제하는 인간을 의미하죠. 복잡한 뇌를 가진 인간은 더욱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8-1]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낼수록 창의성은 높아집니다. 외부 도구를 활용해 만들어가는 정신모형도 복잡해질수록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행복과 창의성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합니다. 창의성이 높아지면 행복도도 상승하죠. 직원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고용주가 늘어나는 이유는 창의력을 통해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말합니다."많은 이에게 행복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발견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창의력을 높이면 웰빙도 향상될 수 있습니다"[12]라구요.
저는 이 네트워크 지식을 구축하는 과정 자체를 일로 여기지 않고 즐거움을 느끼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지식 체계를 만들어가는 일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 과정이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순 없지만, 지식을 연결하고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창의적 영감을 얻는 경험은 지식 네트워크 구축의 큰 매력이죠.
[1] 위키페디아 - Personal Knowledge Management
[2] 책, 세컨드 브레인 by 티아고 포르테
[4] 유튜브 - 박문호 TV, 공부하는 사람(기억의 궁전을 짓는 형상화 방법)
[5] 유튜브 - Elizabeth Filips, I Hate Memorising, so I Created a System to Remember Everything
[6] 책, 엔트로피 by 제레미 리프킨
[8] 책, 이토록 뜻밖의 뇌 과학 by 리사 펠드먼 배럿
[9] 유튜브 - 북툭, 15분 만에 정리하는 뇌과학 입문
[10] 책, 기억의 뇌과학 by 리사 제노바
[11] 위키페디아 - 호모파베르
[12] 책, 크리에이티브 프로그래머 by 바우테르 흐루네벨트
다음글에서는 이 글에서 설명한 '지식 네트워크'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실체를 파악하고 어떤 작업흐름이 좋을지 논의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