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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희 Aug 06. 2023

첫 번째 직업은 국회비서다.

내가 임산부테라피에 올인하는 이유 1

20년 전 첫 직장으로 면접을 본 곳은 국회의사당 국회의원의 9급 비서였다.
본래는 환경조경학과 출신이다. 너무 힘들게 일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난 저렇게 힘든 일은 못하겠다며 일찌감치 포기했다. 운이 좋게도 바로 합격해서 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출근을 하였다. 학교 동기들보다 1.5배 정도 높은 연봉을 받으며 나름 뉴스에서나 보았던 국회의사당 정문을 비서 모드로 차려입고 출퇴근하는 나는 어깨에 뽕이 조금 들어갔다. 부모님도 당연히 뿌듯해하셨다. 이미 내 인생은 탄탄대로같이 느껴졌다.


입사 후 처음으로 내가 모시는 의원님과 손님들이 오셨다. 쟁반에 차를 준비해 의원님 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 긴장했는지 내 발에 내가 걸려 비틀거리며 테이블 위에 찻잔을 다 엎어버린 에피소드도 있다. 정적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멈췄다. 뜨거운 차의 온도도 못 느낀 채 “죄송합니다”를 연발하였다. 또 하루는 회의장에 있는 의원님에게 회의자료를 가져다 드려야 했는데 의원 건물에서 국회의사당 내부로 들어가는 길에서 헤매고 있었다. 서류를 한 손에 들고 두리번거리며 빙빙 돌고 있었던 것이다. 힘겹게 길을 찾아 의원님을 만났다. 나는 “죄송합니다.”를 또 연발하였다. 그때 의원님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금니 꽉 깨물고 오히려 웃으시며 “괜찮아, 괜찮아.” 해주셨다. 그리고 그 직업의 고충이라면 전화받는 것이었다. 민원전화가 많이 왔는데 내 생애 처음 듣는 욕들을 수시로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엔 가슴이 떨리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 노하우가 생겼다. 욕이 나올 시점이다 싶으면 전화기를 살짝 귀에서 떨어뜨렸다. 그리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한 번 진정시키며 끝까지 친절하게 응수해 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비서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이 많다. 기본 매너, 상하관계, 손님을 대하는 법과 나의 최대 장점인 미소 장착 등 사회화에 필요한 많은 것을 배웠다. 직장의 막내였고, 어른들 속에 있어서 일종의 대가족의 막내딸같이 살짝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의 유일한 필살기는 웃는 것이었다. 활짝, 매일매일... 그러다 보니 얼굴에 미소가 딱 붙게 되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그런 웃지 못할 실수 연발에 항상 미소로 난감한 상황을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년 행복했지. 총선을 앞두고 내가 모시던 의원님은 도지사에 출마하겠다며 당과 다른 뜻을 내비치는 바람에 당에서 내팽개쳐졌다. 덩달아 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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