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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Aug 04. 2024

완벽하지 않아도 온전하다면 '퍼펙트'

빔 벤더스, <퍼펙트데이즈>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봤다. 화장실 청소부인 중년 남성(야쿠쇼 코지)의 반복되는 일상이 잔잔하게 흐른다. 그는 그저 매일 매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상을 충실히 살아낸다. 그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결코 자신만의 낭만을 잃지 않는다. 출근 길에는 카세트를 신중히 고르고 골라 근사한 음악을 곁들이고, 매일 다른 모양의 햇살을 카메라로 담으며 퇴근 후에는 조용히 독서에 빠지기도 한다. 특별할 것도 없지만 불행하지 않은,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소중한 감각이 소실되지 않은 자의 모습은 다채롭지 않음에도 분명한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일종의 생명력이랄까. 담담하게 자신의 루틴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경외심마저 든다.





"그림자는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네요.

"살짝 더 어두워지는 것 같기도 한데요."


어둠에 어둠이 겹쳐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결국 더 짙고 짙어지는 게 아니다.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일종의 희망을 엿보기도 했다.


"불안과 고통은 다르다"

책방 주인의 이 대사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Feeling Good'이 흘러나오고, 주인공 야쿠쇼 코지의 표정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여러가지 감정이 혼재된 채로 스크린을 채운다. 꽤 오랫동안 그 장면이 지속되는데 나는 웬일인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아니, 계속 보고 있기 힘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클로즈업 되는 그 얼굴에는 회한, 만족, 결핍, 행복, 불행, 연민, 자부심, 기쁨, 슬픔을 비롯한 많은 것이 녹아있다. 양가감정의 덩어리로 점철된 그 얼굴이 나를 압도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웃고 있는 그 표정은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였기 때문이리라. 희노애락이 순차적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 한꺼번에 담겨있는 느낌. 성숙한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진정한 중년의 표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나는 문득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답안지를 미리 몰래 훔쳐보고 싶지 않았달까.





완벽하거나 완전하지 않아도, 나로서 '온전히' 그리고 담담히 하루를 살아내면 그것이 바로 '퍼펙트 데이'인 것이다. 그런 온전한 날들이 모여 퍼펙트데이즈(perfect days)가 되고 그것이 다름아닌 우리네 인생이다. 단조로운 일상을 겸허히 살아나가는 힘, 그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잃지 않고 지켜내는 힘. 그 온전함이야 말로 진정한 '퍼펙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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