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기
한국에서 살면서 내가 내 소개를 해본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취업을 준비할때도 자기소개는 진정한 나의 소개가 아니라 나의 모든 과거들이 이렇게 휘황찬란하고 온갖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성장해나간 인물이었는지를 멋드러지게 소개하는 말이었지, 담백하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본적이 없는것 같다.
초등학생때 즈음이나 이름이 뭔지, 나이가 몇살인지 가장 좋아하는 노래, 나의 취미, 감명깊게 읽은 책 등등 사소해 보이지만 정말 나에게 집중되어있던 내용들을 말했었지 이후의 자기소개에서는 사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여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말들을 해왔던것 같다. 요가를 꾸준히 하지도 않으면서 요가가 취미라고 말한다던지, 일단 그냥 미대를 나왔으니 여가시간에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던지..
생각해보면 사실 물어보는 사람들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물어본것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것보다는 내가 어디에 살고 어떤것을 가졌는지가 더 궁금해 했던듯 하다. 그리고 나도 그게 더 중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을 만날때 내가 어떤 옷을입고, 어떤 악세서리를 하고, 어떤 신발을 신고 나타나는가, 이번에 휴가로 해외를 어디를 여행갈것인가가 나의 자기소개 현 주소가 되어버리는 삶.
그런데 독일에 와서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니 입이 턱턱 막힌다.
내가 말할 수 있는게 남편에 대한 것밖에 없어져 버린것이다. 내 남편이 여기에서 일을하고 어떤 회사를 다니고 우리가 어디에 살고있는지. 이것만 말하고 자기소개를 마쳐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왜 내 소개가 아닌 내 남편의 소개가 마치 나의 소개처럼 자리잡은 것일까!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있던 그리스인 마리아가 나에게 말했다.
"오케이, 이젠 너의 소개를 해봐"
"내 소개? 이게 다 인데...?"
황당해하는 마리아의 얼굴. 그제서야 나는 아뿔싸 싶었다. 내가 얼마나 오랜시간동안 나로 살지 못했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뭘 하고싶어하고, 뭘 재밌어했는지 너무 오랫동안 나를 돌보지 못했다는것을 이제서야 알아버리고 말았다.
나는 나를 찾아야만 했다. 남들은 더이상 생각하지 말고, SNS에서의 삶을 더 이상 부러워하지 말고 진짜 나를 찾아가야만 하는 시기가 온것이다.
일단 그 첫번째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게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했다. 그런데 이거 이렇게 어려운일이었어? 내가 좋아하는게 도대체 뭔지를 모르겠다. 어느새 호불호가 없어지고 '괜찮아요' 라는 말로 좋다 싫다를 말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거절을 거절하기 위해 빙빙 돌려서 말하다가 핵심은 놓쳐버리게 되는것. 그러다보니 내 삶에서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워진것이다.
아주 사소한것부터 찾아나가면서 이제는 자기소개에 그런것을 넣어보기로 했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청소기 돌리는것을 좋아해.
나는 방 창문에 앞에 앉아서 하늘과 나무가 보이는 풍경을 보며 가만히 있는것을 좋아해.
나는 음악을 LP로 듣는것을 좋아해.
나는 수영을 못하지만 물놀이는 좋아해.
하나씩 작은것들부터 나를 찾아보아야지. 그래서 진짜의 나를 나도 만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