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슬기로운 생활도 아니고 '연희로운 생활'은 또 뭐람. 다소 의아할 것이다. 나는 연희동에서의 슬기로운 생활을 '연희로운 생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연희동이라는 동네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조용하다는 점이다. 주택가에 위치한 고즈넉한 동네는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가게가 즐비하다. 성수동, 연남동과 같은 '핫플'이 주는 북적거림을 뒤로하고 한적한 주택가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동네. 그래서 나는 연희동을 못내 애정한다.
20대 때부터 나는 그리 시끄러운 '번화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번화가 특유의 생기와 열정이 있지만, 그런 곳에선 조용히 산책을 한다든지,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행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맛집과 핫플은 길게 줄이 주욱 늘어서 있고, 어딜 가나 북적인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정문 쪽의 신촌 명물거리보다는 서문과 북문 쪽에 위치한 연희동과 연남동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이후 연남동이 너무 핫해지면서 연남동과도 거의 결별하고, 줄곧 연희동 일대를 낱낱이 탐색하며 거닐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취직을 하고 나서도 이사를 가지 않고 주욱 이곳에 머물렀다. 출근하는 곳이 연희동과 그리 멀지 않았던 것도 있고 웬만하면 거처를 옮기고 싶지 않았던 점도 있었다. 열심히 물색해 봐도 결국엔 '연희동만 한 곳이 없는데?'로 결론이 났다.
괜히 동네 탓을 하던 적도 있었다. 사람이 일이 안 풀리면 괜히 어떤 곳으로 화살을 돌려 그저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 않던가. 나는 아무 죄도 없는 연희동을 원망하며 평소 믿지도 않는 풍수지리를 들먹이면서 이 동네가 나랑 맞지 않는 것 같다느니, 이 동네에서 그렇게 큰 일을 성취한 적이 없다느니 따위의 자기 비관적 지론을 펼치며 '이사'를 계획했다.
막상 이사하기로 마음먹고 다른 동네들을 살펴보았지만, 다른 동네를 둘러보고 찾아볼수록 내 동네 '연희동'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이만한 동네가 없구나, 나는 연희동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따위의 깨달음을 선명히 직시하면서 그냥 올해까지만 있자, 올해까지만 있자, 하던 것이 10년이 되었다.
여기서 굳이 "모름지기 '동네다움'이란 무엇인가", '"내 동네'라는 것은 무엇인가" 따위에 대해 시답잖은 이론을 펼치며 괜스레 진지해지고 싶지도 않다. 최소 몇 년을 거주해야 한다든지, 자가가 있어야 한다든지 따위의 조건 보다도 내게 '동네'라는 것은 관념적인 개념에 더 가깝다.
내가 생각하는 동네라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이 놓이는 곳'이다. 외부에서의 긴장을 내려놓고 편안해질 수 있는 곳. 그런 의미에서 연희동은 정말이지 나의 '동네'다.
연희 IC를 통과해 연희교차로에 다다를 즈음 느끼는 어떤 안도감. '내 동네'라는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 그제야 나는 마음을 놓는다. 실체도 없는 마음을 마치 시종일관 잡고 있었다는 듯이, 스르르. 보증금 몇 천을 올리더라도 결코 이런 안온함을 손쉽게 사진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벼르고 벼르던 이사에 대한 갈망을 종이접기 하듯 고이 접어 가슴 한 구석에 처박아 두고는 그저 계속 연희로운 생활을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화려하거나 놀 거리가 많지 않아도 늘 그대로인 특유의 연희동만의 분위기가 있다. 고즈넉한 주택가,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 젊은 사람들과 연로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동네. 카페도 전시장도 빵집도 맛집도 많아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동네. 내가 즐기기엔 충분한, 내가 사랑하는 연희동에서의 연희로운 생활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훗날 이 근처에 들르거나 우리 동네에 놀러 올 일이 생기면 내가 소개한 곳을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그저 연희동 일대를 거닐듯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줬으면 한다.
특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보잘것없지는 않은, 거창할 것 없이 소소하지만 그렇다고 시시하지는 않은 나의 연희로운 생활을 슬쩍 구경해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