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나는 신혼여행지에서 홀로 여행을 나섰다. 오후 햇살에 데워진 스페인의 작은 마을, 론다의 좁은 골목은 적당히 더웠고 적당히 서늘했다. 늘 남편과 함께 걷다 혼자가 되니 낯선 기분이 들었다. ‘어디부터 가야할까.’ 잠시 고민하다 투우장 쪽을 향했다. 산 아래 자리잡은 론다는 오래된 투우장 외에는 특별한 관광 명소가 없다. 지도를 가지고 나왔지만 지도 자체가 특별히 의미가 없는, 1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보고도 남을만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서인지 길가에 쪼그리고 앉은 고양이나 지나가는 여행객의 상기된 표정까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남편을 두고 나왔다는 미안한 마음도 베이지색톤 거리와 화창한 날씨 앞에서 점차 옅어져갔다.
빼곡히 들어앉은 상아색 집들과 그 창가에 소박하게 피어있는 붉고 푸른 꽃들 사이로 정처 없이 걸었다. 오년 전 혼자 20키로 배낭을 메고 유럽을 떠나왔을 때의 설레임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이 골목을 돌아서면 사진으로만 봤던 그 건축물이 있을까, 길 위에서 어떤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게 될까’ 하는 기대로 부풀었던 대학생으로 돌아가 있는 듯 했다. 마치 론다에 며칠씩 묵을 사람처럼 마음에 드는 상점 한 곳에 퍼지고 앉아 한참을 그릇이나 바구니 따위를 들여다봤다. 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귀걸이를 들었다 놨다 하며 마음껏 우유부단해지기도 했다.
길 끝에 이르니 큰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광장을 따라 노천카페가 줄지어 있고, 쉐프까지 나와서 호객을 하고 있었다. 아무 테이블이나 골라 앉아 광장 너머로 기우는 해를 바라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스테인드글라스 문양의 귀걸이와 론다 사진엽서가 오늘 여행의 수확이었다. 테이블에 펼쳐놓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숱한 발자국과 말발굽에 닦이고 단단해졌을 돌바닥이 어둠으로 짙어져 가고 있었다. 저녁에 남편과 와서 먹을 피자와 감바스를 미리 골라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로 돌아오니 남편은 그때까지도 침대에 누워있었다. 론다까지는 세비야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왔었는데, 꼬박 3시간이 걸렸다. 흙먼지와 끝없는 평야 말고는 별달리 볼 게 없는 지루한 길이었다. 반쯤 졸다 옆을 보니 남편의 얼굴이 어느새 누렇게 변해 있었다. 남편은 휘청거리며 버스에서 겨우 내렸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놀란 나는 무작정 약국을 찾아 나섰고, 마침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약국이 있었다.
약국에 들어가니 약사 분이 당황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증상을 설명하려는데 스페인어로 뭔가 이야기하시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제야 동양인인 내가 들어왔을 때 당황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영어를 모르는 약사와 스페인어를 모르는 손님 사이에는 언어가 필요 없었다. ‘멀미를 어떻게 설명한담.‘ 나도 멀뚱히 약사 분의 얼굴만 쳐다보다 손짓발짓으로 멀미를 설명해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시늉을 하고 나서야 마침내 약사는 활짝 웃으며 약을 내어주었다. ‘그라시아스’를 연발하며 약봉투를 받아들었다. ‘멀미를 예방하는 약이면 어쩌지.’ 그게 뭐라도 증상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론다를 건너뛰면 여행 일정이 훨씬 여유로워짐에도 절벽을 사이에 둔 작은 누에보 다리와 그 끝에 있는 파라도르 사진에 꽂혀 1박을 잡았었다. 파라도르는 고성이나 요새, 수도원을 개조한 스페인 국영호텔인데, 웬만한 5성급 호텔만큼의 서비스와 전망, 고풍스러움을 갖추고 있다. 론다의 파라도르는 누에보 다리 입구의 시청사를 개조한 건물이었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누에보다리를 향해 널찍하게 베란다가 나 있었다. 베란다에 서면 다리 아래의 협곡부터 반대편 절벽 위의 마을까지 한 눈에 내다보였다.
그 전까지 우리의 신혼여행 숙소 대부분은 호스텔이나 작은 민박집이었다. 워낙 배낭여행을 좋아하는 나와 남편은 열흘이라는 결혼 휴가를 호화로운 리조트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보내는 대신 낯선 거리를 걸으며 세상을 구경하는데 쓰고 싶어했다. 둘 다 숙소에 돈을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는 편이라 공동부엌이 달린 저렴한 호스텔에서 주로 지냈고, 다른 여행객들과 같이 밥을 해먹거나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신혼여행이라기보다는 남편과 처음 떠난 배낭여행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론다에서만큼은 좀 더 허니문다운 숙소에서 지내보기로 해서 오기 전부터 들떠 있었다.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게 될 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남편은 약을 먹고도 기운이 없는지 결국 오후 내내 숙소에 머무는 편을 택했다. 다음 날 아침에 떠나야해서 론다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오늘 오후와 저녁 밖에 없었던 터라, 그것은 론다를 여행할 낮 시간을 모두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나도 숙소에서 남편을 돌보며 남아있어야 하는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오후 내내 숙소에 꼼짝 없이 갇혀있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처지는 듯 했다. 그래서 다짐하듯 일어나 숙소를 나왔던 것이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으니 자기를 내버려두고 훌쩍 나가는 내가 당황스럽긴 했지만, 모처럼 좋은 숙소에서 푹 쉰 그 날이야말로 스페인 여행 중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한다. 지금도 신혼여행을 가서 따로 여행한 그 날을 생각하며 같이 웃곤 한다.
그 후로도 나와 남편은 여행지에서 각자의 일정을 보내거나 때로 아예 따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을 존중해주고 그 나머지 영역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나와 남편이라는 취향도 체력도 너무 다른 두 사람 사이에서 가까스로 찾아낸, 조화롭게 여행를 즐기는 방법이다. 오늘도 수영장이 달린 리조트로 향하는 여행짐을 싸며 남편의 수영복은 가방에서 빼놓는다. 남편은 그늘진 선베드에서 하염없이 쉬거나 사진을 찍으며 보낼 것이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물을 튀기며 종일 물속에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