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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타자기 Apr 28. 2024

내가 뭐 하고 사냐면

나도 몰라 사실

 뭐 하고 사냐는 질문을 받았다. 드라마나 영화도 안 보고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는 책이라도 읽었다만 요즘은 책도 안 본다. 글이야 가끔 쓰기는 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이 쓰니까 쓴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이렇다 보니 분명 별 것 아닌 질문이었을 텐데도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글쎄. 나 뭐 하고 살지? 진짜 하는 게 없네.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인데 왜 나만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같은지.


 사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가, 하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하는 게 있다. 유튜브도 보고 Y랑 데이트도 하고 게임도 한다. 또 일주일에 한 번씩 탁구도 친다. 얼마 전에는 홀덤펍 구경도 했다.(들어가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나서 구경만 한 거였다. 어째서인지 홀덤펍에 들어가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자면 아마 열 개도 넘게 댈 수 있을 거다. 말했듯,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이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내가 뭔가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만 같다.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것이다. 자꾸 뭔가를 빼먹은 것 같고, 아무것도 안 한 채 하루를 흘려보내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말하자 Y는 ‘다들 그렇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런가. 다들 이렇게 보람 없는 하루를 보내는 건가. 이렇게 무미건조한 하루를.


 세상에 재밌는 건 많은데 내 삶은 점점 재미 없어지는 느낌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자꾸만 ‘예전이 좋았지’ 같은 꼬질꼬질한 말을 하고 싶어 진다. 정확히 언제가 좋았는지 말하려면 딱히 떠오르는 시기도 없으면서.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일을 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참 이상한 게, 퇴근하고 집에 오면 뭘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그림도 그리고 싶고 코노도 가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은데 정작 제일 많이 하는 건 누워서 폰 보기다. 이런 내가 싫지만 그래도 어떡해. 에너지는 없고 도파민은 얻고 싶은 걸.


 에너지. 그놈의 에너지. 나는 에너지가 없어서 평생을 게으름뱅이로 살아야 할 팔자인지도 모른다. 쓰고 싶은 건 소설이면서 맨날 넋두리만 쓰는 이유도 다 내가 게으름뱅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내 문장도 축 늘어지는 느낌이란 말이지. 학교 다닐 땐 단편 소설 정도는 방학 때마다 뚝딱 썼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가능했나 싶다. 글 쓰는 데에 누구보다도 오래 걸리면서.


 여러모로 난잡한 글이 된 느낌인데,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건 오랜만에 쓴 글이라서일까. 사실 글을 쓰기 전부터 느낌이 왔다. ‘이번 글은 좀 횡설수설하겠구나’라고. 그렇지만 횡설수설이라도 안 하면 아무것도 못 쓸 것 같아서 쓰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또 시간을 허비했다는 죄책감에 빠졌겠지. 죄책감으로 일주일을 보낼 것이고. 그러니 이 글은 일종의 항불안제, 항우울제인 셈이다.


 글을 쓰든 폰을 보든 내게 돈 한 푼 안 생기는 것은 똑같지만 글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Y야 고마워. 이런 두서없는 글이라도 써보라고 해 줘서.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뭐라도 했다는 느낌이 들게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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