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재이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이 Nov 05. 2024

체스 아닌 모든 것

김금희, 「체스의 모든 것」 단평

 


  담담하고 담백한 말투로 시작되는 김금희의 소설은 조미료를 치지 않은 건강식 같달까. 한 입 먹었을 때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키거나 크게 자극적이진 않지만 계속 읽어도 질림이 없었다. 그 차분하고 담담한 말투로 모든 ‘규정된 규칙’에 반발하며 의문을 던지기에 독자로서 더욱이 흠칫 놀라며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게 된다. 


  소설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국화와 노아 선배의 갈등은 미묘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또 이를 유지하면서 소설 전체를 묵직하게 끌고나간다. 사실상 그 갈등의 내용이 의미 있다 라기 보다는 갈등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규칙’과 ‘탈 규칙’간의 대립. ‘규정된 규칙’은 ‘체스’로 표상되고 그 규칙에 대한 상반된 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맞선다. 의견을 던지면 바로 맞받아치는 모습은 흡사 핑퐁을 연상케 한다. 핑 하고 치면 퐁하고 받아 치는, 결코 강도가 세지 않고 결정적 한 방은 없지만 어느 누구 하나 밀리지 않는 상태로 핑 퐁, 핑 퐁.


  노아 선배의 그 ‘잘 난’ 주장들을 국화는 너무도 쉽게, 번번이 무력화시키고 만다. ‘영미인의 레저생활’에 나와 있는 체스 규칙은 그건 “미국식”이라는 국화의 말 앞에서 무너진다. 또 한 번 기세등등하며 펼쳐 보인 ‘체스의 표준 규칙’은 “퍼블릭한 게 아니라 프라이빗 한 것”이라는 말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어디 한번 또 아니라고 해 보시지”와 같은 태도가 무색할 만큼, 아니 무안하고 머쓱해질 만큼 국화의 말은 틀린 것이 없다.

  

  반박할 수 없음에 노아 선배가 느낀 것은 ‘묘한 희열’이었으리라. 자기가 ‘맞다’고 생각했던,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세계가 찢기고 붕괴되는 그 아프고도 짜릿한 통각은 아이러니하게도 희열에 가까운 것이기에 선배는 그렇게 또 국화를 찾아가 시답잖은 체스를 뒀던 것이다.  




  소설을 읽고 나면 “원래 체스가 그렇다니까!”라는 노아 선배의 외침만큼이나 억지스럽고 무의미한 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래’ 그런 체스는 없으므로. 결국 그가 믿고 있었던 체스의 ‘룰’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체스가 아닌 모든 것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체스’라는 규정된 것은 없고 그 규정된 틀을 넘어설 때에야 비로소 “이기는” 사람이 된 다는 것을, 무언가를 규정하고서 그 규정된 것을 그것의 전부라고 여기는 순간 지고 만다는 것을 소설은 넌지시 알려준다. 그것이 노아 선배가 국화에게 한 번도 체스를 이긴 적이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나’의 말처럼 체스는 “체스였다가 체스가 아닌 것이 되었다가 결국 그것이 무엇인지를 따질 필요도 없는 모든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노아 선배가 주야장천 주장했던 ‘체스’에 관한 모든 것들은 결국, 체스가 아닌 모든 것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상속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