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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타자기 May 04. 2024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귀찮은 건 질색이라서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인사를 주고받는 과정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만 먹으면 되는, 목표라기보다는 계획에 가까운 일이었다. 실제로 실행에 옮기고 나니 생각한 것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귀찮은 약속을 잡지 않아도 되었고, 연락 안 한 기간을 계산하면서 전화할지 말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덕분에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니 얼마나 좋아. 


 적게 만나고, 적게 연락하고, 적게 먹고, 적게 쓰자. 왜인지 올해 목표에는 ‘적게’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많이’가 어울리는 목표는 떠오르는 게 없다. ‘많이 벌자’ 정도가 있겠지만 그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닌걸. 목표로 삼기에는 너무 거창하기도 하고. 목표는 클수록 좋다는데 나는 오히려 작은 목표가 좋다. 달성하면 좋고 달성 못해도 시무룩해하지 않아도 되는.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내려면 그런 목표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늘 깔끔하게 살고자 한다. 물건도 많은 것보다 적은 게 좋다. 옷도 조금 식기도 조금 청소 도구도 조금. 굳이 쌓아 놓고 지내기보단 그때그때 필요한 걸 사는 편이다. 요즘은 배송 서비스가 좋아서 소량으로 사도 엄청 비싸지도 않다. 대량으로 사면 좀 더 싸긴 하겠지만 그만큼 공간을 차지하니 좋은지 모르겠다. 게다가 물건이 많으면 생각도 많아진다. 로션만 쓰면 남은 로션의 양만 확인하면 되는데 스킨까지 쓰면 스킨의 양도 확인해야 한다. 무언가를 산다는 건 생각할 거리를 그만큼 더 늘리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옷만 해도 그렇다. 검은 옷만 입으면 아무 옷이나 골라서 입고 나갈 수 있는데 색을 추가하기 시작하면 옷을 입을 때마다 색조합을 고려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괜히 같은 옷만 주야장천 입은 게 아니다. 


 많아도 좋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식물이다. 방마다 둔 식물을 볼 때마다 나는 더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식물은 좋다. 초록색이라서 좋고, 생명이라서 좋다. 가장 좋은 건 말을 걸지 않는다는 거다. 귀찮게 안부를 묻지도 않고 부담스러운 생일 선물을 보내지도 않는다. 주기적으로 물을 줘야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물을 안 준다고 화내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인 이 녀석들을 한참이고 가만히 보게 되는 건 그래서일까. 내게 무관심한 것들은 왜 이렇게들 사랑스러운지.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많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연락을 안 하면 서운해하는 사람들. 주로 나보다 다섯 살쯤 많은 형들이 딱 그랬다. 하여간, 꼰대 아니랄까 봐. 연락이 그렇게 중요하면 먼저들 하지 그랬어. 그 사람들 때문인지 나는 내게 얼마나 연락하는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나도 심심풀이로 연락하는 건데 뭐. 이기적이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언제든지 연락해도 되지만 내게 연락은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심심풀이라는 사실에 기분 나빠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겠지만서도.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심심풀이였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너를 이용하는, 그런 재수 없는 관계여서 부채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쁠 건 또 없지 않은가. 혼자이고 싶은 세상에 심심풀이라도 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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