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OB베어>, 반갑다.
광고나 디자인 일을 했던 ‘꼰대”들에게 을지로는 ‘힙지로’라는 타이틀로 각광받기 이전부터 자주 가야만 하는 일터였는데 을지로에서 충무로로 이어지는 그 자리에 디자인 사무실과 인쇄소가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야근도 많은 시절이라 일이 끝나면 자연스레 맥주 한 잔 생각이 나고 거기에 맞춰 호프집이 생기고 2차로 즐길 만한 소주에 어울리는 맛있는 안주를 파는 가게들이 많던 시절이다. <만선호프>, <동원집>, <을지OB베어>, <원조녹두> 등이 대표적 가게였다.
그런 가게들이 ‘노포’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 노포(老鋪)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뜻하는 말로, 일본어로 '시니세(老舗, しにせ)'라 읽는데 한국의 '노포'는 1990년대에 언론에서 일본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한자음으로 읽으며 굳어진 말로 알고 있다. 을지로 노포들이 재개발과 개인 사정으로 그 자리를 떠나며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갖게 했는데 최근 “왕들의 귀환”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을지면옥>이 새 자리에 둥지를 틀며 오픈런 이뤘고 또 다른 노포의 거두 <을지OB베어>가 자리를 옮겨 재오픈했다.
특히 <을지OB베어>는 어찌 보면 노포라는 단어가 책임져야 할 여러 요소들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시대의 상징도 더불어 담고 있다. 일단 1980년 그 험하던 시절 “대한민국 최초의 생맥주집”을 표방하며 문을 열었고 중간에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이 되어 을지로를 떠났다 돌아오긴 했지만 ‘곰’은 무려 44년의 역사를 지켜왔다.
역사와 더불어 노포의 기준은 변하지 않는 맛이다. 내 기억 속, <을지OB베어>의 맥주 맛은 기가 막혔다. 그 주역은 2대에 걸쳐 자기만의 맥주 맛을 지켜온 주인장의 노력이 담겨 있고 오랜 단골들이 기억하는 몇 개의 생맥주 군이 한몫을 했다. 더불어 아주 저렴한 가격에 마요네즈와 고추장과 함께 하는 연탄불 노가리는 주연 못지않았다. 내게는 깡통 채 불에 얹어 데워줬던 ‘번데기’도 잊을 수 없다.
꼰대들에게 OB맥주는 제품을 넘어 문화였고 생활의 일부였다. ‘OB베어’는 대한민국 맥주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며 많은 이들이 처음 접하는 맥주였고 또 프로야구를 사랑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문화생활을 맛보게 해 준 주역이었다. 브랜드 오너가 자리바꿈을 자주 하며 하며 제품군이 달라지면서 약간의 맛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대를 이어 운영하는 가게가 새로운 곳에서 조금 젊어진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매장 안 곳곳에 이전의 추억들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 눈에 띈다. 노포의 기준 중에 하나가 현대적인 기술이나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가게를 말한다고는 하지만 <을지로 OB베어>의 약간의 일탈은 받아들일 만하다.
다만, 오랜만에 다시 들른 <을지로 OB베어>에서 나만 그럴 수 있지만 색다른 주종을 하나 발견했다. ‘꼬량맥주’. 메뉴 설명에 진짜 연태고량주라는 말이 있어 예상은 했다. 중국 고량주를 이 집 맥주에 탄 메뉴일 것이다. ‘소맥’도 있었지만 ‘꼬량맥주’를 시켜 한 모금 들이켰다.
“아, 후회막급.”
생맥주처럼 들이켤 놈이 아니었다. 입 안 전체에 연태고량주의 향이 압도한다. 아주 오랜만에 들른 ‘곰’에게서 이국의 향이 온몸에 흘러넘쳤다.
“아, 그냥 생맥주 시킬걸.”
함께 시킨 노가리를 급히 입에 밀어 넣으며 매장 입구에서 밀려오는 손님들에게 눈길이 갔다. 여전히 직장인이 많고 꼰대들도 많지만 중국 관광객들도 많았다. 물론 힙스터들도 여기저기 많이 눈에 띈다. ‘꼬량맥주’는 중국 관광객 용일까?
새 맥주를 주문해 한 잔 더 마시고 자리를 떴다. 여전히 다국 손님들이 연신 빈자리를 채운다.
이전 작은 매장에서의 생맥주, 노가리, 번데기를 그대로 만나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예상 밖의 한 잔에 조금 서운함이 밀려왔다. 내 잘못인 거지. 이전 추억을 느끼고 맛보려면 이전 맥주를 시켰어야 했는데, 쩝.
그래도 새롭게 둥지를 틀고 꼰대들의 추억을 담아줄 장소가 여전히 있어 반가웠던 4월 마지막 날 밤이었다.